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하토야마의 무릎 꿇기 사죄, 동아시아 평화 초석 돼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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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전 일본 총리가 12일 과거 일제 만행에 대해 사죄하고 한국 순국선열 앞에 무릎을 꿇었다. 일제가 만든 ‘서대문 형무소’를 찾아 마음을 전했다는 점에서 뜻깊다. 일본 전·현직 총리 중 한국 독립운동 관련 시설에서 무릎을 꿇은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사실도 새겨 둘 만하다.

 우리는 이를 동아시아 평화를 위한 고무적 행동으로 평가한다. 평화는 침략과 식민지배의 과거사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진정한 반성에서 시작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토야마 전 총리가 보여 준 태도가 앞으로 한·일이 서로 손잡고 평화로운 미래로 나가는 데 초석이 될 것으로 기대한다. 이번 일로 일본에도 과거사를 반성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평화헌법 수호를 다짐하는 양식 있는 정치인이 있음을 한국인에게 새삼 각인시킨 효과도 있다.

 이날 하토야마 전 총리를 비롯해 간 나오토(菅直人), 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하타 쓰토무(羽田孜) 등 전 총리들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에 대한 ‘역대 총리의 제언’에 동참한 점도 높게 평가한다. 이들은 ‘전쟁할 수 있는 일본’을 위해 아베 총리가 추진 중인 집단자위권 법안에 반대하고 평화를 호소했다.

 13일 서울에서 열린 ‘2015 동아시아평화국제회의’에서 ‘(전쟁을 금지한) 일본 평화헌법 9조는 동아시아 평화의 근간이다’는 내용이 포함된 동아시아평화선언이 발표된 점도 고무적이다. 한반도 평화체제 정착과 함께 일본 평화헌법 수호가 동아시아 평화 정착을 위한 출발점이라는 데 참석자들이 인식을 같이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평화를 누리려면 무엇보다 이웃부터 제대로 이해하고 서로 화해하며 사이좋게 지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오늘 종전 70주년 담화를 발표할 예정인 아베 총리는 과거사와 집단자위권 문제에 대한 자신의 언급이 어떠한 파장과 역사적 무게를 지니는지를 깊이 헤아려야 한다. 무엇보다 일본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려면 동아시아 평화를 어떻게 지킬지부터 고민해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하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