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얼빠진 정부 안보라인 이대로는 안 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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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과연 이 정부는 위기상황에 대처하고 극복할 능력이 있는가. 북한의 지뢰 도발에 대한 정부 대응의 난맥상을 보면 대답은 ‘아니오’다. 세월호 참사, 메르스 사태와 같은 위기상황에서도 우왕좌왕해 사태를 키웠던 정부가 국가의 존위가 걸린 안보 문제에서조차 허둥대며 적절한 대책은커녕 책임 회피에 급급한 모습만 보이고 있다.

 대한민국 안보의 컨트롤타워는 국가안전보장회의(NSC)다. 국가안보실장을 상임위원장으로 외교부, 국방부, 통일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 등 외교안보 책임자들이 모두 참여한다. 국가안보 관련 문제가 발생했을 때 긴급히 NSC를 소집해 정부 차원의 종합적 판단을 하고 부처 간 업무를 조율하는 게 임무다. 그렇게 해서 통일되고 일관성 있는 대책을 제시해 대통령을 보좌해야 할 텐데 전혀 그런 모습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

 폭발한 지뢰가 북한군이 매설한 것으로 국방부가 확신했다는 4일 오후 늦게라도 NSC 회의가 소집돼 논의를 했다면 통일부가 다음날부터 매일 북측에 고위급 회담 제안을 하는 ‘코미디’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고위급 회담이야 언제고 열려야 하겠지만 수색대원 2명이 중상을 입은 상황에서 할 제안은 아니다. 게다가 8일 NSC 회의가 열렸는데도 통일부가 10일까지 서한 전달을 시도한 것을 보면 회의에서 뭔 얘기가 오갔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NSC는 도대체 뭘 하는 사람들이냐”는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의 질책이 당연하다 못해 너무 점잖다.

 책임 부서이자 NSC 상임위 멤버인 국방부 장관은 자신이 청와대에 보고한 날짜조차 착각하고 있다. 4일 보고했다고 하다가 청와대가 “‘원인 미상의 폭발’이란 보고는 4일이며 ‘도발 추정’ 보고는 5일”이라고 반박하자 그제야 실수라고 말을 바꿨다. 마치 청와대와 국방부가 책임공방을 벌이는 듯한 모양새다. 경계 실패 지적에는 초목 제거라는 재탕 대책만 언급할 뿐이다.

 청와대 보고 논란도 처음이 아니다. 중대한 일이 벌어지면 대통령에 대한 보고가 당연한 건데 우리는 늘 대통령 보고 여부가 문제가 된다. 대면보고를 꺼리는 대통령의 태도 탓이다. 긴박한 상황이 벌어지면 장관이 정부 수반인 대통령한테 직접 전화를 걸어 보고해야 하는데 그렇질 못하고 ‘문고리’를 통해야 하니 타이밍도 늦고 혼선도 생기는 것이다. 국가 일을 남 얘기 하듯 하는 대통령의 어법 또한 그런 보고체계와 무관하지 않다.

 박근혜 대통령은 어제 대통령 직속 통일준비위원회가 주최한 심포지엄 축하 메시지에서 “북한 군사 도발의 궁극적 해결책은 평화통일”이라고 말했다. 앞서도 “도발 대처와 평화 구축 노력을 병행할 것”이라고 언명했다. 우리는 이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하지만 평화통일은 거저 주어지진 않는다. 튼튼한 안보의 반석 위에서만 평화가 가능하고 숱한 위기상황을 현명하게 극복해야만 통일에 이를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금의 얼빠진 NSC 핵심 안보 지휘라인으로는 그것을 기대하기 어려워 보인다. 더 늦기 전에, 더욱 중차대한 안보 위기상황에 맞닥뜨리기 전에 해법을 찾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