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개숙인 명동 사채왕, 징역 11년 벌금 134억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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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일 오후 2시 대구지법 서부지원 33호 법정. 푸른색 죄수복을 입은 머리가 희끗한 60대 피고인이 모습을 나타냈다. 혼잣말로 "죄송합니다."며 90도로 판사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 그리고 30여분간 이어진 재판 내내 고개를 들지 못했다. '명동 사채왕' 최모(61)씨였다. 법원은 고개 숙인 그에게 중형을 선고했다. 상장회사 등에 수백억원의 돈을 빌려주고, 이를 악용해 돈을 뜯은 혐의를 인정했다.

대구지법 서부지원 제1형사부(김강대 부장판사)는 24일 조세포탈 등 10여 가지 혐의로 구속 기소된 최씨에 대해 일부 유죄를 인정해 징역 11년, 벌금 134억원을 선고했다. 추징금 9010만원도 별도로 명령했다.

검찰의 공소 사실 등에 따르면 최씨는 2009년 2월부터 이듬해 8월까지 경영이 어려운 서울과 대구지역 상장회사 등 3곳에 373억원을 빌려줬다. 주금납입금을 가장한 방식으로다. 이들 회사는 최씨에게 빌린 돈으로 주금납입금 서류를 만들어 한국거래소에 제출하려했다. 이때 최씨는 "주금납입금을 가장한 사실을 알려 회사가 한국거래소에 상장되지 못하도록 하는 등 불이익을 주겠다"고 협박, 3개 회사로부터 9억여원을 받았다.
그는 대부업으로 벌어들인 수익금에 대해 일부 세금을 내지 않았다. 검찰은 "2006년부터 2010년까지 98억5000만원을 빼돌렸다"고 주장했다. 재판부는 "검찰의 공소 사실과 달리 소득세 50억원을 포탈한 것으로 파악된다"고 했다.

법정에서 김 부장판사는 "최씨는 이밖에 수사나 재판을 하면서 자신에게 불리한 진술을 하는 사람에게 마약을 먹이고 허위 신고 하도록 하는 등 다수 혐의가 더 인정돼 선고에 감안했다"며 "반성의 기미가 없고, 죄질 자체가 무거워 중형 선고가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그는 2012년 구속됐다. 그리고 대구지검 서부지청에 의해 기소에 기소를 더해 이날 1심 선고까지 3년 5개월이 걸렸다. 최씨는 2009년부터 2년여간 최모(43) 전 판사에게 "잘 봐달라"며 수억원을 건네기도 했다.

대구=김윤호 기자 youknow@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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