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승호의 ‘생각의 역습’] 평범한 듯한 ‘평균’엔 비범한 사회 규범 내재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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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39호 29면

사람들은 독립적인 사건들을 묶어서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동전을 던져 앞면이 연속으로 세 번 나오면, 네 번째는 뒷면이 나올 확률이 높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네 번째에서 뒷면이 나올 확률은 여전히 50%이다. 동전의 어느 한 면만 연속적으로 나오는 이례적인 사건은 대체로 동전을 던지는 횟수, 즉 표본수가 충분하지 못할 경우 발생한다.

스포츠 선수가 데뷔 첫해에 뛰어난 성적을 거두는 것 역시 이례적이다. 이런 선수에게 신인상을 주는 것도 보기 드문 비범한 성과를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데뷔 해에 신인상을 받은 선수가 이듬 해에 부진하는, 이른바 ‘2년 차 징크스’에 빠지기 쉽다. 하지만 이는 자연스러운 평균회귀(回歸) 현상이다.

어떤 분야든 첫 해, 혹은 첫 번째 시도에서 좋은 성과를 얻었더라도, 이후엔 성과가 오르락내리락하면서 평균으로 수렴된다. 스포츠 경기에서 감독이 훈련성과가 좋은 선수를 칭찬하면(보상) 이후 성과가 하락한다. 반면 훈련성과가 미흡한 선수를 야단치면(처벌) 이후 성과가 개선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이는 개별 훈련성과는 들쑥날쑥 하더라도 전체 성과는 평균으로 수렴되는 과정이다. 단 평균회귀는 충분한 훈련 횟수가 전제되어야 한다.

이러한 평균회귀 경향은 개인반경을 넘어 사회단위에서도 작동한다. 즉 사회적 평균에서 벗어난 사람들은 평균치에 맞추어 자신의 행동을 바꾸려는 ‘평균 지향성’을 보인다. 한 실험연구에서 같은 마을에 거주하는 300여 가구를 대상으로 전기 사용량을 측정했다.

조사 가구의 절반은 평균보다 많은 전기를 소비했고, 나머지 절반은 평균보다 적게 소비하는 전형적인 대칭분포를 보였다. 연구자들은 마을전체의 평균 전기 사용량과 해당 가구들의 전기 사용량을 비교하는 내용의 카드를 만들었다. 그리고 비교카드를 이웃 주민들도 볼 수 있도록 각 가구의 현관에 걸어 두었다.

몇 주 뒤 연구자들이 해당 가구들의 전기 사용량을 다시 측정한 결과 뚜렷한 평균 지향성을 확인하였다. 즉 전기 사용량이 마을 평균치보다 높았던 가구들의 전기 사용량은 5.7% 줄어든 반면, 마을 평균치보다 낮았던 가구들의 전기 사용량은 8.6% 늘었다.

이웃들보다 전기를 많이 쓰던 가구들이 전기 사용량을 줄인 것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전기를 적게 쓰던 가구들조차 마을 평균치에 맞춰 굳이 사용량을 늘린 것은 주목할 점이다. 사회적 평균이 단순한 정보를 넘어 일종의 사회규범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불확실한 상황에서 이러한 규범을 따르는 행동은 사람들에게 심리적 안정감을 준다. 이 때문에 우리의 뇌는 사회적 평균을 일종의 ‘안전지대’로 느끼고 이를 지향하는 것이다.

모두가 준수하는 규범을 아무렇지도 않게 위반하는 사람을 보면 곧바로 비난하기 쉽다. 하지만 비난은 감정적 방어기제를 즉각 활성화한다. 이 때문에 상대는 잘못된 행동을 고치기보다 그런 행동을 할 수 밖에 없는 이유들을 찾아 합리화하기 쉽다. 반면 사회적 평균은 사람들이 모여 있는 안전지대에서 자신이 얼마나 비정상적으로 떨어져 있는지 보여주기 때문에 자신의 행동을 먼저 돌아보게 만든다.

그러므로 누군가 사회규범을 위반할 경우, 대다수 사람들이 어떻게 하고 있는 지 일종의 ‘사회적 증거’를 보여주는 것이 효과적이다. 영국 정부는 소득세 미납자들에게 “대다수 국민들은 소득세를 제때에 납부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는 수고만으로 납세율을 20% 정도나 올렸다. 평균은 결코 평범하지 않다.

최승호 도모브로더 이사 james@brodeur.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