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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세 모자, 그리고 김영사 미스터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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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안혜리 기자 중앙일보 논설위원
안혜리
중앙SUNDAY 기획에디터

세 모자(母子) 사건과 김영사 미스터리. 요 며칠 온라인 세상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이 두 사건의 외양은 전혀 다르면서도 묘하게 닮아 있다. 지금까지 알려진 사건 전개 과정이 그 어떤 막장 드라마보다 더 막장으로 치닫고 있는 데다, 그 배후에 사이비 교주가 있다는 주장까지 비슷하다.

 세 모자 사건은 엽기적인 성폭행 고발에서 시작됐다. 목사의 아내였다는 사람이 느닷없이 인터넷에 폭로 글을 올린 후 미성년자인 두 아들까지 대동한 채 기자회견을 했다. 역시 목사인 시아버지와 남편의 사주로 세 모자가 지난 십수 년간 친가족을 비롯해 수백 명의 성노예 노릇을 해왔다는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온라인은 사이비 목사 부자(父子)의 처벌을 요구하며 연일 들끓었다. 그러나 한 TV 시사 프로그램이 이들 세 모자를 수개월에 걸쳐 동행 취재한 끝에 이 같은 주장이 사실이라기보다 오히려 아내의 배후에 돈을 노린 무속인이 있다는 걸 시사해 또 다른 충격을 줬다.

 김영사를 25년간 이끌다 지난해 갑작스레 퇴진, 출판계에 이런저런 뒷말이 무성했던 박은주 전 사장도 최근 세 모자 사건에 버금가는 막장 드라마의 주인공이 됐다. 지난 30여 년간 스스로 멘토라 불렀던 김영사의 대주주 김강유 회장을 상대로 350억원대의 법적 분쟁을 벌이며 내연관계·협박 등이 버무려진 막장 폭로전에 나섰기 때문이다. 그는 최근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회장을 ‘교주’라 칭하며 “나는 사이비 종교의 하수인이었다”고 주장했다. “20년 동안 번 돈 28억원을 김 회장에게 고스란히 갖다 줬다”는 대목에선 재산헌납으로 이어지는 사이비 종교 냄새가 풍기는 것도 사실이다.

 두 사건 모두 폭로 당사자와 그 대상의 주장이 엇갈려 명확한 진실이 무엇인지는 아직 손에 잡히지 않는다. 다만 진위는 잠시 뒤로하고 진행 과정만 지켜봐도 정상이 아닌 것만은 분명하다. 목적이 무엇이든 미성년자인 아이를 대중 앞에 세워 (아마도 거짓일) 성폭행 경험을 끊임없이 반복하게 하는 엄마, 자기가 번 돈은 물론 법인 재산까지 빼돌려 대주주에게 갖다 바친 스타 경영자라니.

 끼리끼리 막장 드라마를 찍든 사이비 종교에 심취하든 무슨 상관일까. 다만 온 사회가 그런 막장 드라마에 놀아나 흥분하고, 그런 비정상적인 출판사 책을 좋다고 사봤다니 그저 허탈할 뿐이다. 작가 김홍신은 “우리 사회에 작가의 상상력을 뛰어넘는 사건이 많아 소설이 안 팔린다”고 했다. 언제쯤이면 소설이 잘 팔리는 그런 시대가 올까.

안혜리 중앙SUNDAY 기획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