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당 창업? 폼 나게 카운터 앉을 생각은 버려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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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혁 소장은 식당 창업자는 업의 본질인 음식 공부부터 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김경빈 기자]

2011년 한국에선 음식점 18만9000개가 생겨났고, 동시에 17만8000개가 문 닫았다. 폐업률 94.7%(2013년 국세통계연보). ‘먹는 장사인데 굶어 죽겠나’며 별다른 준비 없이 창업에 뛰어들다 그 뒷감당에 허덕이는 중장년층이 주변에서 흔하다.

 이준혁(54) 희망창업연구소 소장은 지난해 안타까움에 팔을 걷어붙였다. 사정이 어려워 문 닫기 직전인 식당을 대상으로 무료 컨설팅을 시작했다. 이 소장은 “망하는 사람들이 보이는데 그냥 지나칠 수가 없었다”며 “내가 먹고 살 거리는 챙겨놨다. 재능기부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버지(이충섭 부산대 명예교수)의 가르침도 있었다. 그는 “아버지는 늘 ‘남자 나이 쉰이면 돈 벌려하지 말고, 남에게 베풀어라’고 강조하셨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20명이 그에게서 조언을 받았다. 이 소장은 “절반 이상은 회복이 안 될 정도라 ‘빨리 손 터는 게 좋다’고 했다. 그랬더니 오히려 고마워한다”고 말했다.

 이 소장에 따르면 외식업을 시작하기 전 먼저 ‘폐업 시나리오’를 써야한다. 폐업 변수를 미리 적고, 모든 걸 감안해도 성공확률이 80%가 넘어야 한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그는 “백전백승이 아닌 백전영패(零敗)가 목표”라고 덧붙였다. “식당이 무너지면 가정도 무너지고, 나중에 회복하기 힘들다”고 한다.

 그러면서 “폼 나게 카운터에 앉아 돈 벌 생각이라면 절대 창업하지 말라”고 충고했다. “영세 창업자는 반드시 주방에서 일해야 한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외식업의 본질인 음식을 배울 수 있고 ▶인건비를 줄이는 대신 ▶그만큼 재료비에 더 쓸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 소장은 “손님을 한번 잃어버리는 데 10분, 그 손님의 발걸음을 되돌리는 데 10년이다”며 “재료비를 아끼면 오래 버티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 소장은 동아대 관광경영학과(현 국제관광학과)를 졸업한 뒤 1987년 하얏트호텔 웨이터로 취업했다. 당시 보기 드문 학사 웨이터였다. 그는 “밑바닥부터 서비스의 기본을 배우기 싶었다”며 “소중한 경력이라고 생각해 이력서 첫 줄에 쓴다”고 말했다. 이후 대기업 여러 곳에 다니다가 외식업 컨설팅 회사를 차렸다.

 그에게도 시련이 있었다. 2006년 중국에서 호텔투자 제의가 왔는데, 모든 게 사기였다. 전 재산을 날리고 중국에서 노숙생활도 했단다. 이 소장은 “불교신자인 내가 밥 주고 재워주는 교민교회에 나가 찬송가를 열심히 불렀던 시절”이라며 웃었다. 이 소장은 “예비 창업자를 위한 아카데미를 여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글=이철재 기자 seajay@joongang.co.kr
사진=김경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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