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령 300홈런' NC 이호준 "나는 복 받은 선수"

중앙일보

입력

이호준(39·NC)이 힘차게 배트를 휘두르자 수원 kt위즈파크는 얼어붙은 것처럼 조용해졌다. 관중석의 팬들(3101명)이 숨죽이며 타구를 바라봤다. 쭉쭉 뻗은 공이 좌중간 담장을 넘어가자 NC 팬들은 물론 상대팀인 kt 팬들도 모두 일어나 홈런을 축하했다. 이호준은 고개를 숙이며 다이아몬드를 돌았지만 하얀 미소까지 숨기진 못했다.이호준이 18일 1회 초 무사 2루에서 kt 정성곤으로부터 투런포를 터뜨리며 KBO 리그 8번째로 통산 300호 홈런을 기록했다. 역대 최고령 300홈런(39세 4개월 10일)의 주인공이 됐다. 1994년 해태에 입단한 이호준은 홈런 타이틀을 한 번도 차지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는 나이를 먹어도 불꽃 같은 타격을 이어가고 있다.

대기록 작성에 앞서 이호준은 "이승엽(삼성·39)이 400홈런을 쳤는데 300홈런은 뭘…"이라며 대수롭지 않은 듯 말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달 30일 광주 KIA전에서 299호 홈런을 날린 뒤 슬럼프에 빠졌다. 이후 14경기를 치르는 동안 타율 0.227, 타점 3개에 그쳤다. 의식하지 않으려 해도 300홈런을 앞둔 부담감을 이기지 못한 것이다. 15경기 만에 홈런을 터뜨린 이호준은 "체했던 게 내려간 기분이다. 내가 300홈런을 칠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는데 지금까지 뛸 기회를 주신 NC 구단과 김경문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복받은 선수"라고 말했다. 다음은 이호준과의 일문일답.

- 드디어 300호 홈런을 쳤다. 기분이 어떤가.
"체했던 게 내려간 기분이다. 연패 중에 홈런도 나오고 승리도 해 2배로 기분이 좋다."

- 전날(17일) 수염도 말끔하게 정리했는데.
"변화를 주고 싶었다. 오늘 경기 전 팀원들에게 '그동안 내가 팀 생각을 하지 않고, 더그아웃 분위기를 떨어뜨렸다. 팀을 위해 짧게 치려고 노력하겠다. 미안하다'고 말했다.

- 공이 날아가는 모습을 계속 쳐다봤다.
"제대로 맞지 않아 공을 끝까지 쳐다봤다. 1루로 향하고 있는데 공이 튀어 나오더라. 순간 깜짝 놀랐다.(웃음) 수비수들이 움직이지 않길래 안심했다. (슬라이더를 노렸나) 주자가 2루에 있었기 때문에 무조건 센터 방면 치겠다는 생각으로 타석에 임했다."

- 맞는 순간 어떤 생각이 들던가.
"맞는 순간 '꽃값을 아꼈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주장(이종욱)이 매일 꽃을 사왔는데 그동안 계속 못 썼다. 사실 어제는 내가 꽃을 그만 사라고 말했다. 홈에서 하이파이브를 해주고 꽃을 주는데 뭉클했다. 나만큼 동료들도 홈런을 너무 많이 기다렸다. 고맙다는 말을 꼭 전하고 싶다."

- 299호 홈런을 치고 15경기 만에 홈런을 기록했다.
"사실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노력했지만 멘털이 많이 흔들렸던 게 사실이다. 신경이 쓰일까봐 내 타율, 안타, 타점 기록도 절대 찾아보지 않는다. 그런데 299홈런을 치고 300홈런에 대한 말이 매일 같이 나와 300이라는 말만 들어도 노이로제가 걸릴 정도였다. 머릿속에 숫자가 박히니 타석에서 몸이 먼저 신경을 쓰더라. 이제 털어버리고 내일부터 좋은 타구, 많은 안타를 치도록 노력하겠다."

- 본인에게 300홈런은 어떤 의미인가.
"300호 홈런은 포기한 상태였다. 나는 끝났다고 생각했고, 300홈런은 꿈도 못 꿀 일이었다. 계속 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구단과 감독님께 감사드린다. 나는 복 받은 선수라고 생각한다."

- 팬들에게 한 마디 전한다면.
"저보다 더 기다려준 팬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꼭 하고 싶다. 팬들의 응원이 큰 도움이 됐다. 팀이 정상에 오를 때까지 건강하게 중심타선을 지키며 좋은 모습을 보여드리겠다."

수원=김원 기자 kim.w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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