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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배팅자금 마련한 김모씨 “‘KCC 승’ 말하는 전창진 감독 목소리 분명히 들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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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농구계의 명장 전창진 전 KT 감독에 대한 경찰 수사가 석 달 넘게 진행 중이다. 전 전 감독의 혐의는 승부조작, 불법스포츠도박 대리배팅, 경기정보 제공 등이다. 경찰은 전 전 감독이 대포폰을 이용해 공범들과 집중적으로 통화하며 승부조작 등을 공모한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전 감독은 혐의 내용을 완강히 부인하고 있다. 사건에 연루된 피의자들과는 친한 형, 동생 사이일 뿐이며 자신은 승부조작을 한 적도 경기 정보를 제공한 적도 없다는 것이다.

JTBC 정통 탐사프로그램 ‘이규연의 스포트라이트’(8월23일 일요일 오후 11시 방송예정)는 진실게임 양상으로 치닫고 있는 이 사건의 실체를 한달 여에 걸쳐 심층 추적했다. 취재진은 그 과정에서 이번 사건의 내막을 깊숙히 알고 있는 인사를 20일 만나 두 시간에 걸쳐 단독 인터뷰를 했다. 개인 사업가인 김모씨는 이번 사건에 연루된 공범들의 부탁으로 수 억원의 돈을 마련해 전달하는 등 핵심적 역할을 했던 인물이다. 김씨는 취재진에게 “공범들이 전 감독과 사전에 다 얘기가 돼 있다고 수 차례 얘기한 사실이 있고, 실제로 경기 당일 배팅에 앞서 공범 중 한 명이 전 감독이 통화를 나누는 것을 옆에서 보고 들었다”고 털어놓았다. 다음은 일문일답.

-전창진 감독을 처음 보게 된 건 언제인가?

“지난 1월 초 쯤, 이번 사건에 연루된 A씨(불법도박 혐의로 구속기소)로부터 전화가 왔다. 김씨는 내게 수천만원의 빚을 지고 있는데 알고 지낸 지 오래된 형이다. 돈이 필요해 갚으라고 했더니 서울 강남의 한 사무실에서 만나자는 것이었다. 약속된 장소로 찾아갔더니 OO엔터테인먼트 사무실이었다. 그곳에서 전창진 감독을 처음 봤다.”

-그곳에서 무슨 일이 있었나?

“여러 사람들이 도박을 하고 있더라. 회장님이라고 불리는 분도 있었고, 사업하는 사람 그리고 전창진 감독도 있었다. TV에서 보던 사람을 실제로 보니 신기했다.”

-판돈 규모가 어느 정도였나?

“판돈이 꽤 커보였다. 몇 천 만원씩 왔다갔다 하는 그런 도박판이었다.”

-전 감독에게 따로 인사를 드렸나?

“가까이 가지는 못했고 그냥 조용히 지켜보고만 있었다. 연배 차도 꽤 있고 내게는 어려운 분 아닌가.”

-그날 사무실에서 무슨 얘기가 오갔나?

“A씨가 잠깐 할말 있다고 사무실 밖으로 부르더니 ‘내가 전창진 감독님과 친하다. 형 동생하는 사이다. 또 다른 (농구)선수랑 감독과도 다 친하다’라는 얘기를 했다. 그 후로도 몇 번 A씨와 감독님이 같이 있는 장면을 봤는데 A씨는 자기가 전 감독과 친분이 상당하다는 것을 확인시켜주고 과시한 거 아니겠나.”

구속된 공범들, “전창진과 친하니 돈만 구해와라” 수 차례 언급

-돈과 관련해 어떤 얘기가 오갔나?

“프로농구로 돈 많이 벌 기회가 있으니까 걱정 말라고 했다. 앞으로 농구로 돈 많이 벌게 해 줄테니 돈을 빌려달라는 부탁을 했다. 하지만 나도 돈이 없어 쪼들릴 때라 더 빌려줄 돈이 없으니 전에 빌려간 것 부터 갚아달라고 몇 번을 얘기했다. 그러자 2월 달에 승부조작이 있는데 빚은 그 때 갚을 수 있을거라고 했다.”

-‘승부조작’이라고 분명하게 들었나?

“벌써 7개월 전 일이라 정확하게 승부조작이라는 표현을 썼는지 헷갈린다. 그런데 A씨는 ‘KT 농구 감독이 내 옆에 있고 나랑 친하니 그 농구 경기 결과를 우리는 알 수 있다. 감독에게 물어보면 누가 출전하는지, 안하는지 또 그날 선수들 컨디션이 어떤지 다 알 수 있다’고 했다. 승부조작으로 생각할 수 밖에 없는 얘기들을 여러 차례 들었다. 배팅업체도 많이 알고 있으니 돈만 만들어 오라고 계속 얘기했다.”

-경찰이 승부조작으로 의심하고 있는 2월 20일 KT와 SK 경기를 앞두고 배팅 자금 3억원은 어떻게 마련한 것인가?

“A씨 지인인 C씨(불법도박 혐의로 구속기소) 역시 전 감독과 상당히 친한 관계였다. C씨에게서 농구로 돈 좀 벌어보겠다는 얘기를 수도 없이 들었다. 그런던 차에 C씨로부터 2월17일 전화가 왔다. 강남의 리베라호텔로 와 달라는 것이었다. 호텔 커피숍에서 3억원 얘기를 하더라.”
-전 감독이 직접 3억원을 빌려달라고 한 건가?

“저녁 8시쯤 호텔 커피숍에서 C씨를 만났는데 3억원 얘기를 꺼내더라. C씨는 ‘전 감독님이 너를 보자고 하신다’고 했다. ‘감독님이 왜 나를 찾느냐’고 물었더니 ‘감독님이 네게 적게는 1억원에서 많게는 3억원을 빌려달라고 말씀하실 것 같다’는 얘기를 했다.”

-전 감독이 그 돈을 어디에 쓸지 들은 얘기가 있나?

“C씨 말로는 ‘3억원을 빌려주면 (전 감독이) 2억원은 개인적으로 갚으실 돈이 있고, 1억원은 농구경기 하는데 필요할 거 같다’고 말했다. 대략 그런 식이었다. C씨와 함께 감독님이 계신다는 리베라호텔 스위트룸으로 올라갔다.”

-호텔방에서 어떤 일이 있었나?

“인사를 드렸더니 전 감독님이 ‘OO 왔어?’하고 대뜸 내 이름을 친근하게 부르시더라. 순간 좀 놀랐다. 평상시 한 번도 내 이름을 부르신 적이 없었다. 내 이름을 알고 계신지도 몰랐다.”

-실제로 전 감독이 돈을 빌려달라고 한건가?

“감독님이 ‘형이 널 보자고 한 건 부탁할게 있어서다. 돈 좀 빌리자’고 하셨다. 전 감독님이 ‘3억원’이라고 말씀하셔서 ‘알아 보겠다’고 말씀드렸다.”

-3억원은 어떻게 구했나?

“호텔을 나와 친한 형인 D씨를 만났다. D씨는 개인 사업도 하고 있었고 재산이 상당히 많은 분이다. 언론에서는 D씨를 전 감독에게 3억원을 빌려준 사채업자로 취급하던데 D씨는 사채업자가 아니다.아무튼 D씨에게 전 감독 얘기를 하면서 부탁했고, 나중에 3억원을 빌려주게 된 것이다.”

호텔 스위트룸서 만난 전창진, “돈 3억 빌려다오” 직접 부탁

-전 감독님 명의의 차용증이 수사 과정에서 나왔다. 설명을 해 달라.

“D씨는 처음 한 두 번은 부탁을 거절했다. 내가 간곡히 부탁하자 전 감독이 차용증을 쓰는 조건으로 돈을 빌려주겠다고 했다. 다음날(2월 18일) D씨와 함께 강남 리베라호텔에서 전 감독을 만나 차용증을 쓰고 돈을 빌려주게 된 것이다.”
-차용증에 입금 계좌 번호가 나와 있는데.

“계좌 2개 중에 한 개는 전 감독이 누군가와 휴대폰으로 통화를 한 뒤 감독님 휴대폰으로 계좌번호가 찍힌 문자메시지가 온 것으로 안다. D씨는 그 계좌로 2억원을 송금했고, 나머지 다른 계좌는 C씨 지인의 부인 명의 통장이었다. 이 통장에 1억원이 입금됐다.

-전 감독은 친한 동생들(A, C씨 등)이 부동산에 투자할 돈이 급하게 필요하다고 해서 도와준 것이라는데

“부동산에 투자하다는 얘기는 전혀 들은 바가 없다.”

-농구로 돈 벌 수 있다며 돈 빌려달라, 구해와라 이런 얘기는 자주 들었나?

“C씨 등이 전 감독과 친분을 과시하면서 그런 얘기를 자주 했었다. 당시에 나도 다른데서 돈을 많이 빌려서 건네준 것인데 ‘감독님하고 얘기가 다 끝났고, 감독님이 알려준 대로 찍는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더라.”

-배팅 직후 전 감독의 KT경기를 봤을텐데.

“농구 경기를 같이 보다가 KT가 뜻대로 안 될 때 전 감독님이 화를 내는 그런 장면이 화면에 나온 적이 있다. A씨가 그 장면을 보더니 ‘우리 감독님 연기 잘 하신다’고 얘기했던게 기억난다.”

-마지막으로 배팅한 경기가 3월 1일 KCC와 KT의 경기였다. 이날 어떤 일이 있었나?

“하루 전 날인 2월28일 A씨로부터 전화가 왔다. 강남에 있는 C씨 집으로 빨리 오라고 했다. 무슨 일 때문인지 대충 짐작이 갔다.”

-돈은 얼마나 마련해갔나?

“현금으로 급하게 6000만~7000만원 정도였던 것 같다. 통장으로 2억원 정도 구해가지고 찾아갔던 것으로 기억한다. 다음날 KT와 KCC 경기가 있다고 하더라.”

-3월1일 배팅하기 전에 전 감독으로부터 어떤 언질을 들은게 있나?

“전날 밤을 꼬박 새우고 다음날 아침이 됐는데 C씨가 누군가와 통화를 하고 있었다. 내가 옆에서 귀대기를 하고 통화를 듣게 됐다. 귀대기라서 드문드문 들렸는데 ‘KCC 승’이라고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KCC 승’이라고 말한 사람이 전창진 감독이었나?

“처음에는 누구 목소리인지 잘 모르겠더라. 그런데 C씨가 통화 종료 버튼을 누를 때 휴대폰 화면에서 ‘감독님’이라는 글자를 본 것은 기억한다. 또 C씨가 통화 후에 전 감독님하고 통화한 거라고 얘기해줘서 전화상대가 감독님인 것으로 확신하게 됐다. 3~5분 정도로 통화가 길었던 것으로 안다.”

-실제로 KCC가 이긴다에 전부 배팅을 한 건가?

“당연하다. 감독님이랑 통화했고 KCC가 이기는 거에다 찍으면 된다고 (감독님이) 말씀 하셨다니까. 그대로 배팅한 것으로 안다.”

공범들 억대 배팅하며 “감독님이 알려준 대로 찍는 거니 걱정말라”

-실제 경기 결과는 KT가 이기지 않았나?

“맞다. 돈을 다 날렸다.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지금은 개인회생 신청할 정도로 심각한 상황이 됐다. 정말 원망스럽다.”

-전 감독으로부터 경기정보를 제공 받았다고 생각하나?

“3월 1일 경기 당일 오전에 전 감독님과 통화를 한 적이 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 그런데 전 감독님, C씨 등은 그날 아침에 통화한 사실이 없다고 부인했다더라. 그런데 나중에 경찰이 통화내역 수사를 해보니 내 말대로 그 시간에 서로간에 통화한 내역이 다 나왔다.결과적으로 내가 한 말이 모두 사실아니냐.”

-수사 과정에서 SK 문경은 감독 이름이 거론됐다. 문 감독 이름은 왜 나온건가?

“2월20일 경기를 앞두고 A씨가 감독님이 얘기한 것이라면서 ‘감독들끼리 다 얘기가 됐다’고 했다는 것이다. ‘KT가 SK한테는 실력면으로 안 되지만, 그래도 혹시 KT가 큰 점수차로 지고 있더라도 SK가 주전 선수를 빼는 식으로 봐주거나 그렇게 하지 말라’는 식의 얘기가 서로 오갔다는 것이다. A씨가 내게 들려준 얘기인데 실제로 전 감독과 문 감독 사이에 경기 전날 그런 통화가 오갔는지는 나로서는 알 수 없다.”

-전 감독과 A 등이 경찰에 진술한 내용은 전혀 다르다.

“내 얘기에는 한치의 거짓말도 없다. 내가 거짓말할 이유가 뭐 있나. C씨 등은 이번 사건이 전 감독과는 상관이 없고 감독 이름을 팔았다고 진술했다는데 사실이라면 내게 사기를 쳤다는 것 밖에 안된다. 그들을 사기 혐의로 고소할 수 밖에 없다. 법적 대응을 준비하고 있다.”

고성표 JTBC 기자 muzes@jtbc.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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