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백가쟁명:유주열]베이징 블루와 서울 블루

중앙일보

입력

메르스(MERS 중동호흡기증후군)사태의 여진이 계속되어 짜증이 나다가도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바라보면 어릴 때나 본 것 같은 새 하얀 뭉게구름이 둥실 둥실 떠 있는 모습을 발견한다. 달라진 서울의 푸른 하늘에 안도가 되면서 마음 한 쪽은 위안을 받는 것 같다. 서울의 푸른 하늘(서울 블루)을 가져다 준 배경에는 중국 베이징(北京)의 푸른 하늘(베이징 블루)에 있었다.
지난 5월 베이징을 다녀 올 일이 생겼다. 베이징에 간다고 하니 가족들의 걱정이 앞선다. 베이징의 공기가 나쁘다는데 오래 있지 말고 일만 보고 빨리 돌아오라고 하면서 특별한 선물을 건넨다. 풀어 보니 황사 마스크였다.
작년 11월 베이징의 교외에서 개최된 APEC(아시아 태평양 경제 협력체) 정상회담 때는 전형적인 베이징의 쪽빛(藍色) 가을 날씨를 보여 주었다. 사람들은 마술처럼 반짝 되 살아 난 베이징의 푸른 하늘을 ‘APEC 블루’라고 비꼬았다. 손님에게는 씨암탉도 잡아 준다는 중국 고유의 손님접대(하오커 好客)문화가 일시적이나마 수도 베이징을 스모그의 도시라는 악명에서 벗어나게 한 것으로 보였다.
APEC 행사가 끝나면서 그간 중단시켰던 공장이 다시 가동되고 홀짝으로 운행되던 자동차도 밀물처럼 몰려나와 베이징은 다시 스모그 도시로 변했다는 보도를 읽은 적이 있다. 혹시나가 역시나 되었다. 사실 베이징 공기가 걱정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인천 공항에서 두 시간 거리의 베이징에 도착하였다. 비행기 객창을 통해 바라 본 공항 주변의 대기는 어찌된 일인지 예상과는 달리 소나기가 지나 간 거리처럼 깨끗해 보였다. 비행기에 내리자 마중 나온 지인의 얼굴도 밝다. 모처럼 베이징의 파란 하늘을 보여주어 뿌듯한 모양이었다.
지인은 이러한 하늘이 요 며칠 지나가는 반짝 하늘이 아니고 지난 4월부터 계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악명 높았던 베이징의 대기가 이제는 ‘스모그 프리’의 베이징 블루가 되었다고 자랑스러워한다.
베이징 체재가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지만 세수한 것 같은 베이징의 푸른 하늘을 모처럼 즐겼다. 즐비한 고층 건물과 신록이 잘 조화되어 눈이 부셨다. 가지고 간 마스크는 쓸모가 없어졌다. 베이징 블루를 실감한 며칠이었다.
베이징에 오래 거주하는 지인은 베이징 블루에 대해 몇 가지 분석을 내 놓았다. 우선 시진핑(習近平) 국가 주석의 반부패 드라이브의 효과라고 한다. 중국의 환경관련 공무원들이 부패에 젖어 공장 굴뚝에서 배출되는 매연 등 환경기준에 맞지 않는데도 기준에 맞는 것처럼 눈감아 주어 결과적으로 대기를 오염을 시킨 예가 많았다는 것이다.
또한 하수구에 배출되는 오염도 눈감아주고 엉터리로 측정하여 강물이나 호수를 많이 오염시켰는데 이제는 그러한 부패 사슬 구조가 사라져 대기뿐만이 아니고 하천도 깨끗해졌다는 것이다. 관련 공무원이 현지 부패업자와의 결탁이 끊어지게 되어 환경관련 기술과 인력을 선진국에서 조달하여 기술의 수준이 향상된 것이다.
‘대기환경규제강화’로 발전소 제철소 시멘트 공장 등은 반드시 탈질설비 장착의 의무가 부과되어 대기 정화용 촉매필터 시장이 급성장하고 있다고 한다. 주로 이 방면에 우수한 기술을 가지고 있는 한국 업체가 수혜를 받고 있다. 과거 현지 업자와의 결탁으로 한국의 환경 관련 기술이 사용되지 못했는데 이제는 환경 공무원들이 제대로 된 기술을 찾게 됨으로써 한국의 기술이 각광을 받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두 번째는 지방정부의 지도자 평가에서 과거에는 ‘경제성장 만능주의’로 경제성장이 가장 높게 반영되고 환경문제는 거의 무시되었는데 지금은 거꾸로 환경이 가장 높은 우선순위로 평가되고 있다고 한다. 지난 해 APEC 정상회담 후 시진핑 국가 주석이 베이징 블루를 실감하고 APEC 블루가 이어졌으면 좋겠다는 지시를 하였고 베이징 시당국도 APEC 기간의 성공사례에 고무되어 APEC 블루를 유지할 수 있는 자신 감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중국몽(中國夢)은 베이징 공기부터’라는 베이징 시민의 바람도 반영되었을 것이다.
베이징 시뿐만이 아니라 여타 지방정부 지도자들도 자신의 입신을 위해 그리고 중국의 대외적 이미지 개선을 위해 관내의 공장의 매연가스 배출 등을 직접 챙기기 때문에 전반적으로 깨끗한 대기를 유지하는데 힘쓰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세 번째는 2018년 평창에 이어 2022년도 동계 올림픽 개최지 후보로 신청한 베이징 시를 올림픽 실사단이 수시 방문하여 베이징 시의 대기를 체크해 온 것도 베이징 블루의 원인이 되고 있다고 한다. 베이징 시는 이 달(7월)말 카자흐스탄의 알마티와의 개최지 선정을 앞두고 APEC 때와 비슷한 노력을 하고 있다. 베이징 주변의 불요불급한 공장 가동을 중단시키고 인공 강우로 미세 먼지를 씻어내는 등 베이징 블루를 만들어 내고 있다. 베이징 사람들은 이렇게 만든 푸른 하늘을 ‘올림픽 블루’라고 부르면서 그 이후를 걱정한다.
마지막으로 베이징의 대기 순환을 위해 ‘바람 길(風穴)’을 내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베이징 주변에 무질서하게 식목 되었던 이른 바 녹색장성(防風林)을 벌목하여 ‘바람 길’을 만들고 베이징의 도시 계획도 ‘바람 길’을 생각하여 건물의 위치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베이징은 북쪽과 서쪽이 산으로 막혀 있지만 동남이 열려 황사가 내습해도 동남의 ‘바람 길’로 빠져나갔는데 무질서한 도시 계획으로 동 남 지역에 고층 건물을 지어 옛날부터 내려오던 ‘바람 길’이 막혔다. 전문가들은 베이징은 플라시(排水)기능이 고장 난 양변기처럼 오염된 대기가 제대로 빠져 나가지 못해 스모그현상이 일어나고 있다고 주장한다.
낙후된 굴뚝 산업, 자동차의 배기가스, 세계최대 석탄 사용국 등의 이유로 스모그의 도시 베이징의 대기 오염은 비관적이었다. 심지어 외국인들 사이에는 대재앙을 경계하는 ‘에어포카립스(airpocalypse)’라는 자조적인 신조어도 나왔다. 공기(air)와 종말(apocalypse)의 합성어로 공기오염에 의한 묵시론적인 미래를 강조하였다. 외국인의 탈출 러시가 이어지고 베이징의 미국대사관은 베이징 대기의 수준을 ‘건강에 매우 해롭다(very unhealthy)’에서 ‘건강에 치명적(hazardous)’이라고 경고하여 사람들은 외출 시 반드시 마스크를 착용을 권장하기도 하였다.
특히 한자녀 정책에 의해 독자(one child)를 두고 있는 베이징의 여유 있는 가정(well-to-do families)들은 노우지독(老牛?犢)의 심정으로 자녀를 공기가 깨끗한 미국 카나다 또는 호주에 조기유학이나 이민을 보낸다는 이야기가 파다하였다.
이제는 상황이 달라진 것 같다. 우리가 베이징을 다녀 간 이후에도 베이징 날씨는 맑고 푸른 하늘을 계속 보여주어 베이징 블루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고 한다. 더구나 중국 정부는 2017년까지 240조원을 투입하여 미세먼지를 대폭 줄인다는 계획의 보도가 있었다.
또한 중국은 지구 온난화 대책으로 GDP에 대한 이산화탄소(CO2)의 배출 양을 2030년까지 2005년 기준으로 60-65% 감축한다는 서류를 국제연합(UN)에 국제공약으로 제출하였다는 보도도 있다. 전문가들은 중국이 풍력이나 태양광 등 재생가능 에너지(脫炭素)산업을 육성하는 한편 석탄의 열효율을 높이는 선진기술을 도입한다면 석탄 의존국인 중국의 대기 오염도 크게 개선될 것으로 낙관하고 있다.
6월이 되면서 서울 사람들은 메르스 감염의 우려로 서울 공기를 마스크를 쓰고 마셔야 했는데 같은 시기에 베이징 사람들은 메르스 걱정도 스모그 걱정도 없어 마스크가 필요 없는 생활을 즐기고 있었다.
서울의 미세 먼지의 30-40%는 베이징의 영향을 받는다고 하니 서울 시민은 베이징 블루에 고마워해야 할지 모른다. 베이징과 서울은 역시 일의대수(一衣帶水)의 관계라 베이징 블루는 서울 블루를 가져 오기 때문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