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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대학생칼럼

메르스처럼 ‘도서관 바이러스’도 사라져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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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백세준
세명대 사회복지학과 4학년

학교 도서관 4층 창가 근처 책상으로 터덜터덜 걸어간다. 나는 수업이 없을 때면 늘 도서관을 찾아 엉덩이를 붙인다. 이곳을 찾는 이유는 나를 덮칠 것처럼 커다란 창문을 앞에 놓고 지식의 향연에 몰입하다 눈을 들어 바깥세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손만 뻗으면 닿을 거리에 있는 나무들은 물론 저 멀리 희미하게 보이는 산자락을 관조하며 책 읽느라 더워진 머리를 식힐 수 있다. 그 산자락 밑에는 연립주택과 아파트가 삼삼오오 모여 있다. 나는 마음속으로 그 집들의 문을 두드린다.

 “지금 뭐하고 계시나요? 나는 책을 읽고 있어요.”

 그렇다. 나는 독서인이다. 도서관에 출근하며 소설과 인문학서는 물론 자기계발서까지 온갖 책을 읽어 영양분을 흡수하고 있다. 하지만 나보다 앞서 이 도서관을 이용한 사람들은 책 자체를 들이마시려고 한 것 같다. 그들의 지나친 책사랑(?) 덕분에 골병이 든 책이 많기 때문이다. 페이지마다 낙서는 기본이고 귀퉁이가 찢겨 있거나, 아예 여러 페이지가 절단돼 불구가 된 책도 많다. 책을 집어 들었을 때 불쾌한 기분이 느껴지고,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찐득찐득한 정체불명의 오물이 묻어 있는 경우도 적지 않다.

 내가 다니는 도서관의 장서들만 이런 수난을 겪고 있는 게 아니다. 서울 시내 공공도서관은 매년 25만 권의 책을 폐기처분하고 있다. 책이 워낙 오래돼 불가피하게 없애는 경우도 없지 않다. 하지만 버려지는 책의 상당수는 도서관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는 새 책이다. 문단마다 밑줄을 그어놓거나 책 일부분을 찢어가는 행위는 양반이다. 결말이 가장 중요한 추리소설 첫 페이지에 누가 범인인지 써놓는 몰염치한 스포일러도 적지 않다. 책을 찢거나 불필요한 낙서를 하는 건 자신의 양심도 찢는 행위임을 알기 바란다.

 지난달 학교 도서관에서 영어 수험서를 빌릴 때였다. 수험서를 빌리는 독자끼리는 암묵적인 약속이 있다. 문제는 따로 자신의 공책에 풀 것, 답을 체크해놓지 않을 것, 채점을 하지 않을 것 등이다. 하지만 내가 빌리려던 책은 정반대였다. 문제마다 정답이 적혀 있었고 채점까지 돼 있었다. 결국 대출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지하철의 ‘쩍벌남’이나 ‘백팩남’이 민폐로 떠오른 지 오래다. 공공도서관에서도 민폐를 끼치는 사람이 많지만 공론화가 덜 되고 있어 문제다. 도서관의 책들은 공공재란 인식이 역설적으로 책을 함부로 다루는 사람을 양산하고 있다. “나 하나쯤은 괜찮겠지”라는 바이러스가 도서관 장서들 위에 창궐하고 있는 것이다. 메르스와 달리 이 바이러스는 역학조사로 뿌리 뽑기는 어려워 보인다. 도서관 이용객 하나하나가 스스로 깨닫고 상대방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만이 해법이 아닐까 싶다.

백세준 세명대 사회복지학과 4학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