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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성기의 反 금병매] (69)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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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5면

금련은 자기 집으로 돌아가고 서문경이 찻집에 남아 왕노파와 함께 매실차를 마시며 쉬는 시간을 가졌다. 금련과 뒹구느라 기력이 소진된 서문경은 눈동자의 초점이 다 풀려 있었다. 그런데 왕노파가 보기에 서문경의 얼굴에 어딘지 모르게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었다.

"무슨 고민 되는 일이라도 있소?"

왕노파가 서문경의 얼굴에서 눈을 떼지 않고 찻잔을 입으로 가져가며 넌지시 물었다. 서문경은 자신의 속마음을 들킨 것 같아 얼핏 놀라는 표정을 지었다가 다시 평상의 얼굴로 돌아왔다.

"고민은 무슨 고민요. 운우의 즐거움에 취하여 몸이 좀 고단할 뿐이오."

"혹시 어르신이 발로 차서 쓰러뜨린 무대 때문에 걱정이 되어 그러는 거 아니오? 무대가 자기 동생이 돌아오면 다 고해바치지 않을까 하고 말이오."

서문경은 사람의 마음을 귀신같이 꿰뚫어보는 왕노파를 당해낼 재간이 없다 싶어 고민의 일단을 털어놓았다.

"사실 그게 좀 걱정이오. 현청에 현감을 비롯하여 아는 관리가 많긴 하지만, 남편 있는 여자를 건드린 일이라. 그리고 무송은 뇌물 같은 것에 마음이 움직일 자가 아니라고들 하니."

"무대 동생이 돌아와서 설치면 나도 무사하지 못할 거예요. 어떻게 보면 내 책임이 제일 크다고도 할 수 있잖아요."

그러면서 왕노파가 가만히 한숨을 내쉬었다. 서문경은 왕노파도 자기와 같은 고민을 하고 있었구나 하고 갑자기 동류의식을 느끼게 되었다. 아까 금련과 몸을 섞으며 무대 독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때는 왕노파가 모르도록 하자고 했지만, 눈치 빠른 왕노파가 어차피 알게 될 바에야 왕노파의 입을 막기 위해서라도 차라리 공범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나을 것 같았다. 더 나아가 왕노파를 주범으로까지 끌어올리면 금상첨화가 아닌가.

"그럼 이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서문경은 짐짓 아무리 생각해도 방법이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왕노파에게 조언을 구하는 척하였다.

"결국 무대가 회복되지 못하도록 하는 수밖에 없지 않겠어요? 무송이 돌아오기 전에 회복이 되면 큰일이잖아요."

왕노파는 찻집에 다른 손님이 없는데도 목소리를 낮추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회복되지 못하도록 하다니요? 그럼?"

두 사람의 시선이 다탁 위에서 진득하게 얽혔다. 왕노파의 두 팔이 조금씩 떨리기 시작했다. 서문경은 왕노파의 대답을 기다리는 시간이 무척 길게 느껴졌다.

"한 가지 길밖에 없잖아요. 어르신이 생약 가게를 하고 있으니 더 잘 아실 텐데."

"무얼 내가 더 잘 안다는 거요?"

서문경은 시치미를 떼느라 입에 침이 바싹 마를 지경이었다.

"사람에게 어떤 약을 먹이면 몸이 회복되지 못하게 할 수 있는가 하는 것 말이오."

서문경은 왕노파가 독살이라는 말을 먼저 하기를 바랐으나 왕노파는 끝내 다른 표현을 쓰고 있었다. 보통 단수가 아니다 싶었다.

"그야 엉터리 약을 쓰면 몸이 회복되지 않는 거 아니오?"

"엉터리 약 정도가 아니라 거, 있잖아요. 비상이라는 약."

왕노파는 자신의 말에 자기가 놀라 헉, 하고 숨을 들이켰다. 이쯤 되면 서문경이 조금 유리한 위치로 올라선 셈이었다.

"비상이라는 약을 쓰겠다면 그건 도, 도오, 도오옥…."

"그래요. 독살이지요. 그 길밖에 없어요. 우리가 살아남을 길은."

마침내 왕노파의 입에서 독살이라는 말이 나왔다. 그러자 서문경은 훨씬 마음이 편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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