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위해 목숨 바친 선인들을 기억해야" 박정희, 비 새는 현충사 사적 지정 성역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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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4월 28일 박정희 최고회의 의장이 현충사 사당에서 탄신 417주년을 맞는 이순신 장군 영정 앞에 참배하고 있다. [사진 국가기록원]

충남 아산의 현충사(顯忠祠)는 충무공 이순신(李舜臣·1545~98) 장군의 정신과 위업을 기리기 위해 만든 곳이다. 이순신 장군은 결혼 뒤 현충사 경내에 있는 처가(장인은 보성군수를 지낸 방진)에 살며 무예를 연마했다. 김종필 전 총리는 “박정희 대통령은 나라를 위해 생명을 바쳤거나 영구히 기억할 만한 일을 한 선인들은 그냥 알고만 있어서는 안 되고 후손들이 계속 가서 참배하고 위령(慰靈)하는 시설을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박 대통령은 일찍부터 현충사를 다시 손질해야겠다고 말씀했다”고 전했다.

 박 대통령이 ‘현충사 성역화’ 작업을 추진한 건 1966년. 현충사를 중심으로 35만㎡(약 10만6000평)에 달하는 지역을 사적(史跡)으로 지정해 5개년 계획으로 진행했다. 기존 현충사 사당은 그대로 두고 위쪽에 규모가 더 큰 새로운 사당을 만들었다. 이순신 장군이 400년 전 사용했던 활터도 새로 단장했다. 사당 주변에 살던 주민들은 이주시켰다. 이순신 장군 탄신일(4월 28일)을 기념해 정부 주관으로 매년 추모행사가 열렸다. 이명박 정부 때인 2011년에 전시관과 교육관을 갖춘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이 건립됐다.

 박 대통령이 성역화하기 전에도 현충사에선 매년 장군의 탄신일을 기념하는 제전이 열렸지만, 사당 건물은 낡을 대로 낡아 무너지기 직전이었다. 1955년 언론 보도는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이 생전에 쓴 군사일지(난중일기)를 비롯해 칼과 옥로(玉鷺·장신구의 일종) 등을 보존하고 있지만 보수조차 못하고 있다. 비가 오면 지붕에서 물이 새 유물이 손상을 입을 정도다. 아산 군민들은 우기(雨期)를 앞두고 현충사를 보수하지 않으면 완전 황폐화할 것이라고 호소하고 있다”(경향신문)고 전했다. 현충사가 처음 만들어진 것은 이순신 장군이 숨진 100여 년 뒤인 1706년(숙종 32년)이다. 충청도 유생들이 조정에 상소를 올리자 숙종이 이를 받아들였다. 숙종은 현충사 액자를 하사했다. 1868년(고종 5년) 대원군의 서원 철폐령으로 현충사는 폐지됐다. 현충사가 되살아난 건 일제 치하인 1932년이다. 충무공의 묘소가 있는 지역이 경매로 나와 일본인의 손에 넘어갈 지경이 됐다. 이를 계기로 민족지사들이 ‘이 충무공 유적보존회’를 만들어 성금을 모아 경매를 막았고 현충사를 중건했다.

정리=전영기·최준호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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