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남이 맡은 금호타이어 질책한 박삼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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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삼구 회장

그룹 총수는 직접 주재하는 임원 전략회의에서 ‘큰 그림’을 그리는 경우가 많다. 잘 하는 계열사에 대한 격려부터 한 뒤, 위기를 강조하더라도 구체적인 대책을 주문하기보다 고사성어를 인용한 선문답을 통해 내놓는 식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박삼구(70)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은 달랐다. 그가 17일 경기도 용인 금호아시아나 인재개발원에서 주재한 ‘하반기 임원 전략경영세미나’에선 계열사별 세세한 진단과 그에 따른 강도높은 개선책 주문이 이어졌다. 그가 직접 경영 현안을 챙기겠다는 선언과 다름없었다. 금호고속 인수에 성공하고 금호산업 채권단과 인수 협상이 본격화한 시점에서 계열사 장악력을 높이는 행보로 풀이된다. 국내외 그룹 전 계열사 임원 156명이 참석해 그의 ‘위기론’에 귀를 기울였다.

 박 회장은 이날 세미나에서 “금호가 500년을 가려면 체질을 바꿔야 한다”고 입을 열었다. 이어 “기업이 영속성을 갖기 위해서는 과거에 대한 계승과 이를 변화하고 발전시키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끊임없는 노력으로 그룹 체질을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거기까지였다. 이후론 강도높은 질책과 개선책 주문을 이어갔다.

 그는 무엇보다 실적 부진에 빠진 금호타이어에 대해 강도 높게 질타했다. 장남 박세창(40) 금호타이어 부사장이 있는 회사다. 그는 “품질·생산·기술력·영업·관리 전 분야에서 금호타이어의 수준이 하락하고 있다”며 “(금호타이어의) 올해 1분기 실적 악화는 자동차 산업 저성장, 글로벌 경기 침체, 유로화 약세 같은 다양한 원인이 있을 수 있지만 경쟁사와 비교해 영업이익이 급감한 것에 대해선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질책했다. 특히 그는 경쟁사를 일일이 언급하며 설비 투자와 연구개발(R&D) 강화 등 사업 전반에 걸친 대책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는 “회사 전략 방향부터 재정립해야 한다”며 “살아남기 위해서는 과거 양산 위주 정책에서 벗어나 품질우선주의로 정책을 바꿔야 한다”고 강조했다.

 금호고속에 대해서는 호남선 KTX 개통 및 메르스 사태 등 환경 변화에 잘 적응해 위기를 기회로 만들 것을 당부했다. 그는 “고속버스 사업은 노선 운영이 수익성과 직결되는 만큼 철저한 분석을 통해 노선 개발부터 다시하라”고 말했다. 금호건설과 관련해선 “현재 금호산업 인수합병(M&A) 이슈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지만 M&A 완료 이후가 더 중요하다”며 “원가율 개선, 수주 확대에 전사적인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룹 주력 계열사인 아시아나항공에 대해선 “메르스 사태로 인해 비상경영을 선포한 만큼 전 임직원이 절박하고 절실한 자세로 맡은 바 업무에 임해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이어 “메르스로 타격을 입은 여객 수요 확보에 총력을 기울이고 항공 안전시스템도 한치의 오차 없이 완벽하게 가동해야 한다”고 거듭 주문했다.

 금호산업 재인수에 대해서는 “채권단과 잘 협의해 조속히 마무리 지을 예정이다”며 “앞으로 강하고, 힘있고, 멋있는 금호아시아나를 함께 만들어 나가자”고 말했다. 재계에선 이날 박 회장의 발언에 대해 그가 2009년 7월 그룹 회장직에서 물러난 이후 6년 만에 실질적인 ‘오너’로 복귀하는 데 성공하면서 계열사에 대한 장악력을 높이겠단 뜻으로 보고 있다. 세미나에 참석한 한 임원은 “박 회장의 모습에서 그룹 재건에 대한 절박함과 의욕, 비장감을 느꼈다”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kh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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