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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로아리랑·가리베가스 … 재봉틀 돌리던 그곳, 문화로 남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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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매일 오후 3시면 어김없이 서울 구로구 가리봉동 가리봉 사거리에 다닥다닥 붙어 있는 호프집들의 문이 하나둘씩 열리기 시작한다. 첫 손님은 대개 남구로역 인력시장에서 일감을 찾지 못해 허탕 친 일용직 노동자다.

 지난 17일 오후 분홍색 간판이 인상적인 ‘베가스호프’에 들어갔다. 한잔 걸치기엔 이른 시간임에도 가게 안은 왁자지껄했다. 호프집 사장 유성국(48)씨는 “이곳 가게 대부분이 조선족 출신 노동자들의 일과에 맞춰져 있어 다른 곳보다 문을 빨리 연다”고 말했다. 1970년대 여공과 옷가게·오락실 등으로 가득했던 가리봉 거리는 중국에서 건너온 조선족과 ‘초두부(소금에 절인 두부)’ 요릿집으로 대체됐다. 길을 걸으면 독특한 향신료 냄새가 풍겨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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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터식당, 중국음식점, 금고대출, 그리고 알아먹을 수 없는 빨간 한자 글씨체의 간판이 반짝거린다’. 소설가 공선옥은 2005년 발표한 『가리봉 연가』에서 이곳 풍경을 이렇게 묘사했다.

 1965년 조성 이후 한국 산업의 상징이 된 구로공단(이하 공단)이 올해 반세기를 맞았다. 당시 주력 상품인 가발과 전자제품은 미국·일본으로 불티나게 팔려 나갔다. 70년대 중순 11만 명의 노동자가 모여 생산한 물품이 한국 전체 수출액의 10%를 차지했다. 76년 여성복 소매점 ‘오성패션프라자’를 차렸다는 이창형(66)씨는 “빈털터리로 서울에 올라와 동생 넷을 대학에 보냈다. 공단 거리를 따라 돈이 흐르던 시절이었다”고 기억했다.

 서울시가 지난해 구로공단 일대를 미래유산으로 지정한 것은 후손에게 물려줄 ‘산업화 유산’으로 봤기 때문이다. ‘2부제 셋방(아침 조와 저녁 조가 함께 빌린 방)’ ‘라보때(라면으로 보통 때운다)’ ‘가리봉동 수준’ 등의 시대를 대표하는 키워드도 이곳에서 나왔다.


▶[인터랙티브 뉴스] 구로공단, 문학의 길…문학 키워드로 투어하는 서울시 미래유산

 공단은 한국 문학의 한 뿌리다. 여공들의 고단한 삶은 그것을 뛰어넘는 문화적 자양분이 돼 ‘노동문학’을 탄생시켰다. 소설가 황석영은 73년 구로공단 전자 회사에 취업한 경험을 바탕으로 『구로공단의 노동 실태』라는 르포를 썼다. 소설가 공지영의 데뷔작인 『동트는 새벽』도 구로공단의 한 전자부품 회사가 배경이다. 박노해 시인은 ‘가리봉시장’이란 시를, 송경동 시인 등 여러 문인은 공단에 위장 취업해 노동현실을 체험했다. 공지영씨는 지난해 언론 인터뷰에서 “당시 12시간 서서 일해야 했다. 다리가 퉁퉁 붓고 빈혈이 생겨 일하다 쓰러지는 애들이 많았다”고 증언했다.

◆구로동맹파업도 소설·영화 소재로=“효성 힘내라.” “대우도 힘내라.” 85년 6월 가산동 2공단 사거리(현 마리오 사거리)를 사이에 두고 효성물산과 대우어패럴 소속 여공들이 목이 터져라 서로를 응원했다. 하루 15시간 이상의 노동에 시달리다가 “최소한의 인간 취급을 해 달라”며 벌인 ‘구로동맹파업’의 한 장면이다. 87년 소설가 이문열씨는 구로동맹파업을 배경으로 한 단편소설 『구로아리랑』을 발표했다. 노동운동에 투신한 대학생과 여공의 이야기다. 소설의 주인공인 종미는 “자꾸 공순이, 공순이 캐샇지 말어예. 어디 뭐 대학생 씨가 따로 있어예”라고 묻는다. 소설은 다시 영화로 만들어졌다. 최민식· 옥소리 주연의 ‘구로아리랑’이다(89년 개봉).

 당시 봉제공장 대부분은 현재 패션아웃렛 건물로 바뀌었다. 옛 대우어패럴 자리에는 마리오아울렛이, 맞은편 효성물산 자리에는 현대H몰이 들어서 있다. 두 건물 사이 귀퉁이엔 구로봉제협동조합 건물이 80년대 모습 그대로 남아 있다. 제2공단과 3공단을 연결하는 ‘수출의 다리’와 구로노동연구소(현 민주노총 사무실)도 예전 그대로다.

 공단 3단지엔 굴뚝형 공장도 보인다. 양지사와 교학사가 대표적이다. 여공들이 생활하던 선화기숙사는 2002년까지 운영됐다. 지금은 ‘성프란치스코 장애인종합복지관’으로 쓰인다.

 국제통화기금(IMF) 사태로 적자가 쌓인 봉제공장들은 싼 인건비를 찾아 중국으로 떠났다. 공장 굴뚝이 뿜어내던 연기는 사라지고 부동산 개발이 시작됐다. 굴뚝이 없는 아파트형 공장이 입주했다. 이창동 감독의 97년 작품 ‘초록물고기’는 이 시절 가리봉 거리를 담고 있다. 폭력조직의 보스 배태곤(문성근)이 막동이(한석규)에게 “꿈이 뭐냐”고 묻는 장면은 파노라마쇼핑센터에서 촬영됐다. 파노라마쇼핑센터는 명절이나 월급날이면 여공들로 가득했던 장소다. 이곳에서 33년째 세탁소를 운영하고 있는 안관식(71)씨는 “월급날 가리봉 거리는 남의 발을 안 밟고는 못 지나가는 길이었다”고 회상했다. 김선민 감독은 단편영화 ‘가리베가스’(2005년)에서 노동자들의 애환이 담긴 가리봉이 이주노동자로 교체되는 역사를 압축해 담았다. 가리베가스는 가리봉동과 미국 ‘라스베가스’의 합성어다.

◆최근엔 문화창작 공간으로 변신=지난 5월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영화 ‘위로공단’으로 은사자상을 수상한 임흥순(46) 감독은 구로공단 창작촌 출신이다. 임 감독은 다음달 개봉 예정인 다큐멘터리 ‘위로공단’에서 구로공단 등에서 일한 여성 노동자를 정면으로 다뤘다. 40년 전 구로공단에서 일하던 여공과 현재 구로디지털단지 여성 노동자의 삶을 번갈아 보여준다. 임 감독이 영화를 찍기로 결심한 건 금천예술공장에 2년간 입주 작가로 머물 때였다.

 금천예술공장은 옛 구로 3공단이 있던 금천구 독산동의 한 인쇄공장을 리모델링한 곳으로 시각예술 전문 창작공간으로 활용되고 있다. 임 감독은 수상 직후 기자회견에서 “금천예술공장에서 활동하면서 ‘공순이’라 불리던 사람들이 모두 어디로 가셨을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됐고 그 의문을 토대로 영화를 만들게 됐다”고 밝혔다.

 90년대 후반부터 구로단지 첨단화 계획이 추진됐다. 공단은 ‘G밸리’라는 새 이름을 얻었다. 여공들이 빠져나간 가리봉동은 중국동포들로 채워졌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30만원짜리 월세방이 즐비해 달랑 몸만 갖고 한국에 온 동포들의 초기 정착지가 됐다. 떡볶이와 순대를 팔던 가리봉 시장은 꼬치구이집들로 채워지고 있다. 50년 전 여공들이 꾼 ‘서울의 꿈’을 이젠 중국동포들이 ‘코리안 드림’으로 이어가고 있다.

글=김나한 기자, 권혜민(고려대 경제학과) 인턴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kim.na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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