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인제 “노동개혁, 짊어져야 할 짐이라면 십자가 질 것”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0면

새누리당 이인제(얼굴) 최고위원은 23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당 최고위원회의에 불참했다. 이 최고위원은 전날 밤늦게 끝난 고위 당·정·청 회동에서 만장일치로 ‘새누리당 노동시장 선진화 특별위원장’으로 ‘추대’돼 있던 상황이었다. 그런 이 최고위원이 불참하자 당내에선 “특위 위원장을 맡기 싫어 당무를 거부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다.

 실제 이 최고위원은 22일 밤 당·정·청 회의 소식을 전해 들은 뒤 “아무 연락도 받은 일이 없는데 TV 뉴스에 나오더라”면서 불쾌한 심경을 주변에 드러냈다고 한다. “아이디어 차원일 것”이라는 반응도 보였다. 그런 뒤 회의에 불참하고, 전화도 받지 않았다. 의원실도 “지역구(논산-계룡-금산)에 일정이 있다”고만 한 채 구체적인 불참 사유를 밝히지 않아 ‘위원장 거부설’이 확산됐다.

 하지만 이 최고위원은 오후 본지 기자에게 특위 위원장을 수락하는 내용의 문자메시지를 보내왔다. 김 대표가 뒤늦게 전화를 해 “노동 분야 전문가로서 특위를 맡아달라”고 요청하자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했으나 결국 마음을 정한 것이다. 다음은 이 최고위원과의 문자메시지 문답.

 -특위에 임하는 각오가 있다면.

 “개혁을 성공시키기 위해 최선을 다할 생각이다.”

 -특위 구성·운영과 관련된 구상은.

 “일단 내일(24일)까진 지방에 일정이 있다. 아직 백지 상태니까 조금 후에 얘기하자.”

 그는 지인들에겐 “짊어져야 할 짐이라면 십자가를 지는 마음으로 지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 최고위원은 김영삼 정부 초였던 1993년 노동부 장관을 지냈다.

 장관 시절 ‘무노동 무임금(근로자 파업 시 임금도 없음)’을 ‘무노동 부분임금’으로 바꾸려 하는 등 친근로자 성향의 정책을 폈던 것이 눈길을 끈다. 이 때문에 그는 당시 재계와 신경전도 벌였다. 반면 박근혜 정부가 추진 중인 노동 개혁안은 해고 요건을 완화해 고용 유연성을 높이는 안 등이 포함돼 있다.

 하지만 이 최고위원도 22년 전과는 달리 최근 대기업 노조 중심의 노동시장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어 청와대와의 충돌은 없을 것이란 분석이다. 그는 20일 당 최고위원회의에서도 “대기업 근로자의 임금이 중소협력기업 근로자 임금의 2배”라며 “우리 경제의 제일 큰 문제 중 하나가 노동시장의 이중 구조”라고 지적했다.

 다만 특위 위원장을 맡게 된 이 최고위원의 반응에서도 감지되듯 새누리당 일각에선 공무원연금 개혁에 이어 노동 개혁까지 떠안게 된 것을 부담스러워 하는 분위기가 있다. 노동 개혁의 ‘총대’를 메겠다는 당 지도부의 적극성과는 온도 차가 있다.

 한 재선 의원은 “공무원연금 개혁은 공무원 100만 명이 반대했지만 노동 개혁은 근로자 2000만 명을 설득해야 하는 문제”라며 “특위가 키를 쥐고 가더라도 결국엔 국회 환경노동위원회에서 야당과 합의해 관련 법안을 통과시켜야 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당 관계자도 “총선을 8~9개월 앞두고 있는 상황에서 당이 이렇게 번번이 청와대가 던진 이슈를 떠맡는 것도 문제”라면서 “꼭 가야 하는 길이라면 당에만 떠맡기지 말고 청와대도 직접 야당 설득에 나서야 한다”고 지적했다.

남궁욱·김경희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