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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메르스 환자는 어떡하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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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철호
이철호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철호
논설실장

어떤 신종 전염병도 역학적 법칙에 따르기 마련이다. 인간 몸에 맞게 덜 진화된 메르스는 치사율이 높지만 전염력은 비교적 낮은 편이란 게 정설이다. 전문집단인 의사들 사이에선 “메르스는 정점을 지났다”는 게 중론이다. 진보 쪽의 환경운동연합대표인 장재연 아주대 교수도 한 기고문에서 “지역사회 대규모 감염은 걱정할 필요 없다”고 단언한다. 그는 “공기로 전파되거나 가벼운 접촉으로 감염된다면 매일 수백~수천 명의 메르스 환자가 나와야 한다”며 “감염력이 낮다는 명백한 사실까지 받아들이지 않으면 정말 답이 없다”고 했다. 지난 16일 방한한 사우디아라비아의 알리 알바라크 질병관리본부장도 “전통적으로 대가족이 한 천막에서 생활하는 사우디에서도 가족 간 감염은 극히 드물었다”고 했다.

 이런 과학적 논리에 따른다면 메르스는 조기 발견과 격리 조치로 병원 내 감염만 막으면 충분히 통제 가능한 질병이다. 정부는 초반에 지나친 낙관론으로 몰매를 맞은 탓인지 지금은 너무 신중한 분위기다. 출구전략은커녕 며칠째 “진정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입장에 머물고 있다. 어제 관리 대상에서 빠져 있던 172번 환자가 구리에서 발견되고, 잠복기가 지나 확진 판정을 받는 경우까지 나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소 이른 감이 있지만 최종 환자 이후 2주간 발병이 없으면 안심 단계, 4주간 더 이상 추가 환자가 안 나오면 ‘메르스 종식’을 선언할 가능성도 높아진 게 사실이다.

 메르스 사태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기사는 “전염병은 심리학으로 시작해 수학(통계학)을 거쳐 의학으로 끝난다”는 전병율 연세대 교수의 이야기다 . 지금 우리는 어디쯤 가고 있을까. 이상일 성균관대 예방의학 교수는 “확진자와 사망자 수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만큼 통계학 단계”라 짚었다. 그는 “메르스를 박멸하려면 몇 개의 함정을 건너야 한다”고 했다.

 우선 복잡하고 열악한 응급실, 온 가족의 간병 문화를 뜯어고쳐야 한다. 메르스의 좋은 서식 환경이다. 또 여전히 일부 환자가 메르스 확산 병원을 경유한 사실을 감추는 것도 현실이다. 주변에 자가격리나 능동감시처럼 피해를 주지 않을까, 지레 겁을 먹기 때문이다. 병원과 건보공단 자료로 찾기 어려운 가족이나 문병객의 감염 가능성도 복병으로 꼽힌다. 의학 단계로 넘어 가기가 쉽지 않다.

 환자들도 문제다. 특히 1번·14번 환자는 많은 아쉬움을 남겼다. 1번 환자는 사우디 방문 사실을 숨겼고, 14번 환자는 최초 평택성모병원 입원 사실을 털어놓지 않아 ‘수퍼 전파자’가 됐다. 141번 환자는 공공의 적으로 몰리는 분위기다. “메르스에 걸리면 다 퍼뜨리고 다니겠다”며 어이없는 소란을 피웠고, 제주도 여행 사실도 숨겼다. 하지만 현장 역학조사관들은 “진짜 골치는 A씨”라 입을 모은다.

 “역학조사는 감염을 막으려 전화로 하는 게 원칙이다. A는 ‘나도 억울한 피해자니 전화로 대답 못한다’고 버텼다. 조사관이 방호복을 입고 격리병상을 찾아갔으나 A는 ‘가까이 오라’고 우겼다. 조사관이 밀접 접촉을 한 뒤에야 동선과 접촉자를 진술했다. 문제는 그 후 크로스체킹 과정에서 건강보험과 신용카드 사용을 조회하니 A가 말한 경유 병원과 동선이 모두 엉터리였다는 사실이다. 부랴부랴 폐쇄회로TV(CCTV)와 차량 블랙박스까지 조사해 최대한 접촉 가능자들을 격리했으나 솔직히 조마조마하다. 이렇게 거짓말을 하면 메르스 방역망은 100% 자신하기 어렵다.”

 정부는 메르스에 워낙 대형 사고를 쳐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다. 그 뒷수습을 하느라 예방의학 전공의 20여 명이 차출돼 현장에 투입됐다. 이들은 “당국의 대응 시스템도 수술해야 하지만 시민의식도 문제”라 지적한다. 앞으로 사우디의 단봉낙타들을 모조리 살처분하지 않는 한 메르스가 언제 다시 건너올지 모른다. 감염병예방법 6조·18조부터 강화해야 한다. 격리 거부나 거짓 진술에 200만원 이하의 벌금을 확 끌어올려 필요하면 강제 인신 구속도 해야 할 것 같다. 일부의 반사회적 행동이 우리 공동체를 뿌리째 뒤흔드는 현장을 눈앞에서 지켜보고 있지 않은가.

이철호 논설실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