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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어진 수요일] 청춘리포트 - 2030 국가대표들의 광복·조국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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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광복에 목숨 바친 애국지사들. 왼쪽부터 안중근·이봉창 의사, 이애라 선생, 윤봉길 의사.

사흘 뒤면 광복 70주년입니다. 조금 낯설게 느껴지지만 기억해둘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의사(義士)’라고 부르는 독립운동가들 대다수가 일제강점기 당시엔 2030 청춘 세대였다는 사실 말입니다. 1932년 일왕 생일 행사장에 폭탄을 투하한 윤봉길 의사는 당시 23세였습니다. 같은 해 31세였던 이봉창 의사도 일왕을 겨냥해 수류탄을 던졌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29세였던 1909년 일본의 초대 총리 이토 히로부미를 저격했죠. 또 여성 독립운동가 이애라 선생 역시 21세에 3·1운동 애국부인회를 이끌었습니다.

 독립투사들이 지금의 2030 세대와 또래였다는 사실 앞에서 숙연해집니다. 청춘리포트는 광복 70주년을 맞아 2030 청춘들에게 이렇게 묻고 싶었습니다. 당신에게 조국은 어떤 의미입니까. 물음은 두 갈래였습니다. 하나는 조국과 광복에 대한 일반적인 20~30대의 인식을 알아본 설문입니다. 다른 하나는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다른 나라들과 겨뤄본 2030 국가대표 선수들의 조금은 특별한 조국에 대한 인식입니다. 두 갈래 물음에 대한 답변은 닮은 듯 달랐는데, 요즘 2030 세대의 국가관을 엿볼 수 있었습니다.

일제강점기의 독립투사들은 조국의 독립을 위해 제 청춘을 바쳤다. 그와 비슷한 또래로 2015년을 살고 있는 요즘 청춘들은 입시와 취업, 힘겨운 사회생활을 거치며 그들 나름대로의 ‘전쟁’을 치러야 했다. 이들에게 조국과 광복은 무슨 의미일까. 청춘리포트팀이 20~30대 남녀 100명에게 물었다. 당신에게 조국은, 광복절은 어떤 의미인가요.

왼쪽부터 남자 핸드볼 국가대표 정의경(30) 선수,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유현지(31)·유은희(25) 선수, 남자 국가대표 박중규(32) 선수. [오종택 기자]

 “고통받던 우리 민족이 자유를 되찾은 날이죠.” “지금의 우리나라를 있게 해준 뜻깊은 날입니다.”

 광복의 의미를 되새기는 응답들이 나왔다. 하지만 이런 답변은 매우 드물었다. 절반이 넘는 응답자는 다음과 같은 답변을 주로 했다.

 “빨간 날, 한마디로 쉬는 날이죠.” “중요한 날인 걸 알지만 2015년을 사는 저에겐 크게 와닿지 않는 날입니다.”

 일제로부터 광복을 되찾은 해(1945년)를 묻는 질문에 21%가 틀리게 답했다. 3·1운동이 일어난 연도(1919년)를 모르는 응답자도 43%나 됐다. 한·일 강제합병이 일어난 날은 아는 사람(39%)보다 모르는 사람(61%)이 더 많았다.

 일반적인 20~30대의 조국과 광복절에 대한 인식은 이처럼 냉소적인 편이었다. 온 나라가 광복 70주년으로 들뜬 것 같아도 당장 눈앞의 취업과 승진 문제 등으로 고민하는 2030 세대에겐 마치 다른 나라 이야기처럼 인식되고 있다는 뜻이다.

 비슷한 또래이지만 조국에 대해 조금 다른 시각을 가진 청춘 세대는 없을까. 감히 비교하자면, 저 일제강점기 당시 젊은 독립운동가들처럼 조국이라는 말 앞에서 가슴이 뛰어본 적이 있는 2030 청춘들 말이다.

 청춘리포트는 가슴에 태극기를 달고 뛰는 국가대표 선수들을 만났다. 이들이라면 비록 젊은 세대라 할지라도 조국에 대한 조금은 다른 인식을 들려줄 수 있으리라. 11일 오전 태릉선수촌을 무작정 찾아갔다.

 그곳에서 오는 10월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 예선전을 앞두고 굵은 땀방울을 흘리고 있는 여자 핸드볼 국가대표 유은희(25·인천시청)와 유현지(31·삼척시청) 선수, 남자 국가대표 박중규(32·코로사) 선수와 정의경(30·두산) 선수를 만났다. 가장 궁금했던 건 태극기가 주는 남다른 감동이었다. 바쁜 삶을 살아내고 있는 평범한 20~30대는 느끼기 힘든 진한 조국애 같은 것.

 - 국가를 대표해 태극기를 달고 경기에 나서는 느낌은 어떤가요.

 ▶유은희=처음 태극마크를 달고 경기장에 들어섰을 때 왠지 모르게 울컥했어요. 그동안 뛰었던 국내 리그 경기와는 분위기가 달랐죠. 애국가가 울려 퍼지고, 상대 국가대표 선수들이 자신들의 언어로 파이팅을 외칠 때, 내가 나라를 대표해 나왔구나 하는 자부심과 함께 부담감도 몰려왔어요.

 ▶정의경=감독님은 모든 선수가 훈련장에 입장할 때 경기장 지붕에 매달린 태극기를 올려보고 5초간 묵념을 하라고 강조하세요. 애국심을 강요하는 게 아니라 조국을 대표해 나왔으니 스스로에게, 또 국민에게 부끄럽지 않은 훈련을 하자는 의미예요.

 대화를 나누는 도중 유현지 선수의 팔과 목덜미 여기저기에 멍 자국과 손톱에 긁힌 상처가 눈에 띄었다. 유 선수는 “선수라면 누구에게나 익숙한 상처다. 국가대표 경기를 치르면 이보다 더한 상처나 부상도 각오해야 한다”며 웃어 보였다.

 - 올해 어느덧 광복 70년을 맞이했네요.

 ▶유현지=국가대표 주장으로서 조국에 대한 의무감, 자부심을 많이 느끼고 있어요. 이 모든 게 70년 전 우리나라의 광복 없이는 존재하지 않았을 거라고 생각해요.

 ▶박중규=의거 당시 윤봉길 의사가 23세, 안중근 의사가 29세라는 이야기를 듣고 정말 놀랐어요. 지금의 저보다도 어린 나이에 목숨을 걸었던 거니까요. 제가 그분들의 상황이었다면 정말 목숨을 버리면서까지 광복을 위해 애쓸 수 있었을까. 솔직히 쉽지 않았을 것 같아요. 지금 이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경기장에서 대한민국의 스코어가 올라갈 수 있도록 한 점 한 점 최선을 다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 조국을 대표한다는 느낌, 언제 가장 많이 느끼나요.

 ▶유현지=경기 시작 전 애국가가 울려 퍼질 때요. 특히 해외에서 경기를 할 땐 애국가를 들으면 소름이 돋아요. ‘대한민국’을 외치는 관중석의 함성이 울려 퍼질 때는 감동과 함께 울컥하기도 하고요.

 ▶정의경=어린 시절 할머니(76)께서 저를 힘들게 키우셨어요. 지금도 제가 참가하는 모든 경기를 다 챙겨보세요. 저는 조국을 대표한다는 게 바로 할머니 같은 분들을 대표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일제강점기도 겪으신 할머니 세대 분들이 있었기에 지금의 저도 있는 거잖아요.

 대화 말미에 선수들은 ‘한·일전’에 대해서도 입을 열었다.

 ▶박중규=역사의 상처를 떠나서 일본은 선의의 경쟁을 펼치기에 좋은 상대예요. 그만큼 절대로 질 수 없는 경기이기도 하고요. 지난해 인천 아시안게임 예선전에서 일본과 만났을 때 주장이었는데 정말 죽기 살기로 뛰었던 거 같아요. 혼신을 다해 31-24로 이겼어요. 그 순간만큼은 광복의 기쁨을 느꼈다고 할까요? 하하.

정강현 청춘리포트팀장 foneo@joongang.co.kr
손국희 기자 9key@joongang.co,kr
강해라(홍익대 법학)·김유라(연세대 경영학) 대학생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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