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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몰랑’ 역사인식 … 부끄러운 광복 70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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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9면

[일러스트=박용석]
정유진
서울여대 영문과 4학년

“울 밑에 선 봉선화야 네 모양이 처량하다. 길고 긴 날 여름철에 아름답게 꽃필 적에 어여쁘신 아가씨들 너를 반겨 놀았도다. 어언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1920년대 독립을 애타게 원했던 민초들이 목메어 불렀던 가곡 ‘봉선화’다. 일제의 압박 속에 온갖 수난을 당하며 서럽게 우는 우리 민족의 신세가 처량한 봉선화와 어찌 그리 닮았을까.

 얼마 전 영화 ‘암살’을 봤다. 일제시대 독립운동가들이 일본 요인과 친일파를 암살하기 위해 목숨을 던지며 싸우는 내용이었다. 원래 역사에 관심이 많은 터라 2시간 내내 두 손을 불끈 쥐며 영화에 빠져들었다. 가슴이 벅차 영화관을 나오는데 “전지현 예쁘더라. 이정재 잘생겼던데”를 연발하는 어린 학생들과 마주쳤다. 순간 이들은 우리 역사를 얼마나 제대로 알고 있을까 의구심이 들었다. 요즘 정부는 학생들에게 인성교육과 창조교육을 적극 실시하겠다고 강조한다. 그렇다면 역사 교육은 또다시 뒷전으로 밀린 것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씁쓸하기 그지없다.

 역사를 모르는 학생이 좋은 인성과 창조정신을 가질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선진국들은 자라나는 학생들에게 예외 없이 역사를 필수과목으로 가르친다. 그러나 우리나라 학생들은 역사이야기가 나오면 대충 아는 몇 가지만 말하고 입을 다물어버린다. ‘기-승-전-아 몰랑’이 우리 학생들의 역사인식 수준이다. “국사를 공부했느냐”고 물어보면 “나는 수능 때 선택 안 했다”고 답하는 학생이 많다.

 역사는 고리타분한 골동품이 아니다. 우리나라 곳곳엔 학생들이 외우기에 급급했던 ‘그 사건들’로 아직도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역사의 증인이 많다. 위안부 할머니들이 대표적이지만 제주 4·3사건이나 여수·순천 사건처럼 요즘 학생들이 존재 자체를 모르는 비극에 휘말렸던 사람들 중에도 생존한 이들이 있다. 이들 사건이 남긴 상처와 공포는 아직도 많은 이들을 잠 못 이루게 한다. 역사는 절대 우리의 ‘오늘’과 무관하지 않다.

 이제는 근본으로 돌아가 역사와 소통을 하자. 역사를 통해 지금 우리가 배울 점과 고쳐야 할 점을 알아야 한다. 그래야 바른 인성과 건강한 창조정신을 가진 동량이 나온다. 역사의식, 다시 말해 근본이 없는 창조는 언제든 모래성이 될 수 있다. 지나간 7월 17일 제헌절을 다시금 생각한다. 일제 침탈 36년 만에 되찾은 대한민국이란 국호 아래 헌법이 공포된 그 역사적인 순간의 의미를 되새기지 못했다면, 오늘 8·15만이라도 광복 70주년을 맞은 대한민국의 역사를 반추하는 시간을 갖기 바란다. 대한민국 국민이 대한민국을 보전하지 않으면 그 누구도 한반도를 지켜주지 않는다.

정유진 서울여대 영문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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