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푼도 안깎인 예산안|이장규기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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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85년도 예산안이 한푼의 삭감없이 통과됐다. 예산을 짠 정부나 이를 심의하는 국회의 생각이 묘하게도 똑같았던 모양이다. 그나마 손을 댔던 세목 조정금액은 3백6억원으로 12조 예산의 0·25%에 불과했다.
이같은 정부 국회간의 컨센서스는 작년의 예산동결에 이어 두번째다. 우리들의 관심은 서로다른 입장이면서도 어쩌면 그렇게 생각이 똑같을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예산에 관한한 정부와 국회는 맞서는 것이 상식이다. 정부는 일위주로, 국회는 국민부담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야하기 때문이다. 물론 국회라고해서 깎는것만이 능사가 될수 없고 정부생각과 같은결론에 도달한것이 흠이 될수없다.
문제는 한해 나라살림살이를 확정짓는 예산심의과정이 너무 뜻밖이었기 때문이다. 국민들의 세금부담을 정말 걱정하고 민의를 대변하는 입장에서 과연 따질것을 충실히 따졌느냐는 의구심에서다.
이번 예산을 놓고 본격적인 예산심의를 벌인 계수조정 소위가 열린 날은 불과 3일이였다고 한다. 오히려 수세의 입장인 정부측에서 불만을 토로한다.
『불과 3일동안 12조원의 방대한 예산을 어떻게 심의하겠다는건지 모르겠다』 『이럴바엔 차라리 계수조정소위를 공개로 하는편이 낫겠다』 『며칠밤이라도 좋으니 정말 진지한 토론을 벌여봤으면 좋겠다.』
요컨대 프로페셔널이 아마추어에 대해 느껴온 불만의 표현들이다. 이러다간 이들의 입에서 국회예산심의기능의 무용론까지 튀어나올 판이다.
한술 더뜨는 이야기도 나온다. 『국회에서 물고 늘어질 이야기가 오죽 많습니까. 한창 논란이 되어온 혹자예산편성의 근본적인 시비를 비롯해서 소홀한 사회복지예산, 방위비를 비롯한 경직적인 예산구조 등등….』
납세자인 국민들의 최대관심사는 내년에 내야할 세금이다.
정부가 예산안을 만들었던 지난 여름에 비해선 경기가 나빠지고있고 내년엔 더 내려갈 전망인데 세입부문은 일체 손을 대지않았다. 경기가 나빠지면 세금도 당연히 주는것인데 그대로 두였으니 무슨 계산인지 모르겠다.
국회의원이 예산실 사무관처럼 숫자를 외고있을 필요도 없고 또 그래서도 안된다. 오히려 그런것들은 몰라야 건전한 상식으로 민의를 대변하고 전문지식을 뽐내는 관리들의 독주와 오류를 적절히 걸러내고 견제할수 있는것이다.
문제는 전문적인 지식의 결핍이 아니라 나라살림인 예산편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비롯된 것이다. 관리들조차 지적하는 근본적인 시비거리는 외면한채 파장에 떨이하듯 예산을 통과시킨 무성의한 심의태도가 스스로의 평가절하를 초래한 것이다. 더구나 세목조정을 통해 늘린 예산내용이 대부분 선거의 냄새가 짙고보면 그동안의 예산심의 과정이나 분위기가 어떠했는지를 쉽사리 짐작케 하는일이다. 자기집 살림살이를 짜는일이라도 그처럼 무심했을지 궁금하다.<이장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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