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버지와 반목하다 40년 은둔 … 삼성가 ‘비운의 황태자’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6면

이맹희 CJ 명예회장(맨 왼쪽)이 1987년 11월 아버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주의 빈소를 지키고 있다. 사진 왼쪽부터 이 명예회장, 2남 이창희 전 새한미디어 회장(작고), 3남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3남이 그룹의 후계자로 지목되자 이 명예회장은 40년 가까이 중국과 일본을 오가며 은둔생활에 들어갔다. [중앙포토]

“경영 스타일과 관련해 창업주와 자주 마찰을 빚었다. 이병철 회장이 1976년 삼남 이건희를 후계자로 지목하면서 위상이 대폭 축소됐다. 개인적으로 제일비료를 설립해 재기를 꿈꿨으나 실패했다.”

 14일 오전 9시39분(현지시간) 중국 베이징의 한 병원에서 생을 마감한 이맹희(사진) CJ 명예회장에 대해 CJ그룹 측은 이렇게 밝혔다. 84세. 사인은 오랫동안 그를 괴롭혀온 폐암이다. ‘삼성그룹 비운의 황태자’로 불리는 이 명예회장은 제일제당 대표이사 등을 역임하는 등 ‘총수급 의전’을 받기도 했지만 말년은 순탄치 않은 파란만장한 삶 그 자체였다. 마지막 가는 길도 쓸쓸했다. 자식들의 임종도 없었다. 장남인 이재현 CJ그룹 회장은 아버지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죄책감에 고개를 떨구고 눈물을 훔친 것으로 전해졌다.

 1931년 경남 의령에서 고 이병철 회장의 3남 5녀 중 장남으로 태어난 이 명예회장은 도쿄농업대학과 동 대학원, 미시간주립대(경제학박사)를 졸업했다. 56년 12월 손영기 전 경기도지사의 딸 복남(현 CJ그룹 고문)씨와 결혼한 이 명예회장은 안국화재(현 삼성화재) 이사, 삼성전자 부사장, 삼성물산 부사장, 제일제당 대표이사 등을 거치며 명실상부한 삼성그룹의 황태자로 자리매김했다. 그런 그의 삶이 전환점을 맞게 된 것은 1966년 ‘사카린 밀수’ 사건 때였다. 당시 삼성그룹 계열사인 한국비료는 58t의 OSTA(사카린의 원료 약품)를 밀수하다가 부산세관에 적발됐다. 당시 여론이 들끓자 이병철 창업주는 한국비료 지분 51%를 국가에 헌납하고 현직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했다.

 이후 이 명예회장은 약 7년간 삼성의 총수 역할을 대행했다. 하지만 화려한 나날은 오래가지 않았다. 재계 관계자는 “당시 이병철 창업주는 장남인 이맹희 명예회장이 사카린 사건을 청와대에 투서했다고 생각해 결정적으로 부자 간의 사이가 틀어졌다”고 전했다. 결국 사카린 사건이 발생한 지 7년 뒤인 73년 이 명예회장은 17개에 달하던 삼성그룹 직함 중 14개를 박탈당했다. 이후 76년 이병철 창업주가 삼성그룹의 후계자로 삼남 이건희(73·현 삼성전자 회장)를 지목한 뒤에는 그룹의 모든 직책에서 물러났다. 이후 약 40년을 중국과 일본 등에서 은둔하며 지냈다. 93년 개인 돈으로 대구에 제일비료라는 중소기업을 세워 비료 개발에 들어갔으나 결국 2003년 폐업했다.

 설상가상으로 2012년 말에는 폐암 판정까지 받았다. 일본에서 폐 3분의1을 절제하는 수술을 받았으나 이후 암이 재발해 지금까지 중국에서 치료를 받아 왔다.

 이 명예회장의 유족으로는 아내 손복남(82) CJ그룹 고문과 딸 이미경(57) CJ그룹 부회장, 장남 이재현(55) CJ그룹 회장, 차남 이재환(54) 재산커뮤니케이션즈 대표 등이 있다. CJ그룹은 이 명예회장의 장례식을 CJ그룹장으로 치르기로 했다. 이채욱 CJ주식회사 대표가 장례위원장을 맡게 됐으며 빈소는 서울대병원에 마련될 예정이다. 구속집행정지 상태로 서울대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이재현 회장도 아버지 곁을 지키며 상주 역할을 할 수 있게 됐다. 이재현 회장은 현재 신장이식수술 후유증에 시달리면서 손과 발의 근육이 위축되는 유전병인 ‘샤르코-마리-투스’를 앓고 있다. CJ그룹 측은 “중국 정부와의 운구 절차 협의 문제로 장례 시기 및 발인일은 다소 유동적”이라고 밝혔다.

이현택 기자 mdfh@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