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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view &] 문제는 인수합병 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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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8면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이사

우리나라 드라마에서 자주 등장하는 소재 가운데 하나는 ‘출생의 비밀’이다. 어느 날 갑자기 우연한 사건이 발생해서 주인공이 자신을 길러 준 부모가 낳은 부모와 다르다는 사실을 깨닫고 괴로워하는 장면은 식상하지만 약방의 감초처럼 등장하고 있는 한류 드라마의 한 플롯이다. 특히 ‘입양’이라는 주제에 대해 한국이 여전히 배타적인 사고를 지니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런 생각의 차이는 기업 생리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서양인들은 자식이 있어도 입양을 하는 것에 개방적인 편이다. 이와 달리 한국 사람들은 ‘입양’ 자체를 여전히 버겁게 느끼며 아직도 직접 낳은 자식에 대한 애정이 더 깊은 편이다. 이런 심리적 편향이 기업전략에 반영되어 외부에서 자원을 인수합병(M&A) 등으로 ‘입양’하기 보다는 자신이 부족한 줄 알면서도 모든 것을 스스로 해 내고야 말겠다는 결정을 많이 한다. 혹은 우여곡절 끝에 인수를 하더라도 ‘입양된’ 기업이나 인재들을 제대로 자신들의 성장에 활용하지 못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근래 들어 국내에서도 기업간의 인수합병이 상당히 활발해 지고 있다. 하지만 문제는, ‘입양’ 이후 이다.

 스타트업은 정글에서 좌충우돌 뛰어 다니면서 기회를 창출해 나가는 유전자를 지니고 있다. 다수의 대기업들은 정글에 뛰어 다니던 스타트업을 우여곡절 끝에 인수하고 나서 자신들이 만들어 놓은 동물원에 가두어 두고서 관람객들에게 보여 주기만 한다든지, 삼시세끼 밥을 먹여 주면서 뿌듯해 하는 모습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렇게 시간을 보내기 시작하면 스타트업이 지닌 야성은 어느 순간 사라지게 마련이다. 특히 대기업들이 금과옥조처럼 여기고 있는 자신들의 KPI (핵심성과지표, Key Performance Index)를 인수한 스타트업에게 적용하는 순간, 그 인수는 실패의 나락으로 빠져들게 된다. 대기업이 이런 우를 범하는 것은 수 년간 매출이 제로였던 기업이 느닷없이 폭발적인 성장을 하는 것이 스타트업 생태계의 일반적인 현상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알지만 마음에서는 받아들이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1997년 9월 당시 재정경제원 차관으로 재직 중이던 강만수씨가 한국경영자총협회 초청 경영조찬세미나에서 이런 얘기를 했다.

 “(전략) 노동시장의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 필요하고 기업의 인수·합병(M&A)이 쉬워지도록 관련 제도개선을 추진해 나가겠다.”

 이 때로부터 거의 20년이 다 되어 가는데 아직도 정부는 M&A를 활성화하고 관련 제도를 고쳐 나가기 위해서 최선의 노력을 다 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늘 강조해 왔듯이 M&A가 활성화 될 수 있도록 민간기업들이 정부에게 규제 완화를 요구하는 일도 결코 바람직해 보이지 않으며, 때만 되면 정부가 나서서 기업간의 M&A를 활성화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일도 너무 낡은 발상이다. 나라 경제의 미래가 밝으면 억지로 말려도 M&A는 활성화 될 것이기 때문이다.

 게임회사인 넥슨이 ‘던전앤파이터’라는 게임을 개발했던 네오플이라는 개발사를 무려 3800억이라는 돈을 주고 인수했던 2008년 7월은 세계적인 경제위기였던 리만사태를 불과 몇 달 앞두었을 뿐더러 M&A활성화의 외침도 없었고, 제대로 된 세제혜택마저도 없었던 그런 시기였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한다. 넥슨의 네오플 인수는 성공적인 M&A 였고, 넥슨의 재도약의 발판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구글 182개, 시스코 172개, 페이스북 55개, 애플 69개. 이는 각 기업들이 창업 이후부터 지금까지 인수한 기업의 숫자다. 이 중에서 아마도 70% 정도는 실패한 인수로 판가름이 났을 것이다. 다만 30%의 성공적인 인수가 위 기업들이 여전히 승승장구할 수 있는 기반과 토대로 뿌리내려져 있다고 믿는다. 다만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것은 그들이 인수한 기업수도 아니고, 몇 퍼센트가 성공했는가가 아니다. 왜 그들은 그렇게 부단하게 인수를 하는지, 또한 엄청난 비용을 지불하고 인수한 기업을 어떻게 소중하게 다루느냐에 주목해야 한다.

문규학 소프트뱅크벤처스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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