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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국노 소리 들으며 만든 한·일 관계 … 두 정상이 회복했으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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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김종필 전 총리가 21일 서울 신당동 자택에서 한·일 관계 에 대해 얘기하고 있다. 그는 “역사는 아무리 덮으려 해도 덮어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춘식 기자]

김종필(JP) 전 총리는 한·일 수교(修交)의 해결사였다. 1962년 11월 12일 김종필-오히라 회담이 그 무대다. 당시 JP는 중앙정보부장이었다. 막후 무대에서 두 사람은 ‘대일(對日) 청구권 및 대한(對韓) 경제협력자금’을 6억 달러+알파로 합의했다. 박정희 당시 최고회의 의장이 준 지침은 8억 달러. 일본의 외환보유액이 14억 달러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적지 않은 액수다. 청구권 자금이 해결되고 2년6개월 뒤인 65년 6월 22일 한일협정이 조인됐다(조인 당시 확정된 청구권 액수는 8억 달러).

 JP는 21일 그날의 생생한 감회와 오늘날 경색된 양국 관계를 오가면서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에게 격정적인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1961년 11월 12일 일본 도쿄를 방문한 박정희 당시 최고회의 의장(오른쪽)이 이케다 하야토 일본 총리와 환담하고 있다.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 지금 한·일 관계는 어떤 상태입니까.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의 농무(濃霧·짙은 안개)가 두 나라 간에 싸여 있어. 누가 이걸 치우고 내일의 사이좋은 양국 관계를 열어 나갈 것인가. 이걸 헤쳐 나갈 책임자는 양국의 수뇌들이다. 박근혜 대통령과 아베 총리는 어떤 이유로 축적됐든 서로에 대한 인간적인 감정을 불식해야 한다. 양국의 미래를 영위할 상부상조의 길을 결단해야 한다. 나는 50년 전 매국노 소리를 들어가며 한·일 관계를 매듭지었다. 박 대통령과 아베 총리가 결자해지(結者解之)하는 심정으로 관계를 회복시켜야 한다.”

 - 두 지도자가 갖춰야 할 자세는 무엇입니까.

 “외교에 감정을 섞으면 안 돼요. 양국 관계가 헝클어지면 그 손해는 국민이 본다. 소승적 태도를 버리고 대승적 자세를 취해야 한다. 당신들(박근혜·아베)은 때가 되면 물러나도 국민은 영원하다. 국민끼리 영원한 친선우호 관계를 맺을 수 있게 발판을 마련해 주는 게 대승적 입장이지. 인간적이고 감정적인 관계를 뛰어넘는 용기를 내야 해요. 두 분이 짙게 싸여 있는 안갯속에서 나오시길 바란다.”

 ‘내일을 위해 원수와도 손을 잡는다’는 건 한·일 회담 때 JP가 일관되게 품은 정신이었다. 61년 10월 25일 이케다 총리와 첫 만남→62년 11월 김-오히라 청구권 회담→64년 굴욕외교 반대시위와 6·3사태를 돌파하면서 그가 겪은 한·일 관계는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거칠고 험악했다. 일본은 한국을 경멸했고 한국은 일본을 증오했다.

62년 11월 12일 김종필 중앙정보부장(왼쪽)이 일본 외무성에서 오히라 마사요시 외상과 대일(對日) 청구권 자금을 협상하고 있는 모습. [사진 김종필 전 총리 비서실]

 - 국교정상화 협상에 어떤 마음가짐으로 임했는지요.

 “60년대 한국이 처했던 지정학적(地政學的) 조건을 생각했어. 그때나 지금이나 한국의 생존과 번영은 외교, 그 자체에 달려 있지. 서쪽에는 중공(中共)이, 북쪽에는 소련이 막아서 대륙으로는 갈 데가 없었어. 우리는 대륙의 끝에 맹장처럼 매달려 있는 신세 아니냐. 남쪽은 3000㎞ 이상 늘어선 일본이다. 우리가 살기 위해서는 일본을 디딤돌로 해서 태평양·인도양으로 뻗어 나가야 한다. 일본이 밉더라도 우리가 살길을 열어 가야 한다. 그런 생각이었어요.”

 61년 박정희 장군을 도와 5·16을 성공시켰으나 나라의 빈곤을 몰아내고 조국 근대화를 이루기 위한 밑천이 필요했다. 밑천이 나올 곳은 대일 청구권 자금밖에 없었다. 이승만 대통령 때부터 수교 협상이 번번이 막힌 건 청구권 자금의 액수 때문이었다. 돈을 얼마를 받아 오든 식민지 피해의 한과 분노를 달랠 수 없었다. 누가 협상을 해도 국민적 비난을 피하기 어려운 구조였다. 박정희 의장은 JP에게 대일 협상의 밀사(密使) 역을 맡겼다.

 JP는 이케다 하야토(池田勇人) 총리에겐 일본의 ‘한국 분단과 전쟁 책임론’을 들이댔다. 오히라 마사요시(大平正芳) 외상에겐 일본 전국시대 때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의 ‘두견새 울리기’ 고사(古事)를 꺼냈다. JP는 “세 사람이 두견새를 울게 하는 방식이 다르다. 오다는 ‘두견새, 울지 않으면 죽여 버린다’, 도요토미는 ‘어떻게든 울게 만든다’, 도쿠가와는 ‘울 때까지 기다린다’는 방법이었다. 당신과 나는 어떻게든 두견새를 울려 보자는 도요토미 식으로 가자. 협상을 타결해 문제를 해결해 보자”고 설득했다. 오히라 외상이 협상 중 태도를 바꿔 타결 쪽으로 선회한 것은 자기 나라 문학과 역사, 언어에 정통한 JP의 인간적 깊이에 끌린 측면도 있었다.

 - 협상 상대방들이 김 전 총리보다 20~30세 많은 노련한 사람이었습니다만.

 “그들이 태평양전쟁을 치러 본 전중세대(戰中世代)라는 점이 오히려 협상에 도움이 됐다. 나 역시 6·25남침 때 육사 8기 동기생의 40%가 전사한 전중세대다. 전중세대는 전쟁의 비참함과 평화의 소중함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다. 우리가 협력해야 후손들이 항구적인 번영을 누릴 수 있다는 이심전심(以心傳心)이 있었어.”

 -아베 총리에게 바라고 싶은 게 있다면.

 “ 역사를 똑바로 보고 참된 마음으로 사죄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역사는 아무리 덮으려 해도 덮어지지 않는다. 일본과 아시아 국가 사이엔 국경을 넘으면 영웅이 역도 가 되고 역도가 영웅이 되는 역사가 있다.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는 일본인에겐 메이지 유신의 원훈 이지만 한국인에겐 침략의 원흉 이다. 아베에겐 이런 점을 헤아릴 수 있는 성숙한 정신이 아쉽다. 한국 국민도 일본과 사이가 나빠지면 어려워진다는 점을 인식해야 한다.”

 - 양국 전후세대에게 부탁할 말씀은.

 “전후세대는 언어나 역사, 예술에 있어서 전중세대가 가졌던 인간적 깊이와 공감을 계승하길 바란다. 서로를 문화적으로 이해하는 정치지도자, 시민세력들이 성장해야 한다. 정부 간엔 얼굴 붉히며 대립해도 국민끼리는 교류와 협력을 이어가야 한다.”

 올해 90세인 JP 같은 전중세대는 역사의 무대에서 물러나 있다. 한·일 간, 동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평화 번영을 위해 양국이 넘어야 할 고지는 무수히 남아 있다.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은 한국과 일본엔 노병(老兵)의 바통을 이어갈 새로운 발상의 주인공들이 필요하다.

글=전영기 기자 chun.younggi@joongang.co.kr
사진=김춘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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