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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 전 히로히토 일왕 항복 선언 방송 들어보니…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일본 궁내청은 1일 히로히토(裕仁ㆍ1901∼1989) 일왕이 1945년 8월15일 정오 라디오로 태평양전쟁 항복 선언 방송을 하는데 사용한 레코드 원반(原盤)과 이를 재생해 디지털 녹음화한 음성을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했다. 또 히로히토 일왕이 정부와 군 수뇌부 앞에서 일본의 무조건 항복을 결정한 회의가 열린 황궁 내 방공호 사진도 공개했다. 방공호 공개는 1965년 8월 이후 두 번째로 당시보다 벽과 바닥이 황폐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번에 공개된 음성은 약 4분30초로 지금까지의 음원보다 약 10초 짧다. 기존의 음성은 연합군총사령부(GHQ)가 원반에서 복제한 것으로서 복제가 반복되면서 재생 속도가 늦춰졌다고 한다. 항복 선언이 담긴 방송 녹음은 1945년 8월14일 궁내청 청사에서 진행됐다. 히로히토 일왕은 당시 두 차례 녹음을 했으며, 두 번째 녹음분이 다음날 방송에 사용됐다.

NHK 뉴스 진행자로서 모니터실에서 항복선언을 들었다는 곤도 도미에(92)는 AP통신 인터뷰에서 “극도로 어려운 말이었다”고 회상했다. 그는 “어떤 이들은 더 열심히 전쟁해야 한다는 말로 알아듣기도 했다”며 “요즘 젊은이들이 항복 연설을 이해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일본 언론에 따르면 궁내청은 지난해 태평양전쟁 자료 공개를 검토해왔으며, 아키히토(明仁) 일왕 부처는 6월말 원반의 음성을 들었다. 도쿄신문은 음성까지 공개하게 된 것은 일왕 부처의 제안에 따른 것이라고 전했다. 궁내청은 “종전 70주년인 올해 (관련 자료를) 공표해서 국민에게 널리 알리는 것은 큰 의의가 있다”고 밝혔다.

일왕 히로히토의 종전 방송 전문

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상황을 깊이 돌아보고 비상조치로써 사태를 수습코자 여기 선량한 그대 신민에게 고하노라.짐은 제국정부로 하여금 미·영·소·중 4국에 포츠담 선언을 수락할 뜻을 통고케 하였다.

생각건대 제국신민의 강령을 도모하고 만방 공영의 낙을 같이함은 아마테라스오미카미(天照大御神·일본 왕실의 선조신)부터 이어진 역대 천황과 황실이 유훈으로 전해온 것이다. 짐은 이를 항상 받들어왔다. 앞서 미국과 영국 두 나라에 선전포고한 이유도 실로 제국의 독립자존과 동아시아 전체의 안정을 갈망했기 때문이다. 해외에 진출해 타국의 주권을 빼앗고 영토를 침략하려는 것은 당초 짐의 뜻이 아니었다.

그러나 전쟁이 4년 넘게 계속되는 동안 짐의 육해군의 장병이 용맹하게 싸우고 짐의 모든 관료들이 성실히 일하며, 짐의 1억 국민들이 자기를 희생하며 제각각 최선을 다하고 있는데도 전쟁상황을 호전되지 않고 있다. 세계 정세도 우리 나라에 유리하다고는 할 수 없다. 그뿐 아니라 적국은 새로이 잔학한 원자폭탄을 사용해 수많은 무고한 국민들을 살상하고 있다. 그 참상의 범위는 상상하수도 없는 상황이다.

이 이상 교전을 계속하게 된다면 결국엔 우리 민족의 멸망을 초래할 뿐더러 더 나아가 인류의 문명까지도 파멸시키게 될 것이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짐은 어떻게 수많은 국민과 자손을 보호할 것이며, 역대 천황과 황실 조상들에게 어떻게 사죄해야 하는 것인가. 이것이 짐이 제국정부로 하여금 포츠담 선언을 받아들이게 한 이유다. 짐은 제국과 함께 줄곧 동아시아의 해방에 협력해준 동맹국들에 대해 유감의 뜻을 표하지 않을 수 없다.

제국신민으로서 전장에서 숨지거나 일터에서 순직한 사람들, 비참한 죽음을 맞이한 이들, 그리고 유족들을 생각하면 짐의 오장육부가 찢어지는 고통을 느낀다. 또 전장에서 부상을 입었거나 전쟁으로 집과 토지, 직장을 잃은 자의 후생에 관해서는 짐이 길이 진념하는 바이다. 생각하면 앞으로 제국이 직면하게 될 고난은 심상치 않다. 그대들 신민의 충정을 짐은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짐은 시국에 따라 견디기 힘든 것도 참고 인내할 것이다. 그렇게 만국의 미래와 자손대대를 위해 한걸음씩 전진할 생각이다.

짐은 국가를 지키고 충절하고 선량한 그대 신민들의 진실과 진심을 믿으며, 항상 그대 신민들과 함께 있다. 만약 상황에 반발해 감정적으로 사건을 일으키거나 동포끼리 배척하여 시국을 어지럽게 하고 대도를 그르치게 하여 국제사회에서 신의를 잃게 하는 상황은 짐이 가장 경계하는 바이다.

모름지기 온 나라가 나서, 또 각 가정에서도 자손들에게 전해야 할 것이다. 신국(神?)일본의 불멸을 믿고 각자 자신의 책임이 중하고 갈 길이 멀다는 점을 마음에 새기고 미래 건설에 총력을 다해야 한다. 도의를 중시하고 지조를 지켜며, 우리나라의 정신과 아름다움을 발휘해 세계에 뒤지지 않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그대 신민들은 짐의 뜻을 받들어라.

도쿄=오영환 특파원 hwasan@joongang.co.kr
[사진 일본 궁내청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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