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중생 사망 1주기 여론조사] '촛불의 꿈'은 계속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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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1월 29일 학원강사 김기보(30)씨가 인터넷 신문 오마이뉴스에 '앙마'라는 아이디로 기사를 올렸다. "한 네티즌이 광화문에서 촛불시위를 벌이자는 제안을 했다"는 내용이다.

金씨의 제안은 인터넷을 통해 급속히 퍼지면서 시민들에게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미군의 무죄평결 소식에 격앙된 시민 5천여명이 이튿날인 11월 30일 촛불을 들고 광화문에 모였다.

촛불시위는 점점 커져 12월 14일엔 전국 30여곳에서 7만여명이 모였고, 미국.영국.독일 등 해외까지 확산됐다. 12월 31일에는 전국 60여곳에서 10만명이 모였다. 현재까지 연인원 5백여만명이 참여한 것으로 추산됐다.

촛불시위는 연령.성별.직업을 초월해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느슨한 연대'를 이뤘다는 점에서 기존 사회운동과 다르다. 간혹 일부 시위대와 경찰이 충돌했지만 전체적으론 비폭력을 고수했다. 촛불시위가 광범한 공감대를 이뤘던 이유다.

10대와 20대가 촛불시위대의 주류를 이루면서 이 같은 운동방식은 새로운 참여문화의 코드가 됐다.

촛불의 힘은 최근 토머스 허버드 미대사의 직접 사과까지 이끌어냈다. 주한미군도 한국민과의 친화를 위해 각종 프로그램을 개설했으며, 한ㆍ미주둔군지위협정(SOFA)도 일부 개선됐다.

반면 촛불시위가 시기적으로 대통령 선거와 맞물려 정치적 영향을 받았다는 지적도 있다. 특히 시위대가 미대사관을 둘러싸면서 대규모 반미 시위로 이어질 가능성에 한.미 당국은 촉각을 곤두세웠다.

지난 연말을 고비로 촛불시위는 규모가 크게 줄었다. 대신 'SOFA 개정'등 사회운동 성격이 강해지고 있다. 소강상태에 들어갔던 촛불시위는 지난 3월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하면서 반전.평화의 슬로건을 내걸고 재점화되는 양상이다.

범대위는 "사망사건 1주기인 13일 이후에도 SOFA 개정 요구를 중심으로 한반도 평화를 위해 적극적인 반전.평화운동을 펴나갈 것"이라고 예고했다.

김정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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