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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없는 남자 하곤 결혼 안 해”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뉴스위크]

[사진 픽사베이]

중국 베이징에 거주하는 29세 남성 장웨이. 언뜻 보면 현대 중국 여성 파워의 표상이라고 믿기 어렵다. 일단 그의 말을 들어보자. 국영 에너지 기업의 초급 간부인 장웨이는 베이징에 번듯한 아파트를 장만할 만큼 아직 돈을 저축하지 못했다. 7년 전 그가 직장생활을 시작한 이후 베이징 물가가 상당히 많이 올랐다. 그래서 장웨이는 매달 월급의 30% 가까이를 저축한다고 했다. 그리고 물가가 좀 떨어져서 1~2년 뒤에는 집을 장만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 “그 계획에 좀 집착하는 편”이라고 그가 털어놓는다.

왜 젊은 전문직 남성이 부동산 거품에도 불구하고 아파트 구입에 집착하는 걸까? “결혼해서 가정을 이루고 싶기 때문이다. 부모님으로부터 받는 스트레스가 심하다. 그리고 아파트가 없으면 정말 결혼하기 힘들다.”

상하이에선 전문직에 종사하는 젊은 대학 동창 여성 4명이 퇴근 후 최신식 레스토랑에서 술잔을 기울이고 있다.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뉴욕 여성 4명의 섹스와 우정을 그린 로맨틱 시트콤) 중국판 주인공으로 발탁해도 좋을 듯하다. 모두 20대 후반 또는 30대 초반의 독신이다. 알뜰하게 돈을 모으는 장웨이의 이야기를 꺼냈더니 모두 미소 짓는다. “집없는 남자하고는 결혼은커녕 데이트할 생각도 없다.” 화펑이 말하자 친구들 사이에서 웃음이 터져 나온다. 이어 만나본 적도 없는 장웨이를 두고 한바탕 논쟁이 벌어진다.

국영기업 직원이라는 사실이 플러스인가 마이너스인가? “미래가 안정됐다는 의미다. 회사가 망하지는 않을 테니 실업 걱정은 없다. 그것은 좋은 점”이라고 화펑이 말했다.

“맞아.” 광고회사 간부인 리준링이 맞장구친다. “하지만 큰돈을 벌지는 못할 거야. 누가 알겠어? 번듯한 아파트도 한 채 장만하지 못 할지.”

하지만 결혼은 언제 할 작정인가? 어쨌든 중국의 전통적인 기준으로는 혼기가 차가는데. 부모님들이 손주를 안아 보고 싶다고 압력을 넣지 않는가?

“결혼을 너무 서두를 필요는 없다”고 리준링이 말했다. “별로 압박은 느끼지 않는다. 오히려 시간은 내 편이라고 본다.” 친구들도 동의하는 듯 고개를 끄덕인다.

리준링 말이 맞다. 요즘 중국의 젊은 도시 여성들이 결혼을 미루는 이유는 그만한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과거보다 더 오래 일하고 더 많이 돈을 번다. 게다가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다. 중국 인구구성의 결정권이 베이징의 가련한 장웨이 같은 젊은 남자들이 아니라 리준링 같은 여성에게 있다는 점이다. 그런 추세는 몇 년 동안 더 계속될 듯하다. 중국에서 출생하는 남아 수가 여아를 크게 앞지른 지 이제 한 세대가 지났다. 이 같은 성비 불균형은 2008년 1.22 대 1로 극에 달한 뒤 지금은 1.16 대 1 선에 머물러 있다. 2020년에는 결혼 적령기 남성 수가 여성을 최소 3000만 명 이상 웃돈다고 중국 국가가족계획위원회는 추정한다.

역사적으로 중국은 가부장적 사회였다. 발을 작게 하기 위해 헝겊으로 묶던 전족 풍습은 가장 잔인한 형태로 표현된 여성 종속화의 상징이다. 그와 같은 관행은 20세기 초까지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다. 중국은 요즘도 변함없이 남성 위주 사회다. 1949년 집권 공산당이 권력을 잡은 이후 “여성이 하늘의 절반을 떠받치고 있다”는 마오쩌둥의 말을 전파해 왔지만 현실은 달라지지 않았다. 실제로 남녀의 성비 불균형은 중국이 얼마나 남성 상위 사회인지를 방증한다. 한 자녀 정책으로 초음파검사법이 각광 받았다. 남아를 선호하는 부부가 뜻을 이룰 만한 수단이 생겼다는 의미였다. 원치 않는 여아는 낙태시키면 그만이었다. 이 같은 성비 불균형은 이른바 ‘집안의 혈통을 이으려는 가족적인 경주’의 결과다. 베이징 대학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로렌 존스턴이 그 문제를 다룬 책에서 내놓은 분석이다. 그와 같은 함수관계는 1980년 발효된 한 자녀 정책으로 크게 강화됐다.

그런 배경에서 최근 중국에서 이뤄지는 여권신장은 의미심장하다. 중국은 1995년 많은 이목이 집중된 유엔 여권 관련 회의를 주최했다(당시 미국의 퍼스트 레이디였던 힐러리 클린턴이 참석했다). 그 뒤로 중국 정부는 핵심 여권 현안에 갈수록 더 큰 관심을 보였다(그리고 어느 정도 진전을 이뤘다). 일자리와 고등교육 문호 확대, 가정폭력과 성희롱 방지법(그리고 집행)의 강화, 그리고 공평한 이혼법 등이다.

아직 갈 길이 멀다는 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지난 4월 여권운동가 5명이 직장 내 성희롱 문제를 공론화한 죄로 체포됐다. 그러자 중국 소셜미디어에서 비판의 물결이 거세게 일었다. 올 가을 유엔과 함께 글로벌 여성 대표자회의를 공동주최할 예정인 중앙 정부로선 당혹스런 일이었다. 남자들이 독점한 베이징 정부 지도부에는 “여권 운동에 관한 의식이 눈곱만큼도 없는 사람이 너무 많다”고 중국에서 오랫동안 여권운동을 해온 미시건대학 왕 젱 교수가 말했다.

그러나 현대 중국의 현실적 인구구성(심각한 남초 현상)은 훨씬 더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사회적으로, 남녀간의 일상적인 상호작용에서 그와 같은 영향으로 여성에게 힘이 실리고 있다. 중국 도시 곳곳에 그 증거가 널려 있다.

상하이의 마케팅 업체 중역 차이 리(34·가명)의 예를 보자. 스마트하고 호감을 주고 세련되고 매력적이다. 또한 여덟살배기 딸을 둔 이혼녀다. 5년 전 대만 사업가 남편이 바람 피우다 그녀에게 들켰을 때 망설이지 않았다. “최대한 빨리 갈라섰다”고 그녀가 말했다. “남편은 충격을 받았다. 진심이 아닐 것이라고, 딸 때문에 갈라서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두고 보라’고 말했다. 그리고 한 주도 안 돼 이혼서류를 제출했다. 왜 안 되는가? 왜 그런 꼴을 지켜봐야 하는가? 상하이에 계신 부모님이 딸을 돌봐준다. 내겐 좋은 직장이 있다. 게다가 재혼하려 마음만 먹으면 내 나이에도 남자가 줄을 선다. 내가 눈 감아 주리라고 생각한 전 남편이 정신 나간 사람이다.”

다만 차이에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친가 부모들이 전 남편의 편을 든다는 점이었다. “전형적인 중국식 반응이었다. ‘얘야, 너무 그러지 마라. 다시는 그러지 않을 게다. 어쨌든 그렇게 큰 문제도 아니잖니’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그녀가 돌이켰다. “세대차이였다. 그분들이 젊었을 때는 참고 넘어갔겠지 싶다. 하지만 이젠 안 된다고 말씀 드렸다. 정말 울화가 치밀었다. 단호한 태도를 보였다. 이젠 시대가 달라졌다고.”

실제로 중국에선 이혼율이 꾸준한 오름세다. 이 같은 추세는 상하이 같은 대도시에서 특히 두드러진다. 중국의 성비 불균형이 하나의 요인이라고 정부 당국자들도 시인한다. 전국적으로 2003년 1%를 약간 웃돌던 이혼율이 2013년에는 2.57%로 증가했다. 가장 최근의 전국적 데이터다. 세계 기준에 비하면 여전히 낮은 편이다. 하지만 여성의 경제적 자립도가 높은 도시 지역의 이혼율은 훨씬 높다. 최근 조사에선 베이징과 상하이의 이혼율이 요즘엔 30%를 웃돈다.

“앞으로 한동안은 이혼율이 계속 상승할 전망”이라고 중국 가족계획위원회 관계자였던 류시아가 말했다. “일정 부분 지금은 경제적으로나 인구구성상으로나 여성에게 선택지가 더 많기 때문이다.”

중국의 젊은 여성들은 또한 결혼 시장에서 몸값을 높이고 있다. 상하이의 리준링을 비롯한 독신녀 4명은 예외적인 케이스가 아니다. 중국 여성의 평균 결혼 연령이 2007년 26.4세에서 지금은 27.4세로 높아졌다. 그리고 상하이에선 지난해 젊은 여성의 결혼 평균 연령이 사상 최초로 30세를 넘어섰다.

이 같은 데이터를 보면 주로 20~30대(가령 장웨이 등)의 문제인 듯하다. 하지만 성비 불균형이 지난해 중국 가족계획위원회 리빈 위원장의 말마따나 “더 심각하고 광범위한 영향”을 미친다는 점을 정부 당국도 인식하고 있다. 성비 불균형이 인신매매와 성매매 증가를 부추겼다고 학자들과 사법 당국은 진단한다. 예컨대 그 영향으로 여성 탈북자들을 중국 북동부 농촌의 노총각 남성들과 강제 중매 결혼 시키는 불법 사업이 활기를 띠었다.

성비 불균형 그리고 그것이 중국 결혼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중국의 더 긴급한 경제문제와도 관련성이 있지 않나 의구심을 품기 시작하는 저명한 과학자도 있다. 장웨이는 아파트를 마련해 미래의 신부감에게 높은 점수를 따려고 악착같이 돈을 모은다. 그와 같은 젊은 남성들의 행동이 중국의 떨어질 줄 모르는 높은 가계 저축률과 관계가 있을지 모른다고 과학자들은 추정한다.

컬럼비아대학 교수를 지낸 웨이샹진은 현재 아시아개발은행(ADB) 수석 이코노미스트다. 2009년 장샤오보와 ‘경쟁적인 저축 동기(The Competitive Saving Motive)’라는 논문을 공동 작성했다. 중국의 저축률이 왜 그렇게 높은지, 그리고 왜 떨어지지 않는지(하락한다고 예상한 경제학자가 많았다)에 관해 파격적인 가설을 제시했다. 높은 저축률은 상당한 파급효과를 초래한다. 웨이샹진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하듯 중국의 가계 저축률은 국제자본 흐름으로부터 중국의 막대한 무역 불균형, 미국의 수출, 고용에 이르기까지 곳곳에 영향을 미친다. 쉽게 말해 중국 소비자가 저축을 줄이고 소비를 늘려야 미국을 포함한 중국의 교역 상대국들이 그들에게 수출하는 상품과 용역이 늘어난다.

일반적인 분석은 중국의 사회적 안전망이 튼튼하지 않아 보통사람들이 저축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특히 미국의 사회보장제도와 메디케어(고령자 의료보장) 같은 전국적인 연금과 건강보험 제도의 부재가 대표적이다. 웨이샹진 이코노미스트는 그런 분석을 반신반의한다. 지난 10년 사이 국가연금과 건강보험 시스템이 모두 크게 발전했다고 그는 평한다. 그에 따라 중국의 여러 지방에 걸쳐 저축과 성비 불균형의 상관성을 파악하려 시도한 데이터를 검토했다. 그 결과는 놀라웠다. “조사 결과 아들이 있는 가구가 딸을 둔 가구보다 평균적으로 저축을 더 많이 했다. 그뿐 아니라 아들을 둔 가구가 성비 격차가 더 큰 지역에 거주할 경우 저축률을 더 높이는 경향을 보였다”고 웨이샹진 이코노미스트가 말했다.

그 영향은 예상보다 더 두드러졌다고 그는 말한다. “결혼 시장에서 경쟁하지 않는 사람조차 주택을 마련하고 다른 중요한 품목을 사기 위해 경쟁해야 한다. 그에 따라 모든 가구의 저축률이 높아진다.” 그의 관점에서 결론은 명약관화하다. “글로벌 경제 불균형에 관한 어떤 논의에서도 가족계획 정책이나 여권 문제를 안건으로 올리지 않았다. 대다수가 이런 이슈들이 경제정책과 상관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 조사 결과를 보면 그 문제를 누락시킨 건 중대한 실수다.”

결혼 적령기 여성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한 경쟁은 대단히 치열하다. 그것이 전국적인 저축률의 바늘을 움직일 정도라는 사실은 성비 불균형의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를 말해준다. 그리고 젊은 미혼 여성의 손으로 넘어가는 개인적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방증한다. 웨이샹진 이코노미스트의 말마따나 “결혼시장에선 젊은 여성이 ‘뛰어’라고 하면 젊은 남성은 ‘얼마나 높이?’라고 묻는 게 정답이다.”

거기에는 엄청난 아이러니가 도사린다. 중국의 성비 불균형은 도덕적 스캔들이라는 점이다. 베이징의 가족계획위원회가 적어도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사실이다. 위원회는 올해 말까지 불균형을 줄인다는 목표를 세웠다. 사랑과 결혼(그리고 이혼)에 관한 한 젊은 여성이 갈수록 더 큰 주도권을 행사한다. 그것은 성비 불균형의 부산물 중 하나다. 장웨이 같은 젊은 남성은 싫어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런 현실에 적응하는 편이 좋을 듯하다.

글=빌 파웰 뉴스위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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