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미 강 멍든 손 … 스타 연주자까지 콩쿠르 출전 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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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주미 강이 결선 무대에서 연주하고 있다. 오른쪽 점선 안은 멍든 부분. [사진 차이콥스키 콩쿠르 홈페이지]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이번 차이콥스키 국제 콩쿠르 결과에 실망한 사람도 꽤 될 듯하다. 4년 전엔 한국 돌풍이었다. 피아노 2·3위, 바이올린 3위, 남자·여자 성악 1위가 한국인이었다.

 2일(한국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끝난 올해 대회에서는 한국인 3·4·5위가 나왔다. 유한승(30)이 남자 성악 3위, 클라라 주미 강(28·이하 주미 강)과 김봄소리(25)가 각각 바이올린 4·5위에 올랐다. 강승민(28)이 첼로 5위에 입상했다. 사실상 입상자로 기록되는 1~3등에는 한 명뿐이다.

 하지만 이 동영상을 보고도 실망이라고 할 수 있을까. 1일(한국시간) 열린 주미 강의 최종 결선 연주 동영상은 차이콥스키 콩쿠르 홈페이지에서 볼 수 있다. 바이올린의 줄을 짚는 왼손에 멍 자국이 보였다. 보라색 멍은 새끼손가락 아랫부분에서 손바닥 쪽까지 넓게 번져있었다. 주미 강의 매니지먼트사인 아트앤아티스트 측은 “콩쿠르를 준비하며 무리하게 연습해 왼손이 부어올라 치료를 계속 받았다”고 설명했다.

 사실 주미 강은 이 대회에 꼭 나오지 않아도 될, 이미 유명한 바이올리니스트다. 2010년 인디애나폴리스 국제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손에 꼽히는 대형 대회다. 음반사 데카에서 낸 앨범으로 이미 데뷔도 했다. 차이콥스키 콩쿠르에서 우승을 해야 본전 정도인 연주자다.

 그는 왜 출전했을까. 그와 가까운 한 중견 바이올리니스트는 “본인 생각만큼 연주 기회가 많지 않으니 마지막 도전이라 생각하고 나가 봤을 것”이라고 전했다. 그만큼 부담이 컸을 터다. 푸른 멍은 부담의 무게를 있는 그대로 찍어내 보였다.

 최근 10여 년간 한국 음악도들은 전세계 크고 작은 콩쿠르를 휩쓸었다. 벨기에의 다큐멘터리 감독 티에리 로로는 “주요 클래식 콩쿠르 50여 개에서 입상한 한국인이 1997년 2명, 2010년 29명”이라고 분석했다. 이제 웬만한 콩쿠르 우승으로는 제대로 된 연주 기회를 잡을 수도, 이름을 알릴 수도 없다. 세계 최고로 꼽히는 차이콥스키 콩쿠르 정도는 돼야 한다.

 하지만 주미 강의 멍든 손은 콩쿠르에 집착하는 시대가 끝나야한다고 말하고 있다. 콩쿠르는 그야말로 요지경 세상이다. 우승을 맡아놓은 듯한 연주자가 갑자기 부상을 입을 수도 있다. 주미 강이 이번 최종 결선에서 연주할 땐 공연장 천장에 새 한 마리가 난입해 날아다녔다. 콩쿠르는 이토록 변수 투성이다. 실력을 숫자로 깔끔하게 환산할 수 있는 곳이 아니다. 또 요즘엔 전세계 거의 모든 음악도가 콩쿠르에 목숨을 걸고, 한 번 입상한 콩쿠르에 우승을 노려 재출전하며 콩쿠르 쇼핑을 한다. 지나친 과열 속에서는 변수가 더 많아진다.

 주미 강 정도 되는 연주자라면 이제 콩쿠르 졸업을 선언할 수 있어야 한다. 콩쿠르가 아니라 음악에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먼저다. 그러려면 꼭 대형 콩쿠르 우승자가 아니어도 실력이 있으면 무대에 자주 설 수 있어야 한다. 좋은 연주자가 있는지 탐색하고 아끼는 청중도 늘어나야 한다. 이미 궤도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가 손에 멍까지 들 일은 없도록 말이다. 연주자·청중이 콩쿠르 너머의 새로운 판을 생각해 볼 때다.

김호정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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