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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폐쇄, 하루 인출 7만원 제한 … 그리스 금융 ‘올스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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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국가부도 위기에 처한 그리스의 항구도시 테살로니키에서 28일(현지시간) 좌파 시위대가 유럽연합 깃발을 불태우고 있다. [테살로니키 AP=뉴시스]

그리스 금융이 스톱됐다. 29일(현지시간) 그리스 아테네 신타그마 광장 주변 은행들은 대부분 셔터를 내린 상태였다. 현금입출금기(ATM)마다 적게는 한두 명 길게는 수십 명이 줄을 서 있었다. 카드당 하루 최대 인출할 수 있는 한도인 60유로(약 7만4000원)를 찾기 위해서였다. 사람들의 표정은 다양했다. 심란한 표정을 짓는가 하면 “(유럽중앙은행(ECB) 총재인) 마리오 드라기 때문”이라며 자신이 찾은 20유로 지폐 석 장을 흔들어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자본통제 포고령은 하루 전인 일요일에 발표됐다. 다음달 7일까지 모든 은행과 주식시장을 폐쇄하기로 한 후 29일 오전 한때 ATM 사용이 불가했었다.

아테네의 한 택시 기사는 “우리는 지금 재난의 한가운데 있다”며 “그리스 서민들의 삶에 이렇게 구멍이 뚫릴 줄 상상이나 했겠느냐”고 말했다. 사태는 그리스 국경을 넘어 확산하고 있다. 이날 영국·독일 등 주요국 주가가 2~4% 추락하며 한 주를 시작했다. 금값도 들썩거렸다. 불신의 역류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 사이에 극적인 타결이 이뤄지지 않으면 시장의 불신은 확대될 것이다. 이렇게 되면 이탈리아·스페인·포르투갈의 국채 등을 투자자들이 투매할 가능성이 크다.

 전망은 어둡다. 메르켈은 독일 보수 진영의, 치프라스는 그리스 좌파진영의 반발을 두려워하고 있다. 양보를 했다간 정치적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전형적인 ‘리먼 모멘트’다. 영국 런던정경대(LSE)의 찰스 굿하트 석좌교수는 최근 기자와의 통화에서 “2008년 9월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 파산은 비판이 두려워 당시 조지 부시 대통령과 헨리 폴슨 재무장관이 리더십(구제금융 투입)을 발휘하지 않아 일어났다” 고 설명했다.

 양쪽의 대치와 무기력 상태 때문에 30일 그리스가 국제통화기금(IMF)의 빚(15억4000만 유로)을 갚지 못할 가능성이 커졌다. 그러면 그리스는 사실상 국가부도(디폴트)에 빠진다. 디폴트 상태에서 다음달 5일 실시하는 국민투표는 사실상 그리스의 운명을 결정짓게 된다. 28일 발표된 현지 여론조사에서 57% 정도가 긴축 안에 찬성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과반 이상이다. 그리스인들이 긴축 안을 지지하면 그리스는 채권단으로부터 구제금융 155억 유로(약 19조원)를 받고 구제금융 프로그램도 5개월 연장된다. 패닉은 피할 수 있다. 이 경우 치프라스 정권은 무너진다. 그래도 문제는 여전하다. 그리스는 조기 총선을 해야 한다. 권력공백 상황이 발생하면서 혼란은 계속될 수 있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폴 크루그먼은 “구제금융을 받아도 그리스는 침체에서 벗어나기 어렵다”고 전망했다.

치프라스가 기대를 거는 건 과거 긴축 지지 여론이 70~80%에 달했다는 점이다. 비록 긴축안 찬성이 아직은 많지만 반(反) 유로 정서가 강해지면서 긴축안 찬성 비율이 시간이 갈수록 낮아지고 있다.

  채권단의 긴축안이 부결되면 메르켈이 양보하지 않는 한 유로존 탈퇴(그렉시트) 수순을 밟는다. 영국 금융그룹 바클레이스는 최근 보고서에서 “전면과 부분 그렉시트 모두 가능하다”고 전망했다. 전면 그렉시트는 유로 폐지, 자국 통화 부활이다.

 부분 그렉시트는 그리스가 대외 결제용으로 유로를 유지하되 국내용 바우처(사실상 화폐)를 발행하는 것이다. 아르헨티나가 2001년 위기 때 채택했던 방식이다. 바우처를 찍어 공무원 임금과 국민연금 지급에 썼다.

 그렉시트 확률은 얼마나 될까. 세계 최대 채권펀드 운용사인 핌코의 전 최고경영자(CEO)인 엘 에리언은 “(어떤 형태이든) 그렉시트 확률은 85%에 이른다”고 말했다. 이 경우 경제분석회사인 IHS는 “아시아·태평양 지역 내년 성장률이 0.3%포인트 정도 낮아질 수 있다”고 예측했다. 아테네=고정애 특파원

서울=강남규 기자 ockh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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