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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대 국회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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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17대 국회는 초선의원이 60% 이상을 차지한 젊은 국회다. 의원들은 헌정사상 가장 엄격한 선거비용 감시망을 뚫고 여의도에 입성했기에 자부심도 강하다. 그래서인지 여야를 막론하고 서슴없이'정치 개혁'을 외친다. 튀는 의원도 적지 않다. 물론 톡톡 튄다는 것이 발상의 자유로움과 언행의 진솔성을 뜻하는 것이라면 문제될 게 없다. 그렇지만 국회의원으로서 최소한의 의무도 지키지 않으면서 스스로는 누구보다 참신하다고 여기고, '나에게 불리한 것은 모두 악'으로 몰아붙이는 논리 개발에 능수능란함을 보이기까지 하니 문제다.

국회 대정부 질문이 진행됐던 이번주 각 당 원내대표실은 진땀을 뺐다. 대정부 질문이 끝나갈 무렵인 오후 4시쯤부터는 소속 의원들에게 전화를 걸어 "제발 본회의장에 나와달라"고 읍소해야 했다. 오죽하면 사회를 보던 김덕규 국회부의장이 "대정부 질문 도중 의사정족수마저 부족했던 적이 있었다"고 의원들의 자제를 촉구했을까. 본회의의 의사정족수는 재적의원 5분의 1 이상이다. 회의장에 60명도 앉아 있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과거 국회에서도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지긴 했지만 이 정도는 아니었다"는 게 국회 관계자의 증언이다.

자리를 비우는 의원들이 다선의원이나 나이가 든 의원들이냐 하면 그게 아니다. 초선이나 젊은 의원들이 자리를 지키지 않는 경우가 허다하다. 과거엔 선배 의원들의 질책이 두려워, 혹은 국회에 처음 들어와 이것 저것 보고 배우겠다는 의욕 때문에 초선 의원들은 국회를 지켰다. 17대 국회의 젊은 의원들은 선배도 겁나지 않고 배울 것도 없어 자리를 뜨는 오만을 부리는 것일까.

본회의가 열리는 날 외부의 저녁 약속마저 조심했던 게 그들이 비난하는 과거 의원들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국회 일정을 일찌감치 예고해도 본회의 중인 낮 시간에 외부 약속을 이유로 자리를 뜨는 의원들이 적지 않다"고 한다. 여야 당직자의 공통된 전언이다. 심지어 문제점을 지적받은 의원들 중엔 "이런 비생산적인 본회의 제도는 고쳐야 한다"고 적반하장 격으로 목소리를 높이는 이도 종종 있다고 한다. 아예 이들은 본회의장에 참석하는 것조차 '버려야 할 국회의 구태'로 치부하는 것인가. 진지성이나 효율성이 떨어지는 대정부 질문도 없지는 않다. 그렇지만 국회의원과 국무위원 간 논쟁을 지켜보면 우리 사회의 어젠다가 대부분 제기된다. 대정부 질문은 사회의 온갖 갈등을 한차례 걸러주는 완충역할까지 하는 것이다.

'중국의 고구려사 왜곡 대책 특위'와 '독도 수호 및 일본의 역사교과서 왜곡 대책 특위'의 활동에서도 의원들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그대로 드러난다. 고구려사 특위는 중국의 동북공정 문제가 불거진 지난해 8월 구성됐지만 8개월간 단 한번도 회의를 열지 않았다. 여야 간에 누가 위원장을 맡느냐 힘겨루기를 하다가 지난 3월에서야 위원장을 선임하고 활동시한을 내년 5월까지 연장한 게 활동의 전부다. 진정으로 나라를 사랑하고 국민을 두려워한다면 이럴 수는 없다.

고구려사특위 위원 중 일부 의원은 독도특위에도 참여하겠다는 과잉의욕을 보였다고 한다. 잊힌 특위 활동은 팽개쳐두고 조명을 받을 수 있는 곳에 또다시 나서겠다는 것인가. 우여곡절 끝에 고구려사특위 위원 중 여당 3명, 야당 1명의 의원이 독도특위에도 포함됐다. 그들 중엔 대학에서 사학과를 다녔다는 것 외엔 역사전문가라고 보기 어려운 의원들도 있다.

최소한의 기본기도 갖추지 못했으면서 돌출 언행으로 주목받으려 하거나 내 몫 챙기기에 열 올리는 모습은 보기 흉하다. 그건 톡톡 튀는 게 아니라 얄팍함과 가벼움일뿐이다.

김두우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