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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광복절 경축사, 아쉽지만 실리·유연성은 평가할 만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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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0호 02면

말은 의지의 표현이자 행동의 예고다. 박근혜 대통령의 70주년 광복절 경축사 역시 그렇다. 국가원수로서의 의지를 보여줬고, 앞으로의 국정 방향을 대내외에 천명했다. 70주년이라는 숫자의 상징성, 북한의 지뢰 도발, 미흡한 아베 담화 등을 의식해 화끈한 대북·대일 메시지를 기대했던 이들은 아쉬워할 수도 있다.
 국민의 가슴을 설레게 하거나 지친 마음을 달래주기엔 모자란 면도 있겠으나, 담아야 할 내용은 대체로 다 담았다. 개혁과 경제부흥에 대해선 종전의 입장을 재확인했고, 북한 도발에 대한 단호한 응징과 함께 인도적 차원의 교류와 대화의 여지를 열어뒀다. 특히 연내 이산가족 명단 교환을 제안한 것은 인도적 교류의 상징적인 사례다.
 아베 담화에 비판을 자제하면서, 역사 문제엔 원칙적으로 대응하되 안보·경제·사회에선 협력한다는 투트랙 방침은 종전에 비해 유연하고 실리적으로 보인다. 과거형 사과에 미래형으로 응답한 셈이다. 이를 두고 ‘아베에게 면죄부를 준 셈’이라고 비난하는 것은 편협의 소치다. 한·일 관계는 더 이상 방치할 수 없을 만큼 악화돼 있다. 변하지 않는 아베에게 언제까지나 꽁하고 있을 텐가.
 남북 및 한·일 관계에 모두 원칙과 실용 병행노선을 채택한 것은 바람직하다. 대외 관계에서 특정 사안의 해결을 대화의 선결조건으로 삼는 것은 현명치 못하다. 모든 이슈가 그 하나의 전제조건에 못 박힌 채 옴짝달싹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북한과 일본을 향해 대화의 자세를 견지한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지금 한·중·일을 축으로 하는 동북아 정세는 그 어느 때보다 미묘해지고 불안해졌다. 평화로워야 할 태평양에선 미국과 중국의 대결구도가 점점 선명해지고 있다. 일본은 미국과의 동맹을 통해 대결구도의 한 축에 가세했다. 우리가 ‘결정적 선택’을 해야 할 날이 언제 닥칠지 모른다. 우리가 유연성과 실리를 추구할 수밖에 없는 배경이다.
 국내 상황을 보더라도 우리는 70주년 광복절을 경축만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한마디로 위기 상황이다. 성장동력이 식어 일본식 장기불황 조짐이 커지고 있다. 정부의 위기관리 능력이나 업무 역량도 현저히 떨어져 무슨 일 터질 때마다 우왕좌왕이다. 이게 국민의 불안감을 부채질하고 있다. 정치·경제·사회 그리고 공공과 민간 각 부문에서 ‘금속피로’가 쌓여가고 있는 형국이다. 여기에다 양극화·고령화가 짙은 그림자를 드리운 지 오래다. 날개를 활짝 펴고 날아야 할 청년들은 취업용 스펙 쌓기에 휘둘리며 시들어 가고 있다. 좌절과 폐색(閉塞)이라는 유령이 우리 사회를 불길하게 맴돌고 있지 않나. 뭔가 획기적이고 창의적 발상을 통한 근본적 개혁 없이는 언제 나락으로 떨어질지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남은 건 행동이다. 경축사 가운데 ‘일관되고 성의 있는 행동’은 일본에 대한 촉구에만 그치지 않는다. 우리 스스로를 향한 표현일 수도 있다. 박근혜 정부는 4대 개혁, 남북 및 한·일 관계 개선, 창조경제와 문화융성 등 스스로 제시한 국정과제를 일관되고 성의 있게 실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야 미래 정부가 광복 80주년, 90주년, 나아가 100주년 때 올해의 축사를 교과서로 삼을 수 있다.
 우리가 원하는 미래는 시간이 흐른다고 그냥 찾아오는 게 아니다. ‘미래’ 자(字) 들어간 부처를 뒀다고 되는 것도 아니다. 국민 모두가 과거를 딛고 치열하게 나아가야 비로소 쟁취할 수 있는 게 미래다. ‘새로운 도약을 위한 대장정’은 경축사의 활자에 그쳐선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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