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에딘버러서 경험한 한국문화의 마법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440호 31면

2009년 생전 처음 만난 그 한국인을 잊을 수가 없다. 내가 스코틀랜드에서 ‘에딘버러 공연예술 축제(Edinburgh Festival Fringe)’의 언론 담당으로 일할 때였다. 내 사무실로 들어선 그는 “나는 똥춤을 공연하고 있다”면서 신문에 소개되길 원한다고 했다. 그는 ‘지상 최고의 쇼’로 유명한 에딘버러 축제에서 공연중인 한국 ‘민들레 이야기’라는 아동극의 일원이었다.
에딘버러 축제는 매년 8월 한 달간 전세계에서 몰려든 3000편의 연극이 공연된다. 이번 여름에는 49개국에서 출품된 3314편이 313개 무대에서 5만459회 공연된다. 가히 세계 최대 예술공연이다. 다양한 색깔의 각국 공연자들이 에딘버러 성과 홀리후드 궁전을 연결하는 오래된 자갈 포장 길을 가득 채운 가운데 세계 각지에서 몰려온 수천 명이 주시한다. 축제 기간에 이 길을 걷다 보면 상상을 뛰어넘는 기발한 아이디어 작품을 들고 온 공연자들을 접하게 된다. 불을 삼키는 요술사, 서커스 광대, 스웨덴의 이교도 춤꾼, 미국의 저속한 시 낭송자까지 달려들어 자신들의 쇼를 봐달라고 한다.

외국인 칼럼

한국의 난타 공연이 이 무대에서 공연된지 17년이 지났다. 올해 ‘한국 시즌’을 맞아 주요 무대 중 한 곳인 어셈블리에서 한국 작품이 처음으로 공식 소개되니 과거에 비해 큰 도약이다. 이를 주관하는 한국 공연 기획사 에이투비즈(AtoBiz)는 엄선된 다섯 개 한국 공연단을 이끌고 왔고, 매년 정례화를 약속했다. 이들은 김치나 비보이 춤보다 더 인기 있는 한국 대중문화를 보여줄 작정이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끝없이 백파이프를 연주하고 스코틀랜드의 대표 요리인 해기스(양 순대 요리)만 내놓는다면 한국인들은 질릴 것이다. 마찬가지로 외국인들도 아리랑과 김치 이상의 한국 문화에 갈증을 느낀다. 한국 전통은 아름답고 중요하지만 외국인들은 역동적이고 진화하는 활기찬 한국 문화예술에 더 공감한다.
에딘버러 축제는 누가 무엇을 공연해도 되는 무대다. 국적·언어·문화 경계를 기꺼이 뛰어넘어 창의성을 분출하는 공연이 최고다. 한국 공연기획사 EDP는 셰익스피어의 원작 ‘말괄량이 길들이기’에 착안한 힙합 작품을 선보였다. 옛것과 새것, 동양과 서양, 유교와 페미니즘까지 뒤섞었다.

한 한국 외교관은 외국의 국경일에 한국 전통극을 공연하는 아이디어에 대해 내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정중하게 웃었지만 솔직히 말해 그런 공연은 안동 하회마을이나 인사동이 적격이다. 문화를 통한 공공외교를 하려면 외국인들이 단순한 그 나라 이미지가 아니라 살아 있는 문화를 더 보고싶어 한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
2009년 에딘버러에서 만난 그 한국인과 똥춤에 대해 나눈 짧은 대화를 계기로 내게는 큰 변화가 생겼다. 지도상에 한국이 어딘지도 몰랐던 내가 얼마 뒤 짐을 싸서 한국으로 오게 됐다. 이런 게 문화의 힘 아닐까. 이번 여름에도 에딘버러에서 그런 마법이 통하길 바란다.

커스티 테일러 이화여대 국제대학원 졸업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