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신한민주당 지도체제 진통의 시말|일방 독주막은 양파 타협체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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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각 계파간의 이해대립으로 대회전의 기분이 감돌던 신한민주당의 지도체제문제가 창당대회에 임박해 민추 비민추간의 타협으로 해결됐다. 「단일」을 주장한 민추와「집단」을 고집한 비민추는 서로가 한발짝씩 물러나 단일과 집단을 혼잡한 절충안을 채택한 것.
당헌에 『총재는 당을 대표하며 모든 당무는 부총재단과「합의」하여 통괄한다』고 규정해 총재단일체제의 형식에 집단지도체제의 내용을 혼합했다.
실제 당무를 처리히는 과정에서 이같은 장치가 어떤역관계로 나타날지 모르나 우선은 양측이 서로 어느 일방의 독주나 주도권장악을 저지했다고 볼수 있다.
이같은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각계파가 보인 대결상은 신당의 복잡한 색깔과 앞으로 부딪칠 당권경쟁의 향방을 대강 짐작케한다.
민추와 비민추는 처음부터 지도체제서「단일」로 하느냐「집단」으로 하느냐가 가장중요한 고비라고 믿고 힘대결의 준비를 해왔다.
「단일」에 가장 집착한족은 민추의 상도동계. 상도동측은 앞으로 동교동의 지도자가 귀국하고 당내주도권 경쟁이 본격화할때에 대비, 형세가 유리할때「단일」로 기선을 제압한다는 계산이었다
이에 대해 비민추연합세력과 동교동측은 상도동에 주도권을 넘기는 일은 용납할 수 없다는데 이해를 같이했다. 비민추와 동교동이 연합하면 상도동의「단일」작전은 무난히 꺾으리라고 이들은 판단했다.
그래서 이들은 각 계파간의 세력균형이 이루어진 창단준비위원장단을 그대로 지도부로 전환시키고 총선후 전당대회를 열어 실력대결을 하자고 주장했고 상도동이 끝내 단일을 주장하면 표대결도 불사한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이같은 양측간 입장의 평행선은 상도동측이 서울종로-중구에 이민우 창당준비위원장을 출마시키기로 결정함으로써 깨졌다.
종로-중구는 양측 모두가센 후보를 내세워 민한당을 혼내주자는데에 합의했으나 서로 후보를 내기를 꺼렸다. 상도동은 저은 조승형 민한당 선거대책본부장의 실제인 조순형씨를 내세우려 했으나 본인이 고사했다.
또 동교동은 김대중씨의 장남 김홍씨를 교섭했다가 안되니까 김관석목사·문익환목사등 순수 재야인사들과 접촉을 벌였다. 나중에 동교동측은 길철승씨에게 『당수할 생각이 있으면 전주를 후진에게 양보하고 종로에 나가라.』고도 했다.
또 상도동에 대해서도「이민우씨를 당수시키려면 종로에 내보내라」고 종용했다.
어느쪽도 후보를 못내고 시간만 끌게되자 상도동이 결단을 내렸다.
상도동이 위험부담을 무릅쓰고 이위원장을 종로에 내보내기로 하자 동교동측도「단일」에 동조하지 않을수 없었고 여기서부터「집단」주장의 세가 주춤해졌다.
대신 비민추와 동교동은 총재가 부총재단과「합의」토록해 내용상「집단」을 가미하고 모든 당직을 50대 50으로 균배한다는 원칙을 관철했다.
이 과정에서 총재가 부총재단과「합의」하느냐「협의」하느냐가 또 문제가 됐다. 또 총재의 명칭을「총재」로 하느냐「대표최고위원」으로 하느냐로 실랑이를 했는데 『험지에 들어가 싸우는 사람 (이민우)에게 기왕이면 다홍치마 (총재)를 입히자』는 동교동의 중재가 주효했다.
어쨌든 지도체제문제를 놓고 상도동은 당초 목표대로 총재직을 얻어내는 명분을 관철했고 비민추와 동교동은 실질적 집단체제란 내용과 당직의 계파안배원칙을 달성해 선거후 치를 본격적인 당권결전에 대비할수 있게됐다.<전육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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