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적인 갱 두목, "범죄로 돈 벌려면 로스쿨 가라"

중앙일보

입력

“범죄로 돈을 벌려면 로스쿨을 가라.”

종신형을 선고 받고 수감 중인 미국 보스턴의 전설적인 갱 두목 제임스 화이티 벌저(85)가 여고생들에게 편지로 한 이색 충고다. 29일(현지시간) 보스턴글로브 등 현지 언론들은 벌저가 지난 2월 매사추세츠주에 살고 있는 여고생 3명에게 보낸 편지를 자세히 소개했다.

‘리더십과 유산’이라는 주제로 과제를 하던 여고생 미카엘라, 브리태니, 몰리케잇은 사회 유명 인사들에게 편지를 보내 조언을 얻기로 했다. 그러나 이들이 선택한건 다름아닌 1970~80년대 보스턴을 주름잡은 악명 높은 갱단 ‘윈터힐’의 두목 벌저. 1929년 보스턴에서 태어난 벌저는 11건의 살인과 공갈 협박·마약 거래 등의 다양한 범죄를 저지르고 16년간 FBI 감시를 피해다녔다. 한때 오사마 빈 라덴 알카에다 최고지도자 다음으로 포상금(200만 달러)이 높은 인물이었던 벌저는 2011년 캘리포니아주 산타모니카에서 체포됐다. 2013년 31개의 혐의에 대해 유죄 평결을 받고 종신형을 선고받아 수감 중이다. 마틴 스콜세이지 감독이 연출하고 잭 니컬슨이 주연을 맡은 영화 ‘디파티드’(2006)의 실제 모델로 알려져 있다.

여고생들은 ABC와의 인터뷰에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같은 다소 뻔한 위대한 인물 말고 극악무도한 범죄를 저질러 사회에 악영향을 끼친 사람들을 만나보고 싶었다”며 벌저에게 편지를 보낸 이유를 설명했다. ‘범죄의 리더십’에 대해 알아보고 싶었다는 것이다.

벌저의 답장을 기대하지 않았던 여고생들에게 며칠 만에 답장이 왔다. 벌저는 자신을 “이미 사회에서 잊혀지고, 없어져야 할 사람”이라고 소개하며 “나는 인생을 바보같이 낭비했고, 부모님과 형제들은 나 때문에 수치심과 고통으로 괴로워했다”고 말했다.

“나는 9학년 당시 학교를 중퇴했고 잘못된 길을 선택했다. 나보다 5살 어린 동생은 학교를 열심히 다녔고 주 의회 의원과 의장을 역임하고 은퇴했다. 그의 9명의 자녀들은 모두 대학교를 졸업하고, 그 중 4명은 변호사가 됐다. 단언컨대 동생은 나보다 더 훌륭한 사람이다. 이런 내게 조언을 구하는 것은 부질없는 짓이다. 한 가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건 범죄로 돈을 벌고 싶으면 로스쿨에 가라는 것이다.”

벌저의 동생 윌리엄 벌저(80)는 1970년 매사추세즈주 상원의원에 당선됐고 1978년부터 17년간 상원 의장을 지냈다. 형의 범죄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면서 자신의 정치 생명이 끝날 처지에 놓였지만 오히려 형을 옹호하고 검찰을 비난했다.

벌저의 편지에 대해 여고생 미카엘라는 “우리가 기대했던 것과는 많이 다른 내용이 담겨있었다”는 소감을 밝혔으며, 브리태니도 “벌저가 자신의 인생을 후회하고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고 ABC에 말했다.

하선영 기자 dynamic@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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