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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끈에도 태극기 … 한국을 사랑한 벨기에 가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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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벨기에 팝가수 시오엔이 새로 낸 3집 앨범의 타이틀곡은 ‘홍대’다. 최근 방한한 그와의 인터뷰 장소도 홍대였다. 한국을 좋아하는 그의 기타 끈에는 태극기 문양이 그려져 있다. [사진 칠리뮤직코리아]

무의식과 같은 노래가 있다. 잊고 있다가도 작은 계기라도 만나면 노랫가락이 살아난다. 벨기에 출신 팝가수이자 싱어송라이터인 시오엔(37)의 ‘크루징(Cruisin)’도 그런 노래 중 하나다. 도입부의 경쾌한 피아노음을 듣는 순간 기네스 펠트로와 다니엘 헤니가 함께 찍은 빈폴 광고가 생각난다. 2003년 그의 첫 데뷔 앨범에 수록된 곡이고, 광고 음악으로 쓰인 건 2006년이다. 노래는 10년 넘게 살아서 한국인의 무의식처럼 자리 잡았는데도 정작 가수는 잘 안 알려졌었다.

 그런 시오엔이 최근 발매한 3집 앨범 ‘맨 마운틴(Man Mountain)’에는 노랫말 중 한국어가 섞인 노래가 포함됐다. 타이틀 곡 ‘홍대’다. 벨기에에서 촬영한 뮤직 비디오에는 그의 한국 사랑이 듬뿍 담겼다. 드럼통 고기구이, 고깃집 플라스틱 의자, 한국산 맥주 등 한국을 연상시키는 소품이 줄줄이 나온다. 한국에서의 크루징 인기를 알게 된 그가 뒤늦게나마 한 팬 서비스일까. “언젠가 화창한 여름날, 우리는 만날 거야. 홍대에서”라는 노랫말처럼 지난 14일 홍대에서 그를 만났다. 제천국제음악영화제 공연을 위해 방한한 그는 “모든 게 동화 속 이야기 같다”며 기뻐했다.

 시오엔은 2012년 처음 한국에 왔다. 벨기에에서 꾸준히 활동하던 차에 트위터 계정을 만들었다가 한국에서의 크루징 인기를 알게 됐다. 그는 한국의 레이블 등 각종 회사에 음반 발매 관련 e메일을 보냈지만 답을 받지 못했다. 관광으로라도 가봐야겠다 싶어 무작정 한국에 왔다. “어느 곳을 가든 꼭 레코드 가게를 들르는데, 우연히 들른 홍대 레코드 가게에서 주인이 날 알아보며 ‘당신 앨범을 몇백 장 팔았다’며 반가워하기에 놀랐다”고 말했다. 그 주인에게 소개받은 레이블에 다시 e메일을 보냈고, 그는 마침내 칠리뮤직코리아의 소속 가수가 됐다. 우연 같은 첫 방한 이후 그의 인생에는 벨기에와 한국을 잇는 고속도로가 뚫렸다. 6개 도시를 돌며 연 공연은 전석 매진이 됐다. ‘친한파 가수’로 TV 출연도 하고, 각종 페스티벌 무대의 단골 초청 손님이 됐다. 그는 “한국이 제2의 고향이 됐다. 예전에는 멀었는데 지금은 너무 가깝다”며 웃었다.

 시오엔의 아버지는 클래식 음악 선생님이었다. 그 역시 대학에서 플루트를 전공했다. 그런 까닭에 그의 곡에는 클래식 악기가 자주 등장하고, 서정적인 멜로디가 돋보였다. 벨기에에서도 동시 발매한 이번 앨범의 뜻은 듬직하고 묵직한 사람이다. 강하고 거친 느낌을 담아내기 위해 밴드와 사전 리허설 없이 즉석으로 스튜디오 녹음을 진행했다.

우연이 인연으로 이제 필연이 된 것 같은 그의 한국 진출기가 끝날 무렵 그에게 다음 계획을 물었다. 다소 즉흥적으로 보일 정도로 행동파인 그의 대답이 걸출하다. “아티스트의 장점은 정확한 계획을 갖지 않는 데 있어요. 그래야만 내 자신을 놀라게 하는 것들이 나옵니다. 나가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면 새로운 걸 얻게 됩니다. 모두에게 해당하는 말이에요. 저스트 고우 아웃(Just Go Out)!”

한은화 기자 onhw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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