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담화 자문기구도 ‘사죄’는 쏙 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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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의 전후 70년 담화 자문기구가 6일 과거 일본의 ‘식민지 지배’와 ‘침략’, ‘통절한 반성’은 담았지만 ‘사죄’는 뺀 최종 보고서를 공개했다. 보고서는 한국의 전후 70년 대일 정책에 대해 양국이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이성과 일본을 극복해야한다는 심정 사이에서 흔들려왔다고 평가했다.

자문기구인 ‘21세기구상간담회’는 이날 이런 내용을 골자로 하는 보고서를 아베 총리에게 제출했다. 아베 총리는 14일 각의(국무회의) 결정을 거쳐 전후 70년 담화를 낼 방침이지만 이번 보고서에 미뤄 사죄는 언급하지 않을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20세기 일본에 대해 “만주사변 이후 대륙에 대한 침략을 확대해 제 1차 세계대전 이후 민족자결 등의 흐름으로부터 일탈했으며, 무모한 전쟁으로 아시아를 중심으로 한 여러 나라에 큰 피해를 주었다”고 밝혔다. 이어 "민족자결의 대세에 역행해 특히 1930년대 후반부터 식민지 지배가 가혹화했다”며 "30년대 이후 일본 정부·군 지도자의 책임이 참으로 무겁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보고서는 국제법상 침략의 정의에 대해 "유엔 총회의 침략의 정의에 관한 결의(74년) 등도 있지만, 국제사회가 완전한 일치점에 도달했다고는 말할 수 없다는 지적도 있다”고 설명했다. 이 부분은 아베 총리가 침략의 정의는 정해져 있지 않다고 언급했던 점을 염두에 둔 것으로 보인다.

 보고서는 20세기의 교훈과 관련해 반성을 언급했다. “20세기 후반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 대한 통절한 반성을 바탕으로 20세기 전반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나라로 거듭났다”며 “전후 일본의 발자취는 1930년대부터 40년대 전반의 행동에 대한 전면적인 반성 위에 성립하고 있다”고 밝혔다. 간담회가 이날 함께 낸 영문판의 ‘통절한 반성’은 ‘deep remorse’로 1995년 무라야마 도미이치(村山富市) 총리 담화의 영문 표기와 같았다.

 한·일 관계에 대해선 “이명박 정부 후반부터 악화해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개선의 조짐이 보이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박 대통령은 심정에 바탕을 둔 대일외교를 추진해 역사인식에서 일본의 양보가 없으면 양국 관계를 전진시키지 않겠다는 생각을 명확히 하고 있다”며 “박 대통령은 이제까지 없었던 엄중한 대일 자세를 가진 대통령”이라고 밝혔다. 그 배경에 대해선 “반일적인 단체가 영향력을 갖고 있는 것도 있지만, 한국 내에서 중국의 중요성이 커진 점도 들 수 있다”고 했다.

보고서는 “한국 정부가 역사인식 문제에서 ‘골대(골 포스트)’를 움직여온 경위에 비춰 영속하는 화해를 이루기 위한 수단에 대해서는 한국 정부도 함께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적었다. 골대 이동 언급은 군위안부 문제 등과 관련해 한국 정부의 입장이 상황에 따라 바뀌는 것을 지적한 것으로 보인다. 니시무라 다이조(西室泰三)일본우정주식회사 사장(좌장)을 비롯해 학계·재계·언론계 등 16명으로 구성된 21세기 구상 간담회는 지난 2월 이래 지금까지 7차례의 모임을 가졌다.

 한국 외교부는 이에 대해 “한일관계에 선순환적 발전을 도모하려는 정부의 의지에 역행하는 것”이라며 “역대 내각의 인식을 계승한다는 일본 정부의 공언과도 배치된다”고 지적했다.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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