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속으로] ‘국민’을 찍어냈던 국민학교 … 일제가 조작한 집단기억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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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9면

우리 역사는 깊다 1, 2
전우용 지음, 푸른역사
1권 332면 1만6500원
2권 352면 1만7500원

‘시(時)의 기념일’을 아시는지. 엊그제 6월 10일이 ‘시의 기념일’이었다. 1921년 일본이 시간을 엄수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로 선포하고 식민지였던 조선에도 적용했다고 전해진다. 시간에 대해 너그럽던 조선시대 사람들은 하루를 24시간으로 나누는 서양식 시간제에 서툴렀다. 게다가 그 시절 시계는 값이 비싸서 시각을 정확히 알 수 있는 자는 부자나 권력자에 국한될 수밖에 없었다. 식민지의 시간, 다시 말해 역사를 식민지인들 자신의 과거와 단절시켜 자기들의 시간에 편입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었다는 걸 보여주는 한 증거가 ‘시의 기념일’이다.

 여기까지 쓰고 넘어갔다면 평범한 역사서의 한 구절이라 볼 수 있다. 전우용(53) 한양대 동아시아문화연구소 연구교수는 한걸음 나아갔다. “그런데 지금, 민주공화국이 된 대한민국에서도 이와 다를 바 없는 일들이(…) 권력과 특정한 사회 세력이나 여론 집단이 배타적인 사랑에 빠지면, 역사의 시계바늘은 종종 엉뚱한 곳을 가리키게 마련이다.”(245쪽)

 ‘경복궁 잔디밭과 일제의 공간 정치’ ‘국민을 찍어내는 기계였던 국민학교, 이름은 바뀌었으나’ ‘기억에서 지워진 공동묘지 용산, 삶 주변에서 사라진 죽음’ 등 전 교수가 지난 세기 이 땅의 ‘날[日]들’ 깊숙한 곳을 파내려가 발굴한 집단 기억 60가지는 지금 우리를 돌아보게 만드는 원재료다. 어제의 역사를 내일 읽는다랄까.

특히 ‘책머리에’(5~12쪽)는 오늘날 사양(斜陽) 학문으로 접어들어 “이런 학문이 어떻게 여태 살아남았는지 모르겠다”는 말을 듣는 인문학 또는 역사학을 위한 이유 있는 변명으로 기억할 만하다.

"현재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조금 더 무겁게 받아들이기를.”

정재숙 문화전문기자 johanal@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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