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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대화법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슈어]삶의 이유가 되고, 살아갈 힘을 주는 가족. 그동안 익숙하다는 이유로 상처가 되는 줄 몰랐던 가족 간의 대화를 돌이켜본다.

PART 1 오늘도 우리는 가족에게 상처도 받고 위로도 얻는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예의를 지키라는 옛말이 있다. 영어 속담에도 “Familiarity breeds contempt(친해지면 무례하기 쉽다)”라는 말이 존재한다. 익숙할수록 무시하기 쉽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뜻이다.

바다 건너 어디서나 인생사는 똑같은가 보다. 미국의 정신 상담가인 비버리 엔젤은 “어린 시절 부모의 따뜻한 포옹과 말 한마디는 상처 난 무릎에서 흐르는 피를 멈추게 해준다”고 전한다.

사람은 누구나 힘들거나 괴로울 때, 가장 가깝고 믿을 만한 사람에게 의지한다. 그건 아이나 성인이나 차이가 없다. 언어학자 데보라 태넌은 “우리는 대화로 관계를 형성한다”고 말한다.

그녀의 이론에 따르면 가족 간의 대화가 삶에 영향을 끼치고 강렬하게 반응하는 까닭은, 그것이 어떻게 풀리느냐에 따라 우리가 괜찮은 사람이고 세상이 괜찮은 곳이라는 아주 중대한 인식이 확립하게 되는 첫 번째 사회이기 때문이다.

최근 방송인 김구라는 아내의 빚 17억원을 공개하며, 이를 해결하느라 생겼던 공황장애에 대해 밝혔다. 처음 문제가 생겼을 때 논의했다면 빚의 단위가 이리 커지진 않았을 텐데, 그의 아내는 미안하다는 이유로 사건 고백을 차일피일 미룬 것이 화근이었다.

또 다른 방송에선 1년간 SNS로만 대화했다는 어느 워킹맘 모녀의 이야기를 다뤘다. 사춘기 딸과 부딪치게 되자 엄마는 싸우지 않으려는 방법으로 문자메시지로 말을 걸기 시작했고, 딸은 자신과 달리 동생과 친하게 지내는 엄마를 보며 마음의 골이 점차 깊어졌다고 털어놨다.

‘당신네 집은 문제가 없는가?’ 이 질문에 답이 선뜻 나오긴 어렵다. 가족이란 견고한 성은 각자 환경이 다르고, 성의 내부 상황을 어떻게 바라볼지는 전적으로 자신에게 달렸기 때문이다. 또 자신이 살고 있는 성에서 일어나는 문제를 대수롭지 않게 넘겨버리기도 한다.

성의 속사정은 조심스럽게 들어가야 하는 깊은 우물과 같아서 밖으로 잘 끄집어내지지 않는다. ‘가족 대화법’ 기사를 취재하며, 사람들에게 “혹시 가족과 대화할 때, 불편한 적 있지 않아?”라는 질문을 했을 때, 돌아온 답에 ‘글쎄’ 란 머뭇거림이 앞선 것도 그와 같은 이유다.

PART 2 가까워서 괜찮을 줄 알았다

가족은 나를 속속들이 알아서 굳이 속마음을 밝힐 필요가 없는 관계다. 이는 험한 세상에서 믿음의 증표가 되곤 한다. 반면 문제도 여기서 일어난다. 나를 아는 만큼 이해해줄 거란 무의식적인 믿음 때문이다.

내 편인 듯, 내 편 아닌, 내 편 같은 가족
나부터 고백하자면, 우리 집에는 아빠와 엄마, 여섯 살 차이 나는 여동생이 있다. 아빠는 살가움과 무뚝뚝함을 오갔다. 자기중심적이지만, 엄마에게 성실한 남자였다.

집안에서의 마찰은 설명하기보다 강압적인 결정을 할 때마다 나타났다. 여자 구성원 세 명이 저마다 잔소리로 화답했을 테니, 참 피곤하셨을 거다. 언젠가부터 아빠가 이모티콘이 섞인 카톡 폭탄을 보내기 시작했다. 특히 ‘사랑해’와 ‘♡’가 많이 붙었다.

그전까지 부녀 관계가 진득했냐 하면, 그것 또한 아니다. 아빠가 나이 들면서 찾아온 변화가 서먹해서 더 무뚝뚝하게 답하곤 했다. 낯간지럽다는 이유였지만, 이젠 나도 적극 화답해드리려 ‘♡’로 노력하는 중이다.

엄마는 정 많고, 호기심 많고, 겁도 많다. 다행히 취미로 자전거와 요가, 수영, 등산을 즐기는 파워풀한 폐경기를 맞이했지만, 정서적으로 예전과 달리 연약해졌다는 것이 눈에 보이는 내 나이가 슬플 뿐이다.

문제는 엄마와 동생이다. 동생은 여전히 이해받길 원하고, 엄마는 갑자기 이해받길 원하기 때문에(아빠의 이모티콘처럼) 둘의 대화는 헛돌 때가 많다. 부모님은 급격한 다이어트로 살을 뺀 동생을 반가워하지 않았고, 모든 건강과 심경의 변화를 ‘살을 빼서 저래’로 해석하려 했다.

그들 사이엔 중재자인 내가 있었지만, 내가 결혼하면서 트라이앵글 균형이 깨지고 말았다. 말다툼이 일어난 뒤, 세 명이 동시에 각각 내게 하소연하기 시작했다. 결과는 같다. 난 아빠, 엄마에게 동생에 대한 이해를 구하고, 동생에겐 ‘그러지 말라’고 타이른다.

부모님은 내게 말해도 변하지 않는 상황에 힘들어하고, 동생은 매번 가르치는 듯한 내 말을 ‘비난’이라 받아들여 서운해할 뿐이었다. 또 엄마와 동생은 나를 두고, 서로 상대방 입장만 생각하냐며 내게 섭섭해하는 것도 답답한 일이다.

MIND CONTROL<가족힐링>의 저자 버지니아 사티어는 “사람은 사랑하는 사람이 무의식적으로 나와 같을 거라 생각하고, 그렇지 않으면 더 큰 서운함을 느낀다”고 말한다. 또 가족의 대화는 가족 구성원을 더 나은 사람이 되도록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그래서 종종 가족이 잘못을 저지르고 있다고 생각하면, 자신은 그것을 지적할 자격은 물론이고 의무까지 있다고 믿는다.

이것 하지 마라, 저것 하지 마라, 관심이 있으니까, 사랑한다는 이유로, 그녀의 미래를 염려하며 난 동생을 엄한 잣대로 비판하고 있었는지 모른다. 그녀가 발끈해 이의를 제기하면, 조목조목 이유를 들어 내 주장을 관철시켰던 것만 봐도 그렇다. 그 결과 동생은 내 말에 크게 흔들리면서도, 그렇게 ‘선생질’하는 나를 못 견뎌하고, 일이 생기면 내게 의지했다.

얼마 전 동생이 회사를 그만두었다. 작은 회사는 그녀에게 여러 가지 많은 압박을 줬다. 그때도 난 그만두지 말라며, 자기 계발서적인 말만 앵무새처럼 되뇌었다. 결국 내가 참을 수 없을 때, “그까짓 회사 그만둬. 넌 실력이 있으니까, 어디서든 잘할 수 있어”라고 말해버리고 말았다. 말하면서도, 내 말로 동생의 인생 중대 선택이 방해받으면 어쩌나 우려가 앞섰다.

그녀의 대답은 “고마워, 그 말을 듣고 싶었어. 이젠 마음놓고 사직서 제출하고 올게”였다. 진작 해줄 걸 그랬다. 그녀의 자신감을 채워주는 말이 뭐 그리 어렵다고 그리 아꼈던 걸까.

애증의 엄마와 딸
은행에 다니는 K는 2년 전 결혼했다. 요즘 그녀는 엄마가 “아이를 갖기 위해 노력은 하고 있니?”라는 질문이 스트레스다. 시댁조차 꺼리는 민감한 문제를 묻는 엄마가 무신경하다고 느껴졌다. 엄마는 언니의 두 아이를 돌봐주고 계셨는데, 일이 생길 때마다 K를 대나무 밭 삼아 불만을 토해냈다. 이제 K는 엄마의 전화가 오면 한숨부터 내쉬었다.

MIND CONTROL 책 <엄마와 딸>에서는 ‘사랑하든, 미워하든, 존중하든, 거부하든, 엄마는 우리가 처음 경험하는 여성이며, 우리가 최초로 관찰하는 역할모델’이란 구절이 나온다. 모녀지간은 오묘하다. 세상에 둘도 없는 친구이자 인생의 동반자지만, 때로는 해법 없는 갈등에 고통받아야 하는 일이 생긴다.

그 이유는, 부모는 자녀를 자신의 얼굴로 여기기 때문이다. 아이가 잘못하면 자신이 책망받는다는 생각에 엄마는 어떻게든 본인 기준에서 아이를 바로 잡으려고 한다. 그들은 곧 이 일로 내가 어떤 부모로 비칠지에 민감하다.

성인 자녀를 둔 엄마에게 가장 어려운 과제는 자녀의 일거수일투족에 대한 책임감을 떨쳐버리는 것이다. 역설적이게도 엄마는 늘 아이를 신경 써야 하는 사람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그 노력이 오히려 눈에 띄지 않는다.

그래서 어머니의 노고를 당연시 여긴다. 엄마가 과민 반응을 보인다고 여기지 마라. 그건 자신이 과소평가받고 있다고 느껴질 때 생기는 불만이다. 특히 서로에게 스스로를 희생해서 뭔가를 해주고 있다고 여기는 모녀라면 문제가 더 크다.

엄마와의 대화를 언니에게 전하지 말고, 바라는 점을 직접 전하라고 제안하라. 엄마에겐 거절에 대해 부담을 느낄 필요가 없다는 것을 조언해주면 좋겠다. 엄마 스스로를 위해 투자하고, 친구들과 즐겁게 지내는 편이 엄마를 위하는 일임을 상기하면 된다. “엄마가 우리에게 무언가를 해주기보다, 엄마가 행복해지는 것이 더 중요해요”란 말이면 충분하다.

가깝고도 먼 부녀지간
이성적인 아버지 밑에서 자란 N. 그녀는 아빠와 대화를 하면 언제나 혼나는 기분이었다. 집에 내려갈 때마다 “그런 옷은 도대체 어디서 샀니?” “반지는 왜 여러 개 끼고 다니니?”란 말을 들었다. 설명하기도 애매하고, 자신의 외모나 취향을 지적받는 것 같아 자존심이 상했다. 엄마가 돌아가신 뒤, 아빠와 함께 호주 여행을 떠났다. 태어나 처음 아빠와 긴 시간을 보낸 그녀는 이제야 아빠의 성격이 이해되었다고 고백했다.

MIND CONTROL 그녀는 아빠가 좋아하는 음식을 고려해 맛집을 찾고, 자연을 좋아하는 아빠의 성향에 맞춰 여행 동선을 짰다. 아빠의 취향에 대해 고민한 적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그녀가 알고 있던 아빠는 꼬챙이처럼 직선적인 사람이었다. 세무서 업무로 익힌 간결한 대화법이 효율을 따지는 아빠의 성격과 만나 시너지를 일으킨 것 같다며, 이것은 그를 이해하는 키워드로 작용했다.

대화하다 보니, 아빠의 속내는 ‘그 옷이 이상하다’가 아니라, ‘우리 때와 유행이 다르다’였는데 본인이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거라며 웃었다. 성인이 된 이후로 길게 대화를 이어간 적이 없으니 둘 다 대화에 서투를 수밖에 없었다.

N은 그 뒤로 아빠에게 먼저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집에 내려가면, 최근 머리를 자른 이유를 설명하며 대화를 풀어갔다. 언어학자 데보라 캐년은 “오늘 하루 어떻게 보냈어요?”의 힘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이 말은 대화를 시작하고, 상대와 친밀감을 여는 열쇠니까, 마구 낭비해도 된다고 말이다.

PART 3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닌데

숨어 있는 메시지의 상처
중학교 선생님인 C는 최근 급격히 불어난 체중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다. 얼마 전 C는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을 맞아 레스토랑에 가게 되었다. 그녀는 인기 메뉴인 스테이크를 골랐다. 그녀의 엄마는 “밑에 연어 스테이크도 있던데, 봤니?”라 말했다. 그녀는 “다이어트에 신경 쓰고 있으니 스트레스 주지 말라”고 화를 냈고, 엄마는 “뭘, 그만한 일에 화를 내니? 네가 좋아하는 메뉴가 있다는 걸 알려준 것일 뿐인데”라고 답했다. C는 매번 엄마가 스트레스를 더 부추긴다고 고민했다.

MIND CONTROL 우리는 입 밖으로 나온 발언의 의미, ‘메시지’에만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그 발언이 상대방과의 관계에 대해 말한다고 생각되는 ‘메타 메시지’에 더 강렬히 반응한다. 메타 메시지란 입 밖으로 나오진 않았으나, 그 사람의 화법(말투, 어휘, 분위기)과 우리가 현재의 대화와 관련되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근거로 해서 추정하는 의미다.

C는 ‘최근 불어난 살’에 이미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이전의 모녀 관계에선 다이어트에 관한 대화가 있어 그녀는 그냥 연어 스테이크가 아닌 ‘스테이크는 다이어트에 이롭지 못하다’로 받아들인 것이다.

메시지의 초점은 단어지만, 메타 메시지의 초점은 관계에 맞춰진다. 상대방이 ‘어느 한 주제에 유난 떤다’라고 생각하기 이전에 본인이 반복적으로 주는 메시지로 무언의 숨은 뜻이 되지는 않았는지 살펴야 마땅하다. 반복적인 높은 강도의 염려는, 걱정을 가장한 질타가 되기 쉽다.

연대와 소외를 찾아라
집에 딸이 셋 있는 딸 부잣집 친구 P의 고민거리는 언니와 여동생이다. 어려서부터 그 둘은 성격이 닮아서 하는 행동도 비슷했다. 문제가 생기면 해결하는 방식이 같았기 때문에 다른 의견을 주장하는 P는 집에서 늘 소외당하는 기분을 느꼈다고 고백했다. 이번에도 언니는 석가탄신일이 낀 샌드위치 휴가를 말하면서 “이번 휴가에 세부 가려고 하는데, 넌 어때? 엄마랑, 아빠, 막내는 스케줄 비워놨대”라는 말을 전했다. P는 매번 자신에겐 뒷북처럼 통보한다며 서운해했다.

MIND CONTROL 가족 안에서 느끼는 흐뭇한 결속감과 고통스러운 박탈감을 이해하려면 ‘연대’란 개념을 알아야 한다. 가족끼린 대화를 통해 정보가 공유되고, 확산되고, 비밀에 부쳐지기도 하며, 누설되기도 한다. 이를 통해 거미줄처럼 복잡한 동맹이 형성되고 재형성되기를 반복한다. 만화경처럼 복잡한 그물이다.

이로써 친분의 연대가 형성된다. 교감과 말다툼, 비밀을 털어놓고, 화해하면서 연대는 계속 바뀐다. 지속적인 연대는 연대하지 못한 상대에게 소외감을 주는 주범이다. 낄 틈이 없다고 생각되는 것이다.

위의 대화에서 ‘엄마랑, 아빠, 막내’란 단어만 빼면 P에게 소외감을 주진 않는다. 저 상황은 ‘이러니까, 네 스케줄을 우리에게 맞춰’로 들리거나, ‘여행지는 미리 정해져 있으니’ ‘우린 전부 상의를 끝냈어’ ‘넌 따라와’란 뉘앙스의 메타 메시지로 인식하게 되는 것이다.

대화마다 정보의 마지막 주자가 된다는 것을 인지시킬 필요는 없다. 거꾸로 P는 평소 자신의 정보를 가족들과 교환하면서 정보를 얻을 필요가 있다. 내 뒤에서 꿍꿍이를 펼친다는 식의 마인드는 아무에게도 이롭지 못하다. 연대는 자매나 형제뿐 아니라 부모님 사이에서도 자주 일어난다. ‘아빠는 집안일에 도통 관심이 없다’며 툴툴거리기보다는 잦은 정보의 공유로 연대감을 키우는 건 어떨지, 곰곰히 생각해볼 일이다.

가족이기 전에 남녀라서
서울에서 오빠와 둘이 함께 산 지도 벌써 3년이 흘렀다. 성격이 활달한 H는 오빠와의 대화를 기억하려다가, 이내 멈췄다. 일상적으로 “나 늦게 들어가” “이것 좀 치워” 같은 말 외에는 딱히 대화가 없다는 이유였다. 그의 성격이 무뚝뚝해서 그런가 싶었지만, 친구들과는 나름 잘 지내는 모양이었다. 또 부모님에게도 믿음직스러운 아들이었다. 그다지 친밀감은 들지 않았지만, 무게감 있는 첫째처럼 느껴진다고도 했다.

MIND CONTROL 가족 간의 대화에는 일반적으로 자신의 사회에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로 인해 생겼던 문제는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한다. 대부분 웃고 넘기자는 유머와 진지한 고충이 오간다. 특히 활발하게 논의가 이루어지는 고충의 대화 목적은 해법 모색이 아니라, 일종의 철학적 탐구다. ‘이런 상황은 어떤 식으로 보는 편이 가장 좋을까?’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결속감이 형성된다. 이건 주로 자매들의 대화법이다. 남매는 남매이기 이전에 서로 다른 행성에서 온 남녀다. 예를 들어 “그래서 그 언니랑 잘되고 있어?”란 말을 했을 때, 그의 답은 “뭐, 그럭저럭” 혹은 “장난 아니지”란 답변으로 돌아올 가능성이 크다. 시시콜콜 정보를 원하는 여동생은 대화가 단절됐다고 여긴다. 여기서 정보를 얻기 위해, 질문을 반복하면 엄마와 사춘기 아들과의 관계로 전락해 대화의 문이 닫히고 만다. 가볍게 대화를 나누고 싶을 땐, “이번에 새로 바뀐 폰 멋진데?”로 그의 선택을 칭찬하거나, “전구 좀 갈아줘”로 그가 잘할 수 있는 ‘우쭈쭈’ 대화거리로 시작하면 좋다. 시뮬레이션 게임처럼 남자아이를 기르는 느낌이지만, 이렇게 서문을 열고 심화 대화로 들어가면 되는 거다.

PART 4 가족도 싸우고 화해하며 산다

"<가족의 발견>의 저자인 트라우마 가족치료연구소 소장 최광현은 ‘가족은 실수를 해도 받아주는 암묵적인 관계, 허물을 받아줄 수 있는 유일한 사람, 성인이지만 여전히 가르쳐야 하는 대상’이라 무의식적으로 인식한다고 전한다. 사회에서 만난 사람들보다 잦은 대화 실수는 거기서 출발한다."

나를 돌이켜봐라
일상에서 자신은 제대로 표현하고 있는데, 상대방이 대화할 자세가 되어 있지 않다고 생각할 때가 많다. 나는 시비를 걸지 않았는데, 상대방이 매번 무턱대고 화를 낸다고 느낀다면? 자신의 대화 패턴을 돌이켜볼 필요가 있다.

이땐 온 가족에게 ‘내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을 작성하라고 부탁해보는 거다. 그 말은 곧, 내가 가족에게 주로 하는 말을 의미한다. 실제로 내가 많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가정 안에서 수행하고 있는 내 역할을 알게 된다.

나와 너를 떨어뜨려 생각해보라
가족 대화에서 오류를 범하는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너무 친밀하기 때문에 ‘나와 너’를 동일시한다는 점이다. 가족은 나를 속속들이 알고 있기 때문에, 그만큼 나를 이해할 것이라는 생각 자체가 잘못되었다.

또 사랑한다는 이유로 고마운 일을 당연히 여겨서도 안 된다. “이런 상황인 걸 알면서도 나를 이해 못해줘?” “엄마, 아빠라면 이래야지” “자녀라면 이래야지” “첫째라면 당연히”라는 자기 입장에서 대화를 이끌어 가면, 서로를 이해 못하게 될 뿐이다. ‘나는 나고, 너는 나와 다르다. 네가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은 상대에 대한 존중된다.

인정하고, 공감하라
트라우마 가족치료연구소 소장 최광현은 ‘모든 가족 대화의 문제에는 공감 부재가 있다’고 설명한다. 이는 어느 관계나 동일하다. 관건은 가족의 마음과 상황이 어떠한 상태인지 살피는 데 있다. 주장에 동의하지 않아도 된다. 하지만 인정해주는 것. 마음의 주파수를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은 인정 욕구가 강한 동물이다. 상대가 내 감정을 궁금해하고, 인정해주면 시키지 않아도 대화는 시작된다. 말을 해야 답답한 감정이 풀리고, 말을 꺼내는 순간 응어리가 풀린다. 분명한 것은, 상대를 배려한 대화가 이어지다 보면 관계는 자연스럽게 풀어진다는 것이다.

가족 말다툼에도 룰이 있다
가족끼리 이해가 상충하고, 욕구가 다르고, 사고방식이 충돌하면 말다툼이 번지는 것은 당연하다. 싸움에도 예의가 필요하다. 책 <가족이니까 그렇게 말해도 되는 줄 알았다>에선 아래와 같은 가족 싸움법에 대한 지침이 나온다.

● 자신과 가족에게 말다툼이 어떤 의미인지 알아야 한다.
대화에 숨은 메시지가 어떠한 염려에서 출발했는지를 파악하거나, 이를 상대에게 설명해주면 대화가 훨씬 수월해진다.

● 어떤 말이 통제로 느껴진다면, 가족의 결속을 위함이 아닌지 생각해보라.
비합리적으로 느껴지는 말 혹은 행동을 파악해 그 사람의 염려를 해소할 방법을 찾기가 훨씬 쉽다.

● 사소한 문제는 넘기고 쟁점에 집중하라.
꼬투리를 잡으면 대화는 빙빙 돌고, 문제 해결 없이 상처만 주게 되어 있다. 비꼬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 소크라테스 흉내를 내지 말자.
상대방으로 하여금 그 사람의 잘못이나 나의 정당성을 인정하게 할 속셈으로 어떤 질문에 답하거나 논점을 받아들이라고 강요하지 말자. 내가 목적하는 지점이 어디인지 분명히 밝히자.

● 모욕적인 언사와 욕설을 피하라.
당연한 말이지만, 우린 그 당연함을 종종 잊고 산다.

● 극단적으로 표현하지 말자.
모든 걸 알고 있는 사이인 가족 사이의 말다툼은, 사회보다 더 격렬하게 표현될 가능성이 높으니 주의가 필요하다.

● 타이밍은 언제나 중요하다.
말의 힘을 받느냐, 사라지느냐의 문제다. 그건 상사에게 보고할 타이밍을 알아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사과의 기술
가족만큼 자주 사과해야 하는 사람도 없고, 또 가족만큼 자주 사과를 듣고 싶은 사람도 없다. 그러니, 제대로 사과하는 법이 중요하다.

가족 간의 갈등은 사과라는 암초에 부딪쳐 좌초하는 경우가 많다. 한 사람은 사과를 요구하고 다른 사람은 사과를 거부하다 보면 서로 일시적으로 혹은 장기적으로 대화가 멈추게 될지 모른다. 사과의 중요성이 커지면, 문제의 앞뒤보다 사과를 했는지 안 했는지로 분류되는 지경에 이른다. 사과를 받아야 한다면 직접적으로 요구하기보다, 우회적으로 ‘나는 이런 이유와 이런 상황으로 인해 상처받았다’를 설명하는 편이 좋다.

기획 슈어 박소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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