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서 감청장비 감찰 나서자, 임씨 조마조마해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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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경기도 용인의 한 장례식장에 마련된 국정원 직원 임모씨의 빈소에서 유족들이 조문객을 맞고 있다. 이날 오후 국정원 동료 직원들은 단체로 빈소를 찾아 조문했다. [조문규 기자]

국가정보원 직원 임모(45)씨의 죽음은 물음표를 남겼다. 국정원조차 “그럴 필요가 없는데 왜 그랬는지 아직 답을 얻지 못하고 있다”(19일, ‘국정원 직원 일동’이 낸 보도자료)고 했다. 제1야당도 “석연찮은 점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새정치민주연합 문재인 대표)고 말한다.

 특히 임씨가 자살을 택한 지난 18일 전의 나흘(14~17일)이 미스터리다. 국회 정보위원회 새누리당 간사인 이철우 의원에 따르면 “나흘간 잠도 못 자고 공황 상태였다”는 게 국정원이 전한 임씨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국정원의 공개 결정=국정원의 인터넷·휴대전화 해킹 의혹에 대해 언론이 처음 보도한 건 지난 10일이다. 이탈리아 해킹팀사(社) 서류가 유출된 뒤다. 이 때문에 임씨는 자신이 주도한 사업이 문제가 됐다는 사실을 알았을 것으로 보인다. 그럼에도 국정원은 임씨의 상태가 안 좋았던 건 마지막 나흘간이라고 했다. 왜일까. 국회 정보위와 사정기관 관계자들은 국회 정보위가 14일 열렸다는 점을 들었다. 이날 국회에 출석한 이병호 국정원장은 “북한 공작요원 감청용으로 장비를 구입한 적이 있다”고 인정했다. “내국인 감찰용은 아니었다”고 했지만 이례적으로 빠른 해명이었다. 여당에서조차 “국정원이 정면 돌파를 택했다”는 평이 나왔다. 17일엔 “사용 기록을 공개하겠다”고 했다.

 ◆내부 감찰의 압박=이 원장의 정보위 답변을 계기로 국정원 내부에선 임씨에 대한 감찰이 시작됐다고 한다. 한 사정기관 관계자는 “국정원에서는 늘 ‘크로스 체크(교체 확인)’가 원칙이라 문제가 커지면 해당 부서도 자체 조사를 해야 하지만 내부 감찰팀도 뜨게 된다”고 했다.

특히 국정원 사정에 밝은 한 여권 관계자는 “이번에 문제가 된 장비 도입이 지난 정부 때(2012년) 일이라 감찰팀도 부담을 느끼지 않고 과감하게 조사했을 가능성이 크다”고 귀띔했다. 2012년이면 원세훈 전 원장 때다. 임씨에게는 감찰이 야당의 정치 공세만큼이나 큰 심적 부담이 됐을 수 있다는 뜻이다. 실제 이철우 의원은 19일 “(내부) 감찰도 들어오고 하니까 심리적 압박을 느낀 것 같다”고 했다. 또 다른 국회 정보위원도 20일 “임씨는 자료를 삭제한 사실이 감찰 과정에서 드러날까 봐 조마조마해했다고 한다”며 “ 자신의 행위가 형법상 죄가 된다는 걸 알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디가우징 안 했나=임씨는 유서에서 자료 삭제를 “저의 부족한 판단이 저지른 실수”라고 표현했다. 그가 이 ‘실수’를 언제 저질렀는지는 확실하지 않다. 그가 관리하던 서버를 모두 복구해 봐야 어떤 파일이 언제 지워졌는지 알 수 있다고 국정원 측은 20일 설명했다.

다만 “100% 복원은 가능하다”고 했다. 하지만 이 부분에 대해 의문이 제기된다. 2010년 국무총리실의 민간인 사찰사건 이후 전산자료를 완전히 삭제하려면 ‘디가우징(강한 자력을 활용한 물리적 삭제)’을 해야 한다는 게 상식이 됐다. 20여 년 경력의 전산 전문 임씨가 이를 몰랐을 리 없다. “100% 복원될 것”이라는 국정원의 확신이 맞다면 임씨가 어떤 이유에서인지 비전문가처럼 처신했다는 뜻이다. 그 때문에 새정치연합 문병호(정보위 소속) 의원은 “국정원이 적당히 복원해 공개한 뒤 ‘불법행위는 없었다’는 식으로 덮을 가능성도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글=남궁욱·위문희 기자 periodista@joongang.co.kr
사진=조문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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