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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흥국 돈잔치 끝나간다 … 13개월 새 9402억 달러 이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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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1.61% 떨어진 일본 닛케이지수 일본 닛케이지수 역시 약세를 면치 못했다. 닛케이지수는 19일 전날보다 1.61% 하락한 2만222.63포인트에 마감했다. 일본 도쿄에서 투자자가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다. [도쿄=AP]

‘달러 잔치’가 끝나가고 있다. 네덜란드 투자자문사인 NN인베스트먼트파트너스(NNIP)는 17일(현지시간) 발표한 보고서에서 “최근 13개월 사이에 중국 등 메이저 신흥국 19개 나라에서 빠져나간 외국인 자본이 9402억 달러(약 1109조5000억원)에 이른다”고 밝혔다.

 NNIP 신흥시장 투자전략가인 마르텐 얀 바쿰은 이날 보고서에서 “유동성 풍년 시기에 신흥국에 흘러든 자금을 감안하면 약 1조 달러는 상당한 규모”라고 설명했다.

 얼마나 흘러들었을까. 골드먼삭스 등은 미국의 양적완화(QE) 시기(2008년 11월~2014년 10월) 신흥시장에 유입된 자금을 2조~2조5000억 달러로 보고 있다. NNIP 집계대로라면 절반 가까이 이미 빠져나간 셈이다.

 두 가지 힘이 동시에 작용한 탓이다. 최근 달러 역류는 미국이 QE를 중단하고 기준금리 인상을 시사하면서 시작됐다. 동시에 신흥국 내부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톰슨로이터는 18일 전문가의 말을 빌려 “중국은 경기 둔화, 브라질·남아프리카공화국 등은 원자재 가격 폭락으로 투자 매력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최근 자금 이탈은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버클리 캠퍼스 배리 아이컨그린(경제학) 교수가 말한 역대 메이저급 자본 역류로 기록될 만하다. 그는 1980년대 초 외채위기, 90년대 멕시코·아시아 금융위기,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등을 메이저 자본 역류로 꼽았다.

 그런데 NNIP는 “최근 자금 이탈은 미국발 금융위기 때보다 심각하다”고 했다. 실제 2008~2009년 신흥국을 이탈한 외국 자본은 5452억 달러 정도로 추정됐다. 이는 최근 1년 남짓 새 신흥국을 빠져나간 자금의 57%밖에 되지 않는다.

 이탈 규모가 큰 만큼 ‘유동성 숙취현상(liquidity binge)’이 여기저기서 속출하고 있다. 중국과 브라질·러시아·남아공 등 주요 신흥국 주식·채권 값이 하락했다. 그 바람에 이들 나라의 통화가치도 약세를 보였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통화가치 하락은 다시 자본 이탈을 부추기고 있다”고 전했다. 자본 이탈 시기의 전형적인 악순환이다. 신흥국 경제가 성장 둔화와 통화가치 하락으로 비틀거리고 있는 상황에서 계속되는 자본 이탈은 수입 수요 감소와 내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는 글로벌 수요 둔화를 야기해 세계 경제에도 충격을 줄 수 있다.

 바쿰은 “위안화 절하가 당분간 (신흥국에서의 자본 이탈 속도를 증가시키는) 촉매 구실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QE 시대 거대한 자금 저수지였다. 신흥국에 투자된 2조~2조5000억 달러 가운데 절반이 중국으로 흘러들었다는 게 골드먼삭스 등의 추산이다. 그런데 최근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눈에 띄게 줄고 있다. 저수지 둑에 틈이 생기고 있는 모양새다.

 역사적으로 보면 신흥국에 흘러든 자금이 전액 빠져나가는 일은 없었다. 어느 순간 멈출 수밖에 없는 썰물현상과 닮은꼴이었다. 그날은 언제일까. 금융 전문 글로벌파이낸스는 “최근 달러 이동은 미 기준금리 인상 폭과 속도가 불확실해 빚어지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라고 전했다. 미 중앙은행이 금리를 올리기 시작하면 오히려 달러 역류가 진정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강남규 기자 dism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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