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 잃은 92세 할머니 1000만원 기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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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아들이 입버릇처럼 말했는디, 기부는 돈이 많아 하는 게 아니라 없는 돈을 쪼개서라도 하는 거라고. 우리 아들이 어렵게 모은 돈이여 얼른 받어.”

지난 8일 오전 장금년(92) 할머니가 둘째 아들 이기성(64)씨와 함께 천안시 복지정책과를 찾았다. 장 할머니는 천안시복지재단을 만드는데 사용해달라며 1000만원이 든 봉투를 불쑥 내밀었다. 직원들은 할머니가 갑자기 들어와 기부 의사를 밝히자 어리둥절했다.

사연은 이렇다. 슬하에 아들 딸 다섯을 두고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한 장 할머니는 혼자 사는 셋째 아들(58)이 안쓰러워 2009년 아들이 있는 인천으로 갔다. 하지만 그 아들이 지난 4월 심근경색으로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할머니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하루하루를 눈물로 보냈다. 힘들어 하는 모습을 지켜보다 못한 둘째 아들 이씨는 엉덩이뼈를 다쳐 거동이 불편한 노모가 인천에서 혼자 사시기 어렵고,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하다고 보고 형제들과 상의해 천안시 동남구 목천면 천안시립노인전문병원으로 모셨다.

마음의 안정을 찾은 할머니는 평소 아들이 원하던 대로 남을 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할머니는 고민 끝에 아들이 30년간 세탁소를 운영하며 모은 재산의 일부를 좋은 일에 쓰기로 마음 먹었다. 아들은 주변에서 폐지 줍거나 단칸방에서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들을 보면 그냥 지나친 적이 없었다고 한다. 과일이 담긴 비닐봉투를 노인에게 쥐어 주거나 폐지 줍는 일을 도와주곤 했다. 대형 업체가 골목상권에 들어와 체인형 세탁전문점을 차린다고 할 때는 영세상인들을 대표해 입점 반대에 앞장서기도 했다.

장 할머니는 “평소 옷 한 벌 제대로 사 입지 않고 열심히 돈만 모은 아들이었다”며 “하늘에 있는 아들도 좋아할 것”이라고 말했다. 최종재 천안시 복지정책과장은 “봉투를 내미는 할머니의 마른 손을 볼 때 울컥했다”며 “빠른 시일 안에 복지재단을 설립해 어렵게 살아가는 이웃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천안시는 장 할머니의 돈과 시 출연금 70억원 등 100억원을 마련해 오는 10월께 천안복지재단을 출범시킬 예정이다.

천안=강태우 기자 kang.taewo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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