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부시 기대 밖인 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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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2년 전 미국의 43대 대통령으로 취임할 때 적지 않은 미국민이 우려했다. 지적 능력도 마땅찮고 외교 능력도 탐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9.11테러 이후 이라크전에 이르기까지 부시 대통령은 승승장구다. 도대체 부시 대통령의 이 같은 성공비결은 도대체 뭘까. 따지고 보면 별로 큰 성과를 거둔 것 같지도 않은데 그에 대한 미국인들의 지지는 왜 계속 높은 걸까.

"부시 대통령의 성공비결은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큰 기대를 하지 않도록 만드는 데 있다." 8일 보도된 워싱턴 포스트의 분석이다.

부시 대통령의 삶 자체가 아예 그랬다는 게 워싱턴 포스트의 설명이다. 그는 예일대 졸업생이자 상원의원인 아버지 덕에 대학에 들어왔다는 의혹을 샀다. 그러나 대학 서클의 리더가 됨으로써 그걸 극복했다.

야구 구단을 맡았을 때도 "아버지 덕이고 사업수완은 별 볼 일 없다"는 비아냥을 샀지만 결국 구단운영을 성공적으로 해냈다. 텍사스주지사 선거에 처음 출마했을 때도 부시 후보는 자신의 진짜 능력이 어느 정도인지 주변사람들이 헷갈리도록 만들었다는 것이다.

1999년에 공화당 대선후보 지명전에 나설 때도 부시는 여론조사와 선거자금 모금 등에서 우세하다는 점을 애써 평가절하하면서 주변의 기대감을 낮추었다. 참모들은 "부시 후보는 토론에 약하다"고 떠들고 다녔다.

그러나 민주당 앨 고어 후보와의 TV토론 결과는 "부시가 선방했다"였다. 공화당의 전략가 리치 본드는 "부시는 자신이 저평가되는(underestimated) 걸 즐긴다. 그게 그의 기질 중 하나지만 여러 번 부시에게는 득이 돼 왔다"고 말했다.

정적들이 부시의 능력에 대해 의구심을 제기해 기대감을 낮춰준 게 오히려 부시에게 도움이 됐다는 것이 본드의 분석이다. 심지어 부시는 정적들이 기대감을 낮춰주지 않으면 스스로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냈다고 한다. 지난해 중간선거 때 부시의 참모들이 "역대 중간선거를 보면 항상 집권당이 졌다"는 것도 같은 맥락이라는 것이다.

부시는 손자병법의 허허실실(虛虛實實)전략을 본능적으로 체득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자신이 스스로 지난 4일 중동 평화회담을 마치고 돌아오는 미 공군 1호기 안에서 "나는 기대를 낮추는 데 선수"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전략이 차기 대선에서도 통할 것인가. 워싱턴 포스트는 이미 기대가 너무 높아져 힘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워싱턴=김종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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