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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성기를 꺼라 … 김정은, 목표달성 위해 한발 물러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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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 22~25일 남북 고위급 접촉은 김정은(얼굴) 북한 국방위원회 제1위원장의 대남협상 데뷔 무대였다. 고위급 접촉까지 끌고 오는 데는 기존의 ‘벼랑 끝’ 전술이나 ‘판가리(결판)’ 전략을 그대로 적용했다. 군사적 도발을 일으킨 뒤 “남조선의 날조”라고 오리발을 내밀며 긴장을 고조시키고선 대화를 제의했다. 그러나 막상 회담 테이블에 앉아서는 달랐다. ‘ 대북 확성기를 끈다’는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패를 뒤집거나 상대방에게 한 수 접어주는 모습도 보였다.

 경남대 김근식(북한학) 교수는 “이번 협상의 관전 포인트는 김정은식 협상 스타일”이라며 “강경한 모습을 보이다가도 필요하면 결정적 국면에 양보하는 목표 지향적인 모습을 선보였다”고 평가했다. 동국대 고유환(북한학) 교수 역시 “예측 불허의 이미지가 지배적이었던 김 위원장이 이번에는 전략을 갖고 목표를 성취하려 했다”고 말했다.

 그런 모습은 접촉이 막바지에 접어들던 24일 오후 드러났다. 지난 4일 발생한 목함지뢰 사건을 놓고 김관진 청와대 국가안보실장과 홍용표 통일부 장관은 북측 황병서 총정치국장과 김양건 당 대남비서 겸 통일전선부장에게 재발 방지를 강력히 요구했다. 이에 북측이 미온적으로 나오자 김 실장은 “그렇다면 우린 (서울로) 돌아가겠다”고 초강수를 뒀다.

북측은 벼랑 끝 전술 대신 한발 양보하는 수를 뒀다. 황병서 총정치국장 등은 “어느 정도를 원하는 거냐”고 묻기도 했다고 한다. 이런 과정을 거쳐 재발 방지 약속이 포함된 공동보도문 3항(‘남측은 비정상적인 사태가 발생하지 않는 한 군사분계선 일대에서 확성기 방송을 8월 25일 12시부터 중단하기로 하였다’)이 나왔다.

 김 위원장은 이번 남북 접촉을 위해 대남 협상의 베테랑 전략가들을 거의 모두 판문점 평화의 집으로 보냈다. 대남 업무만 20년 넘게 해온 여성 간부인 김성혜 조선아시아태평양평화위원회 부실장 등이 김양건 비서 뒤에서 보좌하는 모습이 보였다.

 확성기 방송 중단을 얻기 위해 5·24 대북 제재 조치 해제 문제도 강하게 요구하지 않았다. 여권 고위 관계자는 “5·24 조치를 해제해야 한다는 얘기를 북측에서 한 것으로 안다”면서도 “그 말에 우리 측이 난색을 표했더니 수용했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그러나 김 위원장이 대북 확성기 방송 중단의 목표를 취한 뒤 표변할 가능성도 점치고 있다. 황 총정치국장은 25일 조선중앙TV에 출연해 “남조선 당국은 근거 없는 사건을 만들어 일방적으로 사태를 판단하고 상대를 자극하면 정세만 긴장시키고, 군사적 충돌을 불러올 수밖에 없다는 심각한 교훈을 찾게 됐을 것”이라 주장하기도 했다.

전수진 기자 chun.su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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