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드 읽기] 카드=신용=빚 공식을 잊지말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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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3면

지난 3월부터 '카드사발 금융위기 가능성'이 불거진 이후 정부가 두차례 긴급 카드시장 안정 대책을 쓰면서 시장은 다소 진정됐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7월 대란설'이 수그러들지 않고 솔솔 흘러나오고 있습니다.

지난해 상반기까지만 해도 카드사는 큰 돈을 벌었고, 회원들에게 카드 사용한도를 대폭 늘려줄 정도로 여유로웠는데 어쩌다 이렇게 어려운 상황이 됐을까요.

무엇보다 능력에 맞지 않게 일단 빚을 내서 쓰는 경우가 많았고, 그 후유증이 너무 크기 때문일 겁니다. 카드업계가 경영지표를 투명하게 공개하지 않는 바람에 시장에 불신이 쌓인 것도 이유일 것입니다.

카드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갑자기 높아진 것은 1999년 7월부터 정부가 현금서비스 사용한도를 풀면서부터입니다. 영수증 복권제와 연말 소득공제 혜택도 이 무렵 도입됐습니다.

당시 정부는 외환위기 이후 기업의 투자가 극도로 위축되자 내수 소비를 진작시켜 경기를 살리는 정책을 택했습니다. 그 핵심 수단이 부동산과 카드산업을 활성화하는 것이었죠. 카드를 많이 쓰면 그만큼 소비가 늘고 생산도 촉진돼 경기가 살아날 것으로 본거죠.

1인당 월 70만원선에 묶여 있던 현금서비스 한도가 풀리자 힘들여 사채를 끌어쓰던 소비자들이 너나없이 경쟁적으로 카드를 발급받기 시작했어요.

신용판매에 치중하는 바람에 그 전까지 큰 돈을 못벌던 카드사들은 연 25%가 넘는 이자를 받을 수 있는 현금서비스를 늘리는데 열을 올렸고, 신용도를 따지지도 않고 길거리에서 카드 발급을 남발했죠.

그 결과 카드사들은 단기간에 수조원의 이익을 올렸고, 급전에 목말랐던 소비자들은 뒷일은 생각하지 않고 현금을 맘껏 뽑아 썼고, 정부는 지표상 경기가 살아났다며 쾌재를 불렀지요.

그런데 지난해 하반기 경기가 나빠지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대금을 제때 못 갚는 연체 회원이 늘어났고, 카드사가 갑자기 현금서비스 한도를 줄이면서 '돌려막기'가 어려워진 회원들이 대거 신용불량자로 전락했습니다.

지금 정부.기업.소비자 모두 그 후유증을 치르느라 힘들어합니다. 정부는 관치 시비에 휘말렸고, 카드사 주주들은 몇년간 번 돈을 토해냈고, 회원들은 각종 수수료 인상과 서비스 축소의 고통을 떠안았습니다.

지금의 위기는 언젠가는 극복될 겁니다. 그러나 '카드=신용=빚'이라는 인식을 이번 기회에 확고히 하지 않으면 언제든지 카드 위기는 다시 오고 시장은 더 큰 대가를 요구할 것입니다.

장세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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