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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 인턴기자의 현장에서] 도심 속 보이지 않는 새 도살장

중앙일보

입력

환생교(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 모임)의 ‘새만금 바닷길 걷기’에 참여한 오 씨가 발견한 전북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 한 투명 유리벽 밑의 새 사체 [사진=오동필씨 페이스북]

지난달 28일 오동필(40) 씨는 환생교(환경과 생명을 지키는 교사 모임) 회원들과 ‘새만금 바닷길 걷기’ 행사에 참여했다 믿을 수 없는 현장을 목격했다. 전북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의 도로 양옆으로 설치된 유리방음벽 밑에 10여 마리 새들이 떨어져 죽어있었다. 물총새, 뱁새, 직박구리 등 4종의 텃새들이 죽어 여기저기 흩어져 있었다. 무엇 때문인지 확인하기 위해 회원들과 주위를 둘러보던 오 씨 앞으로 물총새 한 마리가 낮게 비행하더니 ‘쿵’하는 소리와 함께 땅으로 고꾸라졌다. 오 씨는 “새들이 유리 벽의 존재를 알지 못하고 비행하다가 그대로 들이받아 죽어가고 있었다“며 ”유리방음벽이 마치 새들의 도살장 같았다“고 말했다.

유리창 건물인 인천공항. 이렇게 건물이 유리로 되어 있는 경우에는 ‘버드 세이버’를 부착하는 것이 좋다.

이 같은 ‘새들의 도살장’은 고속도로 등지에서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인천공항 탑승동 유리방음벽, 세종 대전-당진 간 고속도로 유리방음벽이 대표적이다. 특히 새로 개발ㆍ건설되는 지역의 유리 벽은 깨끗하고 투명해 충돌 사고가 더욱 빈번하게 일어난다. 국립생태원 동물병원부장인 김영준(43)은 “환경부 출장으로 세종 대전-당진 간 고속도로를 주행할 때마다 목격하는 모습”이라며 “도시 경관을 이유로 많은 이들이 투명 유리 벽을 선호해왔는데 이것이 비극적인 결과를 만들어내고 있다”고 말했다. 새들은 투명한 유리방음벽을 구분하지 못해 봉변을 당한다. 심지어 유리 벽에 비치는 자신의 모습도 다른 새라고 인식한다. 신남식 서울대 야생동물질병학과 교수는 “새들은 유리 벽에 비쳐 반사되는 풍경이 실제와 다름을 인식하지 못하고 돌진하는 성향이 있어 사고가 일어난다”며 “새의 종류마다 속도는 다르지만 대부분 빠른 속도로 날아다녀서 유리 벽에 충돌하는 새 대부분이 충돌 즉시 머리나 안구가 파열돼 목숨을 잃는다”고 말했다.

영종대교 고속도로에 새 충돌 예방 스티커, ‘버드 세이버’가 부착되어 있는 모습

이 같은 상황에서도 법률적인 보완책은 없는 상태다. 문제가 된 전북 부안군 계화면 계화리의 유리방음벽 시공을 맡은 한 건설사 관계자는 "관련 규정이나 제도가 존재하지 않아 시공에만 집중했을 뿐 이를 일일이 신경 쓰지 못했다"고 말했다. 지난 2012년 전국에서 유일하게 부산시만 ‘버드 세이버’ 부착을 명문화한 건축심의 기준을 마련했다. 부산시 창조도시국 건축주택과 한종만 주무관은 “해운대 등지의 건물 유리창에 새들이 부딪혀 죽는 사고가 빈번해 이를 막고자 조치를 취했다”고 말했다. 그렇지만 이마저도 ‘자연과 인접한 대형 유리창이 있는 건축물에는 반드시 버드 세이버를 붙인다’로 정하고 있을 뿐 구체적인 기준은 규정하고 있지 않다. 버드 세이버란 맹금류를 피하는 조류의 습성을 고려해 맹금류 모양의 검은색 대형 스티커를 의미한다. 한국조류보호협회 사무총장인 남궁 대식(60) 씨는 “유리 벽에 버드 세이버를 부착하는 쉬운 방법으로 조류의 유리창 충돌 예방이 가능하다”며 “인간이 설치한 구조물에 의한 인재인 만큼 ‘스티커부착 의무화’를 실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환경부 생물 다양성과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진행된 관련 정책 방안 연구가 오는 8월 말쯤 끝난다”며 “그 이후부터는 이에 대한 실질적 정책 마련이 이루어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전다빈 인턴기자 caroo14@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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