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예산 자율권 준다지만 … 질병본부 안 내놓는 복지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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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확산 사태의 근본 원인이 됐던 부실한 방역체제 개편의 핵심은 질병관리본부(이하 질본)를 어떻게 하느냐다. 그동안 전문가들은 질본을 질병관리청이나 질병관리처로 독립시켜 독자적인 인사와 예산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주장해 왔다. 이렇게 해야 우수한 인재를 불러 모으고 전문성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보건복지부는 질본 산하에 감염병 위기대응본부를 신설하되 질본은 여전히 복지부 산하 조직으로 두겠다는 구상을 해 왔다. 질본의 확대 개편과 다름없었다.

 정부의 이번 개편안은 전문가 주장과 기존 복지부 구상의 중간지대로 볼 수 있다. 질본을 독립시키지 않고 복지부 산하로 두되 본부장을 차관급(현재 1급)으로 올리고 인사와 예산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조직 체계는 지금처럼 하되 운영의 자율권을 부여한다. 복지부는 부경대 서재호(행정학) 교수의 발제문을 통해 개편 구상을 18일 공개한다.

서 교수는 17일 미리 배포한 발제문에서 “전국 단위에서 발생하는 감염병 통제와 관리를 위해 질본의 위상 강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본부장을 차관급(현재 1급)으로 격상시켜 조직 내외의 통제 및 조정력을 우선 확보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다. 서 교수는 이어 “차관급 질본 본부장에게 독자적인 인사권과 예산권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 교수는 “질본을 청(처)으로 승격하면 위기 발생 시 보건의료와 건강보험 등과 연계 협력이 약화되고 다른 부처의 협력을 이끌어내기 어려우며 지방자치단체의 통제 관리가 약화된다”고 지적했다. 보건 분야 차관 신설도 반대했다. 질본이 보건차관 직속 관할이 되기 때문에 독립성과 자율성이 약화된다는 이유에서다.

 복지부의 고위 관계자는 “이번 안대로 하면 질본을 사실상 독립시키는 효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복지부의 다른 관계자도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도 보건부 밑에 있다. 법이나 정책은 보건부가 맡고 CDC는 실행을 담당한다”며 “우리도 이번 개편안대로 하면 미국 CDC처럼 전문가의 권한이 강화돼 지금처럼 질본이 복지부 등의 눈치를 보지 않고 자율성이 강화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번 개편안이 복지부의 조직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무늬만 개편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서울대 의대 김윤(의료관리학) 교수는 “내용은 질병관리처로 포장하고 겉 포장은 본부라고 하는데 이해가 안 된다. 청으로 독립하면 지자체나 다른 부처 협조를 못 받을 거라는데, 정부 안대로 두 개(복지부와 질본)로 쪼개면 그게 컨트롤타워냐. 긴급할 때 신속한 결정을 내리는 데 지장이 생길 것”이라고 지적했다. 최재욱 의사협회 의료정책연구소장은 “이번 개편안이 국장과 차관 사이 어딘가에 질본 본부장을 둔다는 것으로 보인다. 인사권도 결국 안 줄 것”이라며 “복지부가 질본에 자율성을 절대 안 주겠다는 얘기로 들린다. 개편안이 별 의미가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복지부는 보건부와 복지부 분리도 반대했다. 보건의료와 복지는 밀접한 서비스여서 이를 분리하기 어렵고 국민이 두 서비스를 함께 받기를 희망한다는 이유를 들었다. 복지부의 업무 중 보건과 복지가 겹치는 분야는 의료급여(기초수급자 의료 제공) 정도밖에 없다. 보건부와 복지부로 분리한다고 해서 서비스가 둘로 갈라질 이유도 없는데 그걸 핑계로 댔다.

 응급실 개편도 미흡하다는 평가가 나온다. 대형병원 응급실로 환자가 몰리는 문제에 대한 대안이 거의 제시되지 않았다. 비응급 환자용 별도 코스를 둬 응급 환자와 섞이지 않게 하고 일반 환자와 호흡기 환자를 별도 동선으로 진료한다는 점은 평가할 만하다.

신성식 복지전문기자 ss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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