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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묻지마 폐업 그만 … 문 잘 닫아야 재기하기도 쉽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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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장사가 안 돼 석 달 전 폐업 절차에 들어간 서울 송파구 삼전동 한정식 집에서 조준기(54) 사장이 고경수 대표(왼쪽)와 상담을 하고 있다. [조문규 기자]

경기도 분당의 수내역 인근에서 8년째 ‘남성용 미용실’을 운영하던 주상희(39)씨는 지난해 지옥 같은 여름을 보냈다. 새로 개점한 2호점 장사가 안 되면서 첫 점포까지 흔들렸다. 주씨는 “직원들 임금조차 제대로 챙겨 주지 못했다”며 “결국 폐업을 고민했다”고 몸서리쳤다. 그러다 평소 손님으로 알고 지내던 ‘폐업 지원업체’ 고경수(53) 대표를 만났다. 이후 20일간 폐업 여부를 깐깐하게 진단받았다. ‘폐업 119’라는 회사를 운영하던 고 대표는 ▶지금이 폐업 적기인지 ▶시설물은 어떻게 매각하는지 ▶행정처리는 어떻게 하는지 맞춤형 컨설팅을 제공했다. 일단 주씨 가게는 폐업 절차를 밟았다.

 하지만 ‘묻지마 폐업’은 아니었다. 재기 전략을 철저히 따져 봤다. 다행히 중고업자들이 ‘땡처리’ 수준으로 가져가는 미용도구도 제값을 받았다. 고 대표가 업체를 연결해 준 덕이었다. 주씨는 “2호점을 폐업한 뒤 다시 재창업해 가발 판매 등에 집중하고 있다”며 “이젠 실패에 대한 두려움도 많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주씨처럼 ‘폐업 악몽’을 겪는 자영업자가 한둘이 아니다. 통계청의 최근 집계에 따르면 문을 닫은 자영업자는 2010년 이후로 80만 명대에서 줄지 않고 있다. 짙게 밴 불경기 그림자 탓이다. 특히 올 상반기엔 중동호흡기증후군(MERS·메르스) 사태와 경기 부진이 겹쳐 폐업이 속출하면서 종업원 없는 1인 자영업자의 경우 387만 명으로 전년보다 10만 명 넘게 줄면서 20년 만의 최저를 기록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묻지마 폐업’이 많다는 점이다. 적당히 상가 권리금을 받거나 설비를 ‘떨이’처럼 넘긴 뒤 철수하는 자영업자가 적잖다. 업자는 물론 경제에도 큰 부담일 수밖에 없다. 이경묵 서울대 경영전문대학원 교수는 “급하게 이뤄지는 자영업자 폐업이 가족 해체와 극빈층 전락으로 이어진다”며 “폐업의 피해를 줄이는 전문 서비스업 발달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고 대표의 ‘폐업 119’도 이런 필요성에서 탄생했다. 창업을 지원하는 곳은 많아도 문 닫는 걸 돕는 업체는 찾기 힘들다. 고씨 이력서에도 ‘실패담’이 가득하다. 무역회사를 2년간 다니던 그는 건강식품 만드는 업체를 차렸지만 재미를 못 봤다. 그는 “이후 화훼·인테리어 등에도 손댔지만 결과는 같았다”고 했다. 그 과정에서 ‘잘 실패하는 법’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지난해 가을 ‘폐업 119’를 만들고 500여 곳의 폐업과 재기를 도운 이유다. 고 대표는 “폐업 직전 단계에서 전문가들이 합리적 의사 결정을 내리도록 보조할 경우 큰 도움이 된다”며 “하지만 폐업자 입장에서 돕는 곳이 거의 없는 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폐업 119’의 경우 30만~50만원의 자문 수수료를 받지만 ‘재창업 여력’이 없을 경우 공짜로 도움을 준다.

 정부도 다양한 지원책을 내놓고 있긴 하다. 중소기업청·고용노동부는 자영업자 전직을 지원하는 ‘희망 리턴 패키지’를 활성화할 계획이다. 중기청은 지난달부터 전직 지원금을 최대 60만원에서 75만원으로 늘렸다. 하지만 의류를 판매하는 박모(45)씨는 “정부 지원 프로그램을 잘 모른다”며 “전직 지원금을 몇 만원 올린다고 얼마나 큰 도움이 되겠느냐”고 말했다. 자영업자들이 ‘폐업 119’ 같은 곳을 찾는 이유다. 고 대표는 "폐업을 잘해야 재기도 쉽다”며 “폐업 지원이 곧 창업 지원”이라고 했다.

 특히 전문가들은 ‘창업 생태계’에서 설립·영업 등과 함께 ‘퇴출 전략’도 제대로 마련돼야 한다고 촉구했다. 박주영 숭실대 벤처중소기업학과 교수는 “한국은 선진국과 달리 실패를 성공을 위한 경험으로 여기는 인식이 적다”며 “폐업 공포에 빠지지 않도록 정부가 보다 적극적인 경영 진단과 함께 재기자금 지원 등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글=임지수 기자 yim.jisoo@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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