위기의 클린턴…진보 성향 샌더스에도 추월당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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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민주당의 유력 대선 주자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이 예상치 못한 고전에 허덕이고 있다. 공화당에선 부동산 재벌 도널드 트럼프의 선풍적인 인기가 계속되는 가운데 클린턴 후보는 민주당 내에서조차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는 버니 샌더스(버몬트주) 상원의원에게 쫓기거나 추월 당하는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6일(현지시간) 미 NBC방송이 여론조사기관인 마리스트폴과 공동으로 실시해 발표한 여론조사 결과 클린턴 후보는 뉴햄프셔주에서 32%를 얻어 41%를 얻은 샌더스 후보에게 뒤졌다. 뉴햄프셔주는 내년 2월 9일 미국 전역 중 최초로 프라이머리(당원과 일반인이 함께 참여하는 경선 방식)가 열리는 '대선 풍향계'로 불린다. NBC방송은 지난 2월부터 주기적으로 프라이머리 선거인단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되는 뉴햄프셔주 유권자를 대상으로 조사를 실시해 왔는데 지지율이 역전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또 현재 출마 여부를 고민 중인 조 바이든 부통령이 출마하지 않을 경우를 가정하면 샌더스의 지지율은 49%로 8%포인트 상승하는 반면 클린턴은 6%포인트 오른 38%에 그쳐 그 격차가 더 벌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미 언론들은 클린턴이 국무장관 재직 시절 관용 e메일 대신 개인 e메일을 부적절하게 사용했다는 의혹이 클린턴에 대한 호감도 저하를 초래했다고 본다. 하지만 다소 다른 분석도 있다.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의 존 햄리 소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오바마 정권 출범 이후 민주당이 지나치게 왼쪽(진보)으로 가버리는 바람에 민주당 지지자들은 클린턴을 (자신들이 중시하는) '진보 후보'가 아니라 '중도 후보'로 여기고 있다"며 "이것이 e메일 문제보다 클린턴이 곤경에 처한 진짜 이유"라고 지적했다.

뉴햄프셔 프라이머리에 앞서 내년 2월 1일 최초로 당원대회(코커스)가 열리는 아이오와주에서도 클린턴 후보는 샌더스에 바짝 쫓기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아이오와주에서 민주당원 34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클린턴의 지지율은 7월보다 11%포인트 떨어지고 샌더스는 2%포인트 상승해 그 격차는 24%포인트에서 11%포인트로 좁혀졌다. 클린턴은 아이오와주의 상징성을 고려해 이번 여름 아이오와주를 빈번히 찾는 등 공을 들여왔지만 현저한 민심 이반을 막지 못한 것이다.

공화당에선 트럼프가 아이오와에서 29%를 선두를 유지한 가운데 벤 카슨(전 신경외과의사)이 22%로 뒤를 이었다. 뉴햄프셔에선 트럼프가 28%, 존 케이식 오하이오주 지사 12%, 카슨 11%의 순이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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