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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생칼럼

오빠, 이 선 넘어오지 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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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최승규
KAIST 화학과 4학년

도로 위에는 다양한 색과 모양의 선이 그어져 있다. 주황색의 중앙선, 파란색의 버스 전용차선, 흰색 차선은 흔히 볼 수 있고 가끔 고속도로를 달리다 보면 지그재그로 그어져 있는 차선도 찾아볼 수 있다. 운전면허를 따는 모든 사람은 각각 차선들의 의미와 그 의미를 꼭 지킬 것을 배운다.

 도로교통공단이 지난해 발표한 2012년 통계 자료를 기준으로 인구 10만 명당 보행 중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우리나라는 4.3명이다. 미국(1.5명)·스웨덴(0.5명)·독일(0.6명)과는 비교하기 어렵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국 평균인 1.1명에 비해서도 4배나 높다. 우리나라의 신호 체계나 도로 품질과 같은 도로 교통 인프라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무엇이 우리나라를 교통사고 최다 발생국으로 만들었을까.

 필자가 유럽에 한 학기 동안 유학을 갔을 때 깜짝 놀랐던 것은 사람들이 거리낌 없이 무단횡단을 하는 것이었다. 반대편 차로에서 차가 천천히 올 때면 손짓을 한 뒤 당당하게 무단횡단을 하는 유럽인들의 모습을 보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물론 유럽 또한 한국과 마찬가지로 횡단보도가 있고 무단횡단이 법적으로 허용된 것은 아니다.

 유럽의 무단횡단에 대해 궁금하던 찰나 그 이유를 유럽 친구에게서 들을 수 있었다. 유럽에선 운전면허를 딸 때 보행자를 우선할 것을 귀에 못이 박이도록 강조한다고 했다. 대부분의 운전자가 이를 의식해 설령 보행자가 무단횡단을 하더라도 멀리서부터 속도를 천천히 줄이고 완전히 길을 건널 때까지 기다려 주는 문화가 뿌리를 내렸다는 것이다.

 이를 듣고 우리나라의 도로 모습을 다시 떠올려 보았다. 횡단보도 앞에 멈춰 있는 차들을 보면 정지선을 지킨 경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정지 신호가 출발 신호로 바뀌려 하면 마치 레이싱을 시작하려는 듯 서로 빠르게 치고 나가려고만 한다. 정지선은 도로 위에서 보행자를 보호하고 운전자가 지켜야 할 가장 기본적인 수단이다. 가장 기본적인 것도 잘 이루어지지 않으니 보행자 교통사고가 많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물론 무단횡단을 옹호하려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지선과 같은 기본적인 것도 잘 지켜지지 않는 현실은 우리나라 운전자들에게 올바른 운전의식이 부족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교통사고 왕국이란 오명을 벗기 위해 거창한 것이 아니라 정지선 지키기와 같이 사소하지만 중요한 것부터 해보면 어떨까. “오빠, 이 선 넘어오지 마”는 청춘남녀끼리의 대화만은 아닐 것이다.

최승규 KAIST 화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