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어린이 프로 발 벗고 출연할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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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다음팟 방송 캡쳐]
[사진 다음팟 방송 캡쳐]

“어떻게 날려도 잘 나는 비행기 접기를 개발했다”며 그가 자랑을 늘어놨다.
지난 4월30일 '종이접기 아저씨' 김영만 종이문화재단 평생교육원장과의 인터뷰(본지 5월5일자) 자리에서였다. 인터뷰는 저녁 식사 자리로 이어졌다. 그간 어떻게 지내왔는지, 지금 하고 있는 생각은 무엇인지 김 원장의 속내를 들을 수 있었다. 어찌 이리 평생 종이접기 하나만 보고 살아왔을까, 싶을 정도로 그의 인생은 ‘종이접기’ 그 자체였다.

지난 25일 그와 다시 만났다. 세 달 남짓 시간이 지났을 뿐인데 상황은 180도 달라져 있었다.
그는 1인 방송 컨셉트인 MBC ‘마이리틀텔레비전(이하 마리텔)’에 출연해 순식간에 ‘뇌색남(뇌 속까지 색종이인 남자)’라는 별명을 얻더니 최근 가장 ‘핫’한 인물이 됐다. “코딱지(김 원장이 생각하는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단어)들, 착하게 잘 자랐네”라는 말에 2030 코딱지 세대들은 열광했다. 결국 마리텔 부동의 1위였던 ‘백주부’ 백종원씨까지 제쳤다.

“처음 중앙일보에 기사가 나간 뒤 네티즌들이 ‘마리텔 백종원의 대항마’로 나를 많이 꼽았더라. 사실 그때까지는 마리텔이 뭔지도 몰랐다”며 김 원장이 말문을 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MBC 예능국에서 진짜 연락이 왔다. ‘종이접기’와 관련된 일이라면 딱히 마다할 이유가 없던 그가 선뜻 출연에 응했다. “평소 대학이나 외부 강의 나갈 때 학생들 앞에서 하던 것처럼 카메라 앞에서도 했을 뿐인데 다들 크게 감동하더라. 그때 느꼈다. ‘아, 우리 친구들 그동안 참 힘들었구나’라고.”
채팅창에 ‘아저씨 반가워요’, ‘보고 싶었어요’ 등 네티즌들의 글이 계속 올라오자 김 원장도 가슴이 시큰해졌다. 결국 방송 말미에 눈물을 보이고 말았다. “아내와 결혼한 순간, 딸ㆍ아들 시집장가 보낸 순간, 처음 손주를 본 순간 등 살면서 여러 감동의 순간들이 있었다. 그럼에도 지금이 내가 여지껏 살아온 세월 중 최고 감동의 순간이다.”

갑자기 찾아온 스포트라이트는 좀처럼 적응하기 어려웠다. 알아보는 사람이 많아져 자신이 운영하는 천안 ‘아뜨오뜨’ 미술관에서 서울로 왔다갔다 할 때마다 들르던 휴게소도 이제 못가게 됐단다. 타고 다니던 중고 외제차 ‘재규어’까지 논란이 되자, 그는 다소 놀란 눈치였다. “그저 ‘종이접기 아저씨’로만 나를 봐줬으면 좋겠는데, 자꾸 다른 점을 보려고 하니까….” 그가 말끝을 흐렸다. 그러면서 “예전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을 때도 많지만 이 뜨거운 관심이 오래 갈 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저 내 길을 앞으로도 묵묵히 걸어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어린이 프로그램’은 다시 한 번 꼭 해보고 싶다고 했다. 어린이 프로그램 섭외가 들어오면 발 벗고 출연할 예정이다. 왜 그리 아이들을 좋아하냐고 물었다. 김 원장은 “아이들은 나의 스승”이라고 표현했다. 아이들의 순수성, 아이들의 언어를 배우고 “잘 배웠으니 이건 선물이야”라며 주는 게 종이접기란다. 앞으로의 계획도 온통 ‘아이들’ 투성이다. 그는 “산간오지를 다니며 교육 환경이 열악한 아이들에게 종이접기를 가르치려 한다”고 했다. 1년에 한 번씩 개발도상국에 찾아가 현지 교사들에게 종이접기를 전파하는 활동도 계속 할 생각이다.

김 원장은 그의 영원한 ‘코딱지’들인 2030세대에게 무슨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까. 그는 대뜸 “젊음은 도전이다”라고 말했다. “벽이 막혀있으면 옆으로라도 가면 되는데, 그게 무서워 앞으로 못나간다는 건 이미 ‘늙음’이지.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해야 돼. 잘 안 되면 돌아서도 가보고. 그럼 어느순간 맞는 게 나올 거야. 그걸 꽉 잡으면 돼요.” 김 원장의 조언은 마치 그의 ‘종이접기 인생사’처럼 들렸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사진 다음팟 방송 캡쳐, 중앙일보 5월5일자 지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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