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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스펙 안 보는 채용 … 깐깐해진 면접 현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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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17%’.

 올 상반기 기업 공개채용(공채)에 도전한 취업준비생(취준생) 가운데 일자리를 찾는 데 성공한 비율이다. 취업 포털 인크루트가 구직자 858명(인문계 420명, 이공계 343명, 예체능계 43명)에게 설문해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다. 거꾸로 보면 구직자 10명 가운데 8명 이상은 ‘바늘구멍’을 뚫는 데 실패했다는 얘기다. 상반기 취업의 장애물은 무엇이었을까. 가장 큰 난관은 면접이었다. 인크루트 조사에서 66%가 “면접에서 낙방했다”고 답했다.

 실제로 삼성그룹·현대차그룹을 비롯한 국내 주요 기업들은 올 상반기 공채에서 ‘스펙 거품’을 걷어낼 목적으로 면접에서 난이도가 높은 질문을 쏟아냈다. 출신 학교나 학점, 토익 점수 같은 정량적 요소로 평가했던 신입사원 채용 방식에 대한 사회적 비판이 쏟아진 게 영향을 미쳤다. 그 여파로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면접·자기소개서, 인턴 경험 등 정성적 평가 요소로 선발 잣대를 수정했다. 이로 인해 면접의 비중이 올라갔고, 면접관들은 난이도 높은 질문으로 지원자들을 당황케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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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면접의 중요성이 예전보다 더 커진 것을 감안해 중앙일보는 취업 포털 인크루트, 취업 정보 사이트 잡플래닛과 함께 올 상반기 면접 기출 문제를 분석해봤다.

 우선 삼성은 인성검사·프레젠테이션(PT)·임원면접을 하루 동안 끝내는 ‘원샷 면접’이다. 삼성은 면접장 도착 시간도 오전 7시로 다소 빠르다. 가장 먼저 실시하는 인성검사는 조직 문화에 맞지 않는 부적합자를 판별하기 위한 검증 절차다. 삼성물산·삼성전자 등 삼성 계열사 인사팀 15년 경력의 류정석 CDC취업컨설팅 대표는 “삼성은 조직 내 협업과 융화를 중시하기에 반조직적 지수가 높게 나오면 면접을 아무리 잘 봐도 입사가 어렵다”고 조언했다.

 PT면접에선 반도체·가전·휴대전화 등 주력 사업군에 대한 이해도를 측정했다. 예를 들면 “달러 가치 상승에 따른 D램 반도체 손익 영향과 이를 헤지할 수 있는 전략은 무엇인가” “S전자가 브라질 시장에 텔레비전을 판매하려고 하는데 어떤 마케팅 방안을 활용해야 하는지 단기(1년 이내), 장기(3년 이상) 방안 모두 제시해라” 같은 문제가 출제됐다.

 류 대표는 “임원들은 신입 지원자들이 업무 용어를 미리 숙지한 뒤 대답을 하는 방식을 선호한다”고 말했다. 조직의 목표 달성 지표인 ‘KPI(Key Performance Indicators·핵심성과지표)’, 상품 수명 주기를 뜻하는 ‘PLC(Product Life Cycle)’ 등의 용어를 적절하면서도 정확하게 사용하라는 의미다.

 면접에서 회사에 대한 이해도를 물어보는 건 현대차그룹도 마찬가지다. 현대차의 면접은 까다롭기로 정평이 나 있다. 잡플래닛 조사에 따르면 삼성·현대자동차·SK·LG·롯데·포스코·현대중공업·CJ(기업 규모 순) 등 국내 대기업 8곳 가운데 ‘면접이 가장 까다로운 기업’은 현대차로 꼽혔다. 잡플래닛이 지난해 4월부터 올 3월까지 해당 기업의 면접을 직접 경험했던 취준생들이 올린 후기(리뷰) 2875개를 전수 조사한 결과다.

 예를 들어 현대차에 지원한 구직자들은 면접 현장에서 “LF쏘나타를 독일에서 성공시키기 위한 마케팅 방법을 말해보라” “현대차의 디자인 특징인 ‘플루이딕 스컬프처’에 대해 개선점을 들며 구체적으로 묘사해라”와 같은 질문을 받았다. 폴크스바겐·메르세데스벤츠 등 고급 메이커가 많은 독일 자동차 시장의 특징이나 플루이딕 스컬프처라는 현대차의 디자인 철학처럼 회사를 모르면 답변 자체가 불가능한 질문으로 지원자의 진정성을 체크하겠다는 의미다.

 롯데도 스펙 대신 실무에 대한 철저한 검증으로 채용 기준을 바꾸고 있다. 롯데그룹은 올 상반기부터 이름과 연락처 외에 모든 스펙 사항을 배제한 ‘스펙태클’ 채용을 실시하고 있다. 면접은 회사별·직무별 특성을 반영한 주제를 선정해 오디션이나 미션 수행 같은 새로운 방식을 도입해 창의적이고 전문적인 인재를 선발한다.

 롯데호텔의 경우 자체 요리대회를 열어 호텔 셰프가 지원자의 조리 실무 능력을 평가한다. 롯데마트는 자체 브랜드(PB) 상품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으로 지원자의 역량을 가린다. 롯데그룹 인사팀의 김진성 수석은 “스펙태클 오디션은 자신만의 장기, 자신만의 스펙터클한(Spectacle) 면을 보여달라는 뜻과 무분별한 스펙 쌓기에 태클을 건다(Spec-tackle)는 두 가지 뜻을 담은 것”이라고 설명했다. 롯데와 같이 유통업을 주력으로 하는 신세계도 “2015년 20대 여성의 소비 성향에 대해 말하라” 같이 업황에 대한 기본적 이해를 바탕으로 하는 PT면접을 실시했다.

 결국 스펙을 안 본다고 하더라도 대학교 1~2학년 때부터 본인이 희망하는 직무 관련 활동을 하지 않았던 구직자 입장에선 취업이 더 어렵게 느껴질 수 있다. 특히 전공-직업 간 연관성이 떨어지는 문과 학생들이 오히려 ‘스펙 없는’ 채용에서 불리할 수도 있다.

 서미영 인크루트 상무는 “문과생들이 예전에는 삼성직무적성검사(SSAT) 같은 ‘원샷’ 시험에서 높은 성적으로 실무 경험 부족을 만회했지만 더 이상은 이러한 ‘과거 급제’ 방식이 통하지 않게 됐다”며 “무분별한 스펙 쌓기가 사라진다는 점에서는 바람직하지만 취준생 입장에서는 준비할 게 더 많아졌다고도 볼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민 기자 bradkim@joongang.co.kr

[S BOX] 특수어과 잘나가네 … 베트남어과 취업률 88%, 이란어과 69%

전반적인 인문계열의 퇴조 속에서도 ‘특수어과’ 졸업생들이 취업시장에서 상대적으로 약진하고 있다. 불문과·영문과 등 전통적으로 강세를 보였던 어학계열 졸업자들이 채용 전선에서 고전하는 사이 특수어과 졸업생들은 삼성·롯데 등 대기업 입사에 성공하고 있다.

 한국외국어대 베트남어과는 지난 2월 졸업생 17명 중 15명이 취업에 성공했다. 롯데백화점 3명과 현대홈쇼핑 2명을 비롯해 롯데카드·KT&G 등 베트남 현지 진출을 적극적으로 추진하고 있는 유통업체가 많았다. 지난해 취업률 71.4%를 기록한 말레이·인도네시아어과(마인어과) 졸업생 상당수도 롯데백화점(4명)과 CJ푸드빌 등 유통업체에 취업했다. 이란어과(69.2%)와 이탈리아어과(68.8%)가 뒤를 이었다. 이들의 취업률은 전국 4년제 공학계열 취업률(평균 65.6%)보다 높은 수준이다. 이외에도 노어과(65%)·포르투갈어과(63.6%)·태국어과(61.9%)·아랍어과(57.5%)·루마니아어과(57.1%) 등의 취업률도 문과 중에선 높은 편이다.

 특수어 전공자들의 몸값이 오르면서 기업들은 ‘입도선매’에 나서고 있다. CJ와 한세실업은 2010년대 들어 베트남어과에서 매년 채용설명회를 열고 있다. 마인어과 학생들을 대상으로는 롯데백화점 등 롯데그룹 계열사에 이어 올해부터 CJ제일제당이 채용설명회를 별도 개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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