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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급·월급 병기’ 놓고 팽팽 … 법정시한 넘긴 최저임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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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이 법정시한(29일)을 지키지 못하고 무기한 미뤄졌다. 경영계가 29일 개최된 최저임금위원회 전체회의에 불참했기 때문이다. 이로써 지난해 법정시한을 지켰던 최저임금위원회는 다시 파행으로 치닫게 됐다. 경영계는 1일 회의를 열어 최저임금위원회에 계속 참여할 지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최악의 경우 경영계가 논의 과정에 빠진 채 최저임금이 결정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관련 법에는 2회 이상 전체회의에 불참하면 참석자 만으로 표결을 강행해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다. 최저임금위원회는 근로자와 사용자, 공익위원 각 9명으로 구성돼 있다.

 내년도 최저임금 결정을 앞두고 노동계와 경영계는 올해 초부터 팽팽하게 맞서 왔다. 노동계는 올해(시급 5580원)보다 79.2% 오른 시급 1만원을 요구하고 있다. 경영계는 동결할 것을 요청 중이다. 노동계의 요구대로 최저임금이 시급 1만원으로 정해지면 전체 근로자의 절반 가량이 최저임금을 받는 근로자가 된다. 연봉으로 따지면 2508만원이고, 상여금이나 야간근로수당을 합치면 연봉 3000만원대가 임금의 최저선이 되기 때문이다. 현재는 전체 근로자의 14.6%가 최저임금 대상자다. 이 때문에 영세자영업자와 중소기업, 심지어 대기업까지 “무리한 요구”라며 반발하고 있다. 그러나 노동계는 “한 가구의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불가피한 인상안”이라는 입장이다.

 그런데 이날 최저임금위원회 파행은 인상요구안을 둘러싼 갈등 때문이 아니다. 최저임금 결정문에 월급을 병기하자는 공익위원의 제안 때문이다. 정부와 노동계는 이 제안에 찬성하는 입장이다. 경영계는 회의 불참을 선언할 정도로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 제안은 정부와 일부 공익위원 간의 사전 교감 속에 나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용노동부 측에서 “시급만 명시하니 임금이 적어보이는 것 아니냐. 월급을 병기하면 임금액이 많아 보일 것”이라는 논리를 제공했다. 일종의 착시효과를 노린 정책 변경안을 내놓은 것이다. 이를 18일 제5차 전원회의에서 공익위원이 제안했고, 고용부 고위관계자가 부가설명을 하면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최저임금법 제5조 제1항 단서에는 최저임금을 일, 주, 월 단위로 결정할 경우 시간급을 병기해야 한다고 돼 있다. 월급제 병기가 법에 어긋나는 것은 아니란 얘기다. 아이러니하게도 경영계가 월급제 병기에 반발하는 것은 바로 이 조항 때문이다. 1988년 최저임금제가 도입된 이래 28년간 시간급으로 결정했다. 그런데 월급을 병기하면 법 조항에 따라 월급으로 결정하고 시간급을 병기하는 것과 다름없는 효과를 낼 수 있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비롯한 근로계약을 시간 단위가 아닌 월 단위로 체결하자는 노동계의 요구가 거세질테고, 이를 둘러싼 노사갈등을 우려한다.

 시간급이 월급으로 전환되는데 따른 고용시장의 혼란도 걱정하고 있다. 예컨대 주 15시간 미만 근로자에게는 법에 따라 유급휴일이 주어지지 않는다. 하루 8시간씩 1주일 동안 일해야 유급휴일이 주어진다. 그런데 월급제가 되면 이게 유명무실해진다. 여기에다 1~4인 사업장은 법정근로시간제가 적용되지 않아 월 단위 임금책정이 어렵다.

 노동계는 “월급으로 임금을 지급하는 것이 사회적인 관행”이라며 “시급으로 계산하다 보니 이를 악용해 임금을 제대로 지불하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월급제에 찬성하고 있다. 특히 월급으로 최저임금을 명시하면 유급휴일수당을 받을 수 있게 돼 근로자들의 실질적인 소득 향상을 꾀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의 이장원 공익위원은 “시간급과 월급을 이중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며 “장관 고시일(8월 5일)까지는 시간이 있기 때문에 사용자 위원을 설득해 다음달 초 안에는 최저임금을 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김기찬 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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